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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검은방

[검은방4]개인적 욕망의 구체화

-검은방 티저가 전부 나온 기념으로 적어봅니다. 

-태현이 안티가 아닙니다. 오히려 팬이라구요.

-신체적 구속X정신적 피폐=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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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혔다.

 

이제까지 수도 없이 받아온 그 감각이 불현듯 번개처럼 내리친 순간 심장이 발광했다. 천둥처럼 울려퍼지는 공포가 온 몸을 빠르게 장악하며 오장육부를 뒤흔드는 가운데, 류태현은 가쁜 숨을 내쉬며 몸을 뒤틀었다. 이제까지 이런 악몽을 대체 몇 번이나 꾸어왔는지, 이제는 어둠과 수면의 협력을 얻은 누군가의 질 나쁜 장난질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빈도로 나타나는 이 미친 꿈은 언제나 류태현의 감각을 희롱하고 심장을 옥죄며 그를 농락했다. 그리하여 공포와 혼란에 흠뻑 시달린 의식이 필사적으로 도망친 끝에 현실로 되돌아와 몸서리치고 있노라면, 어느새 품에 안겨든 절망과 안도와 슬픔이 마음 속 불안과 죄책감으로 변하며 차곡차곡 무게를 더해가는 것이다.

 

그 무게에 이끌리듯 서서히 잠겨가는 마음은 바다 속의 닻. 그대로 방치한다면 쉽게 끌어올릴 수도 없는 데다 손마저 닿지 않는 곳으로 가라앉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영혼과 정신을 허무의 바다에 익사시키고 말리라.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당황해선 안된다',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섣불리 절망해선 안된다'-며 날뛰는 감정과 울부짖는 이성을 피해 몸을 웅크리려던 그였지만, 마치 자기애를 과시하는 것 마냥 자기자신을 꼭 껴안은 팔이 그의 명령을 거부했다. 다리조차 무언가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질기고 단단한 포장지가 온 몸을 완전히 포장한 뒤 끈으로 단단히 묶여버린 듯한 감각. 분명 병원의 시트는 아니다. 이따금 거기에 몸이 감기기는 하지만 이렇게나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휘감긴 경우는 없었던데다 애초에 시트는 이렇게 답답하거나 질긴 종류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아니, 아니겠지.

그는 강하게 부정하며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눈은 주변을 파악하지 못했다. 꿈의 애매모한 어둠에서 갑자기 현실로 되돌아왔기 때문은 아니었다. 무기질적인 어둠 속, 눈가에서 느껴지는 물리적인 감촉은 무언가 그의 시야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었다. 더불어 입술을 비집고 들어와 혓바닥을 짓누르고 있는 불청객의 감촉까지 인식하게 된 그의 의식은 벼랑에서 구르듯 처참하게 뒤흔들리며 어지럼증를 유발했다. 그 혼란 속에서도 온몸을 뒤덮고있는 속박감이 성실하게 제 역할을 다하는 가운데, 그는 비통한 숨결을 내뱉으며 인정했다.

 

「갇혔다」

 

그러므로 도망쳐야한다.

이 좁은 공간에서, 이 갑갑한 구속으로부터, 

…자신이 만들어낸 처참한 괴물로부터.

 

다시 한 번. 여태껏 그래왔듯이.

 

그동안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조금은 여유를 되찾고있던 마음이 다시금 쇠창살 사이로 조각조각난다. 귓가에서 울리는 심장박동 소리가 어지럼증과 더불어 머리를 띵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얼마나 많은 인질이 희생되고, 얼마나 깊은 무력감과 슬픔을 느껴야 하는 걸까. 자신은, 여기서, 대체, 무엇을ㅡ.

 

거기까지 이어지던 생각을 억지로 깨부순다. 비록 마음의 상처가 곪아터질지언정 이런 생각에 빠져 행동을 소홀히 하는 것이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길이라고 자신을 꾸짖으며, 태현은 우선 몸의 자세를 바로잡았다. 감각이 억지로 차단된 채 온몸을 감싸고 있는 구속복이 피부를 잡아당길 때마다 마음이 초조해졌지만 지금은 찬찬히 자유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고, 눈과 입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이상의 정보를 분석해볼 때, 지금 그를 포박하고있는 것은 몸을 감싸듯 묶은 무언가와 안대, 재갈의 세 종류일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은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태현은 부자유스러운 몸을 뒤틀어 등 뒤의 벽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는 귀에 걸쳐진 끈을 벗기 위해 연신 얼굴을 비벼댔다. 정신 집중을 위해 재갈을 앙물어보려고도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재갈은 둥그런 몸을 빙글빙글 돌릴 뿐 태현의 노력에 제대로 응해주지 않았다. 다행히 안대는 몇 번 용을 쓰자 벽의 우둘투둘한 돌기에 걸려 맥없이 떨어져나갔지만 그 무렵 태현의 입술과 재갈 사이로 새어나온 타액은 이미 턱을 적시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ㅡ라는 자아 성찰은 일단 뒤로 미루고, 태현은 가느다란 눈으로 어쩐지 어두운 주변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근처에 낡은 철제 선반이 쓰러져있고 온갖 종이다발과 사무용 책상같은 물체가 널부러져있는 방에서는 오래되서 바래버린 종이와 관리를 하지 않아 녹슬어버린 쇠, 그리고 곰팡이가 슬어버린 냄새가 모조리 섞여있었다. 게다가 이미 밤이 되었는지 자신이 앉아있는 곳을 제외한 주변은 실루엣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입 안의 재갈을 데굴데굴 굴리던 태현은 -어느샌가 그는 이 행위에 익숙해져 있었다- 문득 자신을 속박하고있는 것이 정신병원에서나 볼 법한 구속복이라는 것을 알고 아연해졌다.

