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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검은방

[검은방3/승범태현]감금물

-참극의 라디오 캐릭터 설정을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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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기억은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자신을 부르던 누군가의 목소리.
그래서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하게 여기면서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린 순간 축축한 수건같은 것이 코와 입을 한꺼번에 덮었고ㅡ

 

거기서 기억이 끊겼다.
그리고 지금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

 

의식이 돌아온 암흑 속에서 눈을 뜨고,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눈동자로 불안하게 주변을 살폈다. …희미한 빛이 있긴 하지만 눈앞이 혼란스러워서 뭐가 뭔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입안은 어쩐지 텁텁한데다 머리는 한 구석이 묘하게 찡하고 울린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직이려고했지만 몸이 의자 같은 것에 끈으로 단단히 묶여있는 모양인지 꼼짝할 수도 없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양손의 손가락 정도. 태현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도로 감았다. 바짝 마른 목이 갈증에 시달렸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가 대체 어디며 누가 자신을 여기로 데려왔는가 하는 사실이었다.

 

태현은 작게 헛기침을 터뜨리고는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토해냈다.

 

"저기… 아무도 안계세요?"

 

응답없음.
태현은 좀 더 목소리를 높였다.

 

"…이봐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희미한 빛이 존재하는 공간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메마른 목을 억지로 혹사시킨 탓에 갈라진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목덜미를 찔러드는 날카로운 고통에 태현이 기침을 터뜨리는 사이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슬슬 어정쩡한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그쪽을 돌아본 태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문으로 추정되는 그림자를 열고 들어오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승범군…?"
"안녕하세요, 태현 형. 일어나셨네요?"

 

마치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와 같은 태연한 반응에 잠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태현은 머리를 흔들며 잡생각과 뒤섞인 오한을 떨쳐내고는 승범을 향해 말을 걸었다. 목이 지나치게 마른 탓인가,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기… 승범군, 여긴 어디야? 나는… 왜 여기 있는거지?"
"여기요? 여긴 저희 집 안쪽 창고에요. 제가 태현 형을 여기로 데리고 왔어요."
"…네가? 어째서? 아니, 그보다 나는 왜 묶여있는거야?"
"…아, 죄송해요. 좀 세게 묶였죠?"

 

승범이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동료들에게 놀림받거나, 사소한 실수를 지었을때 보이던 그 표정이다.

 

"죄송합니다. 조금 들떠버려서…"
"……"

 

태현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니까, 지금 승범이가 자신을 납치했다는건가? 어째서, 왜? 그렇게나 내가 미웠나? 물론 몇번인가 장난을 친 적은 있지만, 그렇게 심한 건 아니었을 텐데…. 아니, 어쩌면 그것이 승범의 가슴에 상처로 남았던 걸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태현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그 말을 들은 승범이 눈을 크게 떴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태현 형을 미워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하, 하지만- 아깐 나를 납치한게 너라고 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제가 태현 형을 납치한 건 그런 이유가 아니에요."
"그럼… 어째서야?"

 

"그건…"
"그건?"
"제가 태현이 형을 좋아하니까…"

 

승범의 얼굴에 쑥쓰러워하는 표정이 떠오른다. 태현은 심장을 옥죄어오는 싸늘한 기운에 순간 몸을 떨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승범의 발언과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 사이의 연결점이 보이지 않는데, 승범은 마치 그것이 당연한 일인양 이야기를 하고있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이 마치 금방이라도 자신의 목을 조를 것 처럼 느껴진 탓이다. 그런 태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몇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온 승범이 한숨을 흘리며 의자에 앉아있는 태현의 몸을 꽉 껴안았다. 단단한 팔이 태현의 어깨를 감싸안는다.

 

"아아, 겨우 말했다…"

 

태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후배의 고백과 납치당한 자신 사이의 인과관계는 아직도 제대로 보이지 않은 탓이었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은 마치 자신이 갇힌 이 공간처럼 애매모호한 암흑. 고백을 하려는 마음이었다면, 어째서 일부러 이런 짓을 한걸까? 단순한 고백 이벤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극단적이다. 승범은 이런 거친 방법을 쓰는 성격이 아니었을텐데…?

