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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기타

[봉신연의/태을+나타]잘 먹는 아이는 보기도 좋다

*현대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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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이 놓였다.


아니, 잠깐 착각을 하고 말았다. 태을의 눈 앞에 놓인 것은 탑이 아니라 파르페였다. 비록 유리잔 안에 층층이 쌓인 과일과 아이스크림, 시리얼 위에 동그랗게 퍼올린 아이스크림을 차곡차곡 올리고, 거기다 미니 와플과 막대과자와 슈크림과 과일과 큼직한 케이크를 올려(이건 거의 걸쳐져있는 수준이다) 마무리로 딸기를 장식한 뒤 초콜릿과 딸기시럽을 뿌린 모습이 흡사 어딘가의 석탑을 떠올리게 하지만, 아무튼 눈 앞에 놓인 것은 파르페였다. 주방에서 여기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이 탑…이 아니라 파르페를 옮겨온 점원에게 존경의 시선을 보내고, 태을은  맞은편 자리의 나타를 건너보았다. 


"엄청난 양이네. 나타, 다 먹을 수 있겠어?"

"너에겐 안 줘."


일단 이 점보 슈퍼 파르페의 값을 치룬건 나인데? 반장난 삼아 말을 걸었던 태을이 그렇게 말하든 말든, 나타는 어느새 챙겨든 포크와 스푼으로 유리잔에 걸쳐져있던 케이크를 집어 제 앞에 놓인 접시 위에 조심조심 내려놓았다. 그러고선 곧바로 파르페의 제일 위에 놓인 딸기를 포크로 찌르는 표정이 흡사 대군을 앞에 둔 장군만큼이나 비장했다.


"나타는 딸기를 먼저 먹는 타입이구나."

"말 시키지 마."


태을은 어깨를 으쓱이곤 자기 앞에 놓인 커피잔을 천천히 휘저었다.  그 사이 딸기를 먹어치운 나타가 층층이 올라앉은 아이스크림의 산을 위쪽부터 기세좋게 해치우기 시작했다. 과연 성장기 청소년의 식욕은 대단하다 해야할까. 눈 깜박할 사이에 아이스크림을 두 개나 먹어치우곤 케이크를 잘라먹은 뒤 다시 아이스크림에 손을 뻗는 그 모습은 한때나마 아이가 음식을 먹지 않는 존재였음을 믿기 힘들 정도였다. 처음에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타를 바라보던 태을은 문득 한 가지 걱정을 떠올리곤 입을 열었다.


"나타. 찬걸 그렇게 서둘러서 먹으면…."

"우."


늦은 모양이다. 태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스푼을 우뚝 멈춘 나타가 한쪽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스크림을 너무 빨리 먹어 생기는 두통(전문 용어로는 브레인 프리징이라고 한다)이 덮쳐온 거겠지. 마땅한 약도 없는지라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린 나타를 바라보다, 태을은 저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마침 그 소리를 들었는지 관자놀이를 누르던 나타가 눈을 치켜떴다.


"뭐가 재밌어?"

"앗,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라 그만."

"놀리는 거면 죽인다."

"미안미안."


태을의 가벼운 사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동안 노려보던 나타였으나, 이내 두통도 가셨는지 다시 파르페를 먹는 작업으로 되돌아갔다. 과자와 과일, 아이스크림을 번갈아가며 먹어치우는 그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올랐다가 다시 홀쭉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파르페의 높이는 빠른 속도로 낮아져갔다. 온통 달달한 걸로만 이루어진 파르페를 먹다보면 조금 물리거나 속도가 늦춰질 법도 하건만 그런 것도 없었다. 많이 먹고 많이 크렴. 태을은 입 밖으로 냈다간 당장 스푼이 날아와도 할 말 없는 생각을 했다.


"맛있어?"


대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스푼을 멈추지도 않는다. 쓴웃음을 지으며 커피를 홀짝이던 태을은 자기 앞으로 밀어젖혀진 접시 위에 놓인 것을 보고 눈을 깜박였다. 위에 초콜릿과 딸기 시럽이 뿌려진 슈크림이 다소 무신경하게 하얀 접시 위를 구르고 있었다. 태을이 고개를 드는 것과 동시에 입가에 시럽을 묻힌 나타가 입을 열었다.


"눅눅해졌어. 네가 먹어."

"취급이 너무하네…."

"흥."


정말로 눅눅해져서 태을에게 떠넘긴 것 뿐인지, 나타는 금새 파르페를 먹는 작업으로 되돌아갔다. 자그마한 미니 와플이 그 작은 입으로 쏙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던 태을은 어깨를 으쓱이곤 제 앞에 놓인 슈크림을 한 입에 집어넣었다. 나타 말대로 껍질이 눅눅하긴 했지만 안에 들어있는 크림은 부드러워 금새 목구멍을 넘어갔다.


"맛있네. 고마워, 나타."

"시끄러워."


스푼이 난폭하게 아이스크림에 꽂혔다. 태을은 그게 쑥쓰러움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