 

'대체 이런건 어떻게….'

 

경악으로 잠시 비어버린 머리를 어떻게든 추스리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태현은 일단 주변에 있는 것으로 어떻게든 팔 부분을 찢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철제 선반의 모서리가 부자연스럽게 휘어져 튀어나와있던 덕분에 탐색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구속복이 제법 근성 넘치는 재질이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부분부분 녹슬어있는 모서리에만 의지한 채 천을 찢어내던 태현은 몇 번인가 초조함을 느끼고 발광할 뻔했지만, 그때마다 방향이 엇나간 모서리의 꼭지점이 구속복 아래의 피부를 사정없이 찔러대어 어떻게든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무의미하게 재갈을 깨물어대던 태현은 -물론 재갈은 그때마다 헛돌음질을 함으로써 그의 인내심을 태워버리다시피 했다- 마침내 모서리의 귀퉁이가 구속된 팔 부분의 천을 모조리 찢어냈을 무렵 두번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한숨도 당연하다는 듯 재갈에 의해 분쇄되었지만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너무 용을 쓴 탓인지 심장 소리에 맞춰 두근거리는 관자놀이를 한 손으로 살며시 짚은 뒤, 태현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팔에 감사하며 다리의 구속도 스스로 해제했다. 너덜거리는 소매 아래의 손은 우스울 정도로 덜덜 떨려서 희미한 실소가 터져나왔다.

 

마지막으로 뒷머리를 거의 감싸다시피하는 고리를 반 억지로 벗겨내려던 태현은 갑자기 어깨를 누르는 피로를 느끼고 벽에 느슨하게 몸을 기댔다. 소매를 찢어내는데 집중하느라 저도 모르게 상당히 높아진 심장고동이 귓가에서 울리고, 그 장단에 맞춰 관자놀이도 꿈틀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두통이 찾아올 것만 같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 변변한 약이 있을리도 없으니 탈출 내내 끔찍한 경험에 시달리겠지. 벽에 기댄 몸에서 묘하게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적어도 무거운 눈꺼풀만은 부릅뜨려던 태현은 갑자기 어딘가에서 들리는 발걸음을 듣고 흠칫 정신을 차렸다. 단단한 바닥을 차는 발걸음은 점점 이쪽으로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거기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문의 손잡이를 비틀어 열어ㅡ….

 

"뭐하냐? 류순경."

"하… 후열헌해?"

"못 본 사이에 언어중추가 퇴행했나?"

 

문 너머에서 나타난 남자-하무열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류태현에게 가벼운 타박을 던지고는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입에 그건 뭔가? 그새 그런 취향이라도 생겼어?"

"!! 아히, 이헌…."

 

태현이 뭐라고 하려던 사이, 그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하무열이 그의 뒷통수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윽고 몇 번의 금속음과 가죽같은 것이 스치는 소리가 난 뒤 태현의 입가를 짓누르던 재갈이 시원스레 벗겨져 나갔고, 태현은 겨우 자유로워진 입으로 거친 한숨과 기침을 내뱉으며 하무열이 한 손으로 쥐고있는 재갈을 바라보았다. 대체 얼마나 그의 입을 점령하고 있었는지 모를 그것은 타액에 젖은 채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다.

 

"허강민이도 점점 취향이 괴상해지는구만."

"………."

"그나저나, 자네 왜 이렇게 만신창이인거야? 귀쪽에 긁힌 자국까지 있는데."

"아, 이건 안대를 벗으려다가 그만…."

"안대애?"

 

그 놈 진짜 안되겠구만. 하무열이 혀를 차는 소리를 들으며 축 처진 몸 구석구석에 다시 힘을 준 태현은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려는 자세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방금 전 하무열의 난입으로 방 안의 공기가 들썩였는지 코끝으로 새삼스런 먼지 냄새가 느껴졌다.

 

"…그런데, 선배도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어두운데도 재갈을 풀어내시다니…."

"무슨 소린가 류순경. 지금도 충분히 환하지 않나."

"네? 하지만 이렇게 어두운데…."

 

의아함을 느끼며 몸을 일으키려던 태현은 무릎에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바닥을 짚은 손바닥으로 차가운 냉기가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땀 한 방울이 목 뒤를 타고 구속복 안으로 흘러드는 가운데, 태현은 자신을 부르는 하무열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신발을 바라보는 각도에서 위쪽으로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의 얼굴 윤곽은 이상할 정도로 흐릿해서 표정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자네, 설마."

 

하무열은 말을 잇지 못했다.

태현은 촛점이 맞지 않는 눈을 살짝 찌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눈꺼풀을 비볐다.

 

 

…주변에 들어찬 검은 안개는 한참동안이나 없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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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집중이나 무리할 경우 눈이 침침해진다던가 촛점이 안 맞게 된다던가, 좋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