 

그의 머릿 속이 복잡해진 사이 승범이 그에게서 한걸음 물러섰다.
태현은 저도 모르게 초조함에 등이 떠밀려 황급히 입을 열었다.

 

"스ㅡ승범아? 그럼 나는 언제 풀어주는 거야?"
"…………."
"…승범아?"
"…그 사람들에게로는 보내주지 않아요."
"그, 그 사람들…이라니?"

 

마지막 말을 들은 승범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져가고, 
태현은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헛숨을 삼켰다.

 

"태현이 형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말이에요…!!"
"뭐ㅡ"

"그 사람들하고 있으면 태현 형은 저를 봐주질 않아요. 그 사람들하고 있으면 태현 형은 저에게만 웃어주지 않아요. 그 사람들하고 있으면 태현 형은 쓸데없는 이름까지 불러버려요. 그 사람들하고 있으면 태현 형은 내 말을 잘 들어주질 못해요.

 

나만 바라봐줬으면 좋겠는데, 나만 보고 웃어줬으면 좋겠는데, 나만 생각하고 내 이름만 부르고 나에게만 말을 걸어주면 좋을텐데… 다른 사람들이 자꾸만 자꾸만 그걸 방해하고 방해해서… 그런건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요…!!

 

태현 형을 제일 좋아하는건 나고, 제일 사랑하는 것도 나고, 가장 아끼는 것도 나란말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나 이상으로 태현 형을 좋아하거나 사랑할 수 있을리 없어…!! 하지만 태현 형은 상냥한 사람이니까 여기서 풀어주면 또 그 사람들한테 가버릴거에요. 그러니까 보내줄 수 없어요. 보내주지 않을거에요. 여기에서 계속 계속 저와 둘이서만 있어주세요…!!"

 

…태현은 무언가를 말하려 입술을 벌렸다. 벌어진 입술에서는 사람의 말 대신에 의미불명의 바람소리같은 것이 새어나왔다. 자신은 대체 이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하면 좋은걸까. 생각에 답은 없고, 갈증만이 더더욱 심해져간다. 견디지 못한 태현이 기침을 하자 메마르고 갈라진 호흡이 발작적으로 튀어나갔다.

 

"…아, 죄송해요. 목 마르시죠?"

 

그 기침소리에 방금 전까지의 광기어린 애정고백을 거짓말처럼 멈춘 승범이 페트병의 뚜껑을 비틀어 여는 소리를 냈다. 처음부터 저걸 들고왔었더라면 좀 더 빨리 건네주었으면 좋았을텐데. 태현은 도피성 짙은 생각을 하며 멍하니 눈꺼풀을 깜박였다. 뒤로 돌려 묶여진 손가락 끝이 슬슬 저릿저릿해져오고 있었다.

 

…그 감각에 일순 정신이 팔렸던 태현은 뒤늦게 자신의 입으로 흘러들어오는 수분을 느끼고 황급히 제정신을 차렸다. 입가에는 예상했던 페트병의 감촉 대신 부드러운 뭔가가 닿아있었다. 그것이 승범의 입술이고, 승범이 자신이 먼저 물을 머금은 다음 자신에게 입을 맞추는 형식으로 물을 먹였음을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다. 뒤이어 키스로 이어진 그 행위에 태현이 몸을 움츠러뜨리며 긴장하는 것과 동시에 입술을 떨어뜨린 승범이 태현의 얼굴을 끌어안으며 황망히 중얼거렸다.

 

"태현 형도 저를 사랑하고 있으신거죠?"
"……."

 

태현은 대답하는 대신에 어쩐지 울것같은 빛을 띄고있던 승범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문득 껴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단단히 묶인 팔은 앞으로 나아가기는 커녕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는 말없이 눈을 감으며 자신과 맞닿아있는 승범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어딘가에서 비릿한 철의 냄새가 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