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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기타

[무기미도]그리고 코맹맹이 소리로 말해도 못 미덥습니다

-치이+국장

-치이 복종도 40% 특수대사 약 스포일러 있음.


 

이제 좀 괜찮습니까.

 

치이가 묻는다. 국장은 그리 깨끗하다고는 하기 어려운 천조각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숨소리는 그리 고르지 않고 손수건 아래쪽으로는 붉은 빛이 번진다. 코에서 피가 흐르는 까닭이었다. 함께 있는 치이의 명예를 위해 말하자면, 외부의 충격에 의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일차적인 원인을 짚으면 아무래도 국장 탓이 되므로 치이는 그에 대한 것은 그만두고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무미건조한 벽은 어둡다. 공기는 습해서 아무래도 상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 사람들 늦는군요.

 

그 사람들이란, 당연히 이번 파견 임무에서 함께 나온 팀원들을 말한다. 국장은 기본적으로 수감자들에게 임무를 주거나 함께 나설 때 팀으로 행동하지 단독으로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 (피치 못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러므로 이 상황은 피치 못할 결과물이다. 치이는 한숨을 내쉬고는 쓰고 있는 모자의 캡을 매만졌다.

 

자기 능력을 너무 과신하는 거 아닙니까, 국장 나리?

 

국장이 앉아있는 자리는 이 어두운 공간에서 유일하게 안락함을 얻을 수 있는 소파 위였다. 물론 여기저기 곰팡이가 슬었고 어디는 천이 뜯어져서 안쪽 내용물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있지만 바닥에 먼지나 돌멩이가 깔린 환경에서 그런 단점은 사소해진다. 다만 낡은 것은 낡은 것이라 국장이 살짝만 몸을 움직여도 무언가가 삐걱이는 불길한 소리가 났다. 치이는 그게 국장이 자신에게 똑바로 말을 전하기 위해 몸을 기울였음을 알았다.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네 덕분에 살았어.

허.

 

헛숨이 나오는 것은 기가 막혀서다. 치이는 그대로 한 손에 들고있던 챙챙이를 살짝 안으로 굽혀들고는 국장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간다. 바닥에 깔린 돌멩이가 발소리에 짓눌려 뿌득, 비명을 질렀다.

 

지금 그런 말을 할 정신머리입니까?

그래도 말할건 말해야지.

 

국장의 시선은 늘 올곧다. 색채는 어둠에 가까운데도 그 속에서 이 정도로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적어도 치이는 이 신디케이트에서 지내는 동안 그런 눈빛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사람을 믿고, 선을 믿고… 미래를 믿는 눈.

 

네가 없었으면 더 곤란했을 거야.

고마우면 추가수당이나 더 주십쇼.

 

더 말을 나누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치이는 말을 끊기로 한다. 하지만 대화라는 것은 성가시게도 다른 한 쪽이 일방적으로 시작해도 성립하는 것이다.

 

전에 말한 앨범 사줄까. 「데드 레드」…?

「데드 러버 라디오」요. 용케 기억하네요.

겨우 2주밖에 안됐는걸.

 

겨우 2주라. 치이는 시선을 복도쪽 문에 고정한 채 눈꺼풀을 깜박인다. 2주의 시간은 어떤 자에게는 눈깜박할 사이겠지만 또 어떤 자에게는 영겁에 가까운 긴 시간이기도 하다. 후자는 대체로 불안한 처지에 놓인 자가 그렇다. 그런데도 그 말을 부정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치이는 챙챙이와 걸걸이를 좀 손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요. 무르기 없깁니다.

근데 물품 검수를 받아야해서 시간은 좀 걸릴거야.

그 부분은 국장님의 힘으로 어떻게 안됩니까?

안돼.

 

치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순간 그가 짓고있을 표정을 보고싶지 않아진 탓이다.

 

아무리 그래도 과로로 코피 터진 사람 보호하면서 고립상황을 빠져나왔는데 그 정도는 해주시죠.

 

따라서 말의 속도가 빨라진다. 뒤에서 조금 침묵이 이어지나 싶더니,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대체 얼마나 좋아하는거야?

그럭저럭이라 해두죠.

알았어, 꼭 구해올게. 약속해.

여기서 약속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왜?

파기율 120%거든요.

 

국장은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픽 웃는다. 치이는 고작 그 말에 힘을 주어 말한 자신에게 넌덜머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