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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기타

[잔불의 기사]나의 사랑은 0.21그램 조용히 영혼을 태우는 숨결의 무게

※지우스X나견

※후세터 글의 수정 버젼입니다.

※나견 사망 설정입니다.


사람이 가진 영혼의 무게는 0.21그램이라고 한다. 어느 장의사와 의사가 입회한 자리에서 엄숙히 진행된 검증의 결과였다고는 하지만 신빙성은 누구도 알기 어려웠다. 아무도 그걸 재검증하려고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긴 때로는 백일하에 드러난 진실보다 살짝 그림자 속에 숨겨든 미지의 사실 쪽이 더 매력적인 법이고 지우스 또한 그 명제를 굳이 검증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견이 죽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어버린 탓이다. 죽은 사람의 몸은 산 자들의 기도와 의식을 거친 뒤 땅 아래에 조용히 묻혔다. 묻혔다기보다 감춰졌다는 감각이 강한 것은 그 시체의 상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견의 시신은 그가 이제까지 걸어온 아슬아슬한 길을 상징하는 것 마냥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그 참혹함 때문에 나견의 시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원 여부를 막론하고 견습 기사들이 모조리 배제되었다. 지우스를 비롯한 기존 기사들의 판단이었다. 그 임무에서 나견의 가장 많은 부분을 그러모은 것은 지우스였으나 결국 죽은 사람의 숨결까지 주워모으진 못했다.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되어있죠.)

 

그리하여 지우스는 어느 어둑한 방에 홀로 앉아 생각한다. 나견이 죽음에 이르고 만 그 사태에 자신의 책임이 있음을 인지한다. 만약 그랬었더라면, 혹은 그러지 않았더라면… 가정형으로 이어지는 생각들은  자신의 꼬리를 삼켜 무한한 소멸과 탄생을 자아내는 뱀처럼 완만한 순환선을 그렸다. 하지만 그 궤적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 비늘의 색깔에 정신이 팔려있을 틈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무튼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내리는 비를 말려버릴 수 없듯이, 잘린 나무를 다시 세울 수 없듯이,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없듯이. 지우스는 그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내린 비가 햇살에 증발하여 사라지고 잘린 나무가 새순을 피우며 다시 가지를 뻗고 죽은 이의 자식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과거에 있었던 현상이 없었던 것처럼 깔끔히 복구되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건 묵직한 쇳덩어리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과거일테지. 그러므로 사람이 해야할 일은 과거 대신 미래를 생각하는 것일테고.

 

(그래요, 지우스.)

 

알아, 맞는 말이야. 어쨌건 지나간 일을 붙잡고 혼자 끙끙 앓는다고 해서 과거가 기특하게도 저절로 바뀌는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걸 네가 말한다니 이상한 기분이군. 그렇지 않나? 너는 누구보다 과거에 얽혀있던 사람이었어. 하나뿐인 가족과 살았던 과거, 하나뿐인 가족을 잃었던 과거…. 너는 네 평생에 이르는 그 인과를 벗어나지 못해서 자신의 인생을 전부 복수의 심지로 삼아버렸지. 그리고 그 불꽃은 앗 하는 사이에 꺼져버렸어. 과거를 뿌리치지 못한 대가로.

 

(사실의 나열이라 반론이 어렵네요)

 

…….

 

(근데…)

 

……….

 

(당신이 할 말인가…?)

 

목소리에는 살짝 웃음이 섞여있고 지우스는 그게 진짜의 반응이 아니라면 자신이 정말 섬세하게 미쳐있다는 증거임을 이해한다. 동시에 동의한다. 맞아. 이건 내가 할 말은 아니지. 그렇기에 해본거야.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니까. 사실상 네 시체를 그러모았던 그 순간부터 나의 의식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닌거지. 네가 복수를 맹세한 그날부터 오롯이 나견일 수 없었던 것처럼, 지우스라는 이름은 더 이상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한 것이 아니야. 그보다는 공범자라는 개념의 또 다른 발음에 가깝지.

 

(복수해줄거죠.)

 

걱정하지 마, 나견.

 

"다 잘 될거야."

 

방은 어둡다. 불빛이 옅은 때여야만 나견의 목소리와 손길이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우스는 옅은 한숨같은 것이 제 손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새까만 눈꺼풀 너머, 묘지에서조차 그의 본명으로 남지 못한 자의 윤곽이 어른거리다 스러졌다.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손등이 홧홧하다.

잔불이라도 타오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