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차 창작/기타

[봉신연의/태을+나타]다시 태어난 너는

한때 발레를 배웠다고 한다.


퍽 의외인지라 이유를 물어보면 '어머니가 추천해줬으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배우면서 즐거웠는지를 들어보면, '몸을 움직이는건 나쁘지 않았어.'라 말하는 얼굴이 얌전했다. 태을은 그 옆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들고있던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었다. 봄과 여름 사이, 열기를 머금었어도 그리 덥지 않은 햇살이 두 사람의 몸을 타고 비스듬히 미끄러지며 강물 위에 긴 그림자를 남겼다.


"지금 무용을 배우는 것도 몸을 움직이는게 좋아서야?"

"응. 어머니도 기뻐하시고."


무엇보다 연습을 하다보면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까.


덧붙여진 말은 차분하다. 입 안에 남은 아이스크림은 진한 소다맛을 남기며 목구멍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하얀 다리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석양빛으로 물든 채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강물을 가만히 쳐다보는 나타의 붉은 머리카락이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여전히 아버지를 싫어하는구나."

"그쪽이 나를 싫어하는거야."


분풀이라도 하듯이 아이스크림을 기세좋게 먹어치우는 나타의 모습이 그제사 자신이 기억과 맞춰진다. 아무도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태을은 안도감 뒤에 숨어있던 새까만 무엇인가가 가만히 고개를 드는 것을 느끼고 입가를 굳혔다.


(나는 너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었는데.)


대체 언제적에 만든 존재 이유인가. 지금은 그때와 여러모로 상황이 다르다. 봉신계획은 이미 끝나, 하나의 전설이 되어버린 지 오래고 그 시절의 면면들은 숨을 거두었다가 다시 첫 울음소리를 터뜨리기를 반복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나타는 물론 태을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럴진데 그토록 많은 삶의 갈래 속에서 한 두번 정도 다른 길을 가는게 뭐가 나쁘겠는가.


하물며 그것이 본인이 원한 길이라면.


"내가 할 말은 없겠지~"

"므?"

"아, 혼잣말이야." 


한 손에 아이스크림 막대만 남긴 나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태을은 그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들고있던 가방끈을 추스렸다. 그걸 귀가의 신호로 받아들였는지 나타 또한 난간에서 몸을 떼어냈다. 그 교복 위에 난간 모양으로 먼지가 붙어있었다. 태을은 하얗게 남은 먼지자국을 탁탁 털어내주며 입을 열었다. 


"이제 곧 대회지? 기대하고 있을게."

"보러 오려고?"

"당연히 가야지. 우리 동생의 활약을 볼 기회인데."

"누가 누구의 동생이야."


나타는 툴툴거리면서도 손을 뿌리치지 않고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태을을 친한 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기쁘기도 하고 어쩐지 쓸쓸하기도 해서, 태을은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기 시작한 나타와 천천히 보폭을 맞췄다.


진한 석양 속에서 기억하는 자와 기억하지 못하는 자의 그림자가 나란히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