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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검은방

[검은방3/승범태현]물에 젖은 방아쇠

 

태현은 승범에 의해 욕탕으로 내던져졌다. 찰랑이는 수면은 갑작스럽게 방문한 그를 찰랑이는 파도와 함께 감싸안았다. 그 대응은 어머니의 그것만큼이나 온화한 것이었지만 태현은 거기에서 어머니의 온기를 찾지 못했다. 피부에 닿는 뜨거운 물은 따스했지만 입과 코로 치고들어오는 온수는 점막을 둔중하게 긁어내리는 것처럼 욱씬거리는 통각을 선사해줄 뿐이었다. 튀어나온 날숨들은 기포를 이루며 위로 끌려올라가는 가운데 손실된 양 만큼의 산소가 보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허파는 일대혼란에 빠진 채 필사적으로 물의 출입을 틀어막았고, 뇌는 실제로는 그리 길지 않았던 잠수시간을 영원의 일부로 재해석하는 오류를 벌임으로서 태현의 혼란을 한층 가중시켰다. 단순히 물에 빠진 것 만으로도 그럴진대, 일어나려고 애를 쓰던 태현이 자신의 목에 감겨드는 두 팔을 발견했을 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찾아드는 것은 혼란, 그 뒤를 잇는 것은 염려하던 일이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다는 공포와 이것을 어째서 피하지 못했는가하는 애환 섞인 후회, 마음의 문턱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치고 있는 것은 이대로 목숨을 포기하면 어떨까 하는 자기파괴적인 유혹이었지만 태현은 그 감정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실 허락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느슨하게 또아리를 틀고있던 생존본능은 불현듯 찾아온 위기에 이미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었고, 태현은 그 충동질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허리춤의 권총집으로 다가간 손이 권총을 그러쥐고 단숨에 물밖으로 달려나간다.

물 속에서는 시야가 일그러져있지만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윤곽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태현은 그렇게 자신의 목을 조르는 승범의 머리를 겨눈 채 힘겹게 숨을 참았다. 산소를 저장하지 못한 육체가 어서 빨리 방아쇠를 당겨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뭘 하고 있는거냐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분명 여기서 집게손가락에 힘을 약간만 주면 태현은 살 수 있었다. 그것은 승범의 목숨을 원 바이 원으로 교환한 댓가로 주어지는 것이었고, 임시 신뢰관계에 놓여있던 그에게 목숨이 빼앗기기 직전의 상황에 놓여있는 태현이라면 거리낌 없이 승낙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런데도 태현은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다.

 

 

 

1분, 혹은 30초, 어쩌면 2초나 5초일지도 모르는 시간이 지나고,

태현의 목을 조르던 손이 그대로 그의 멱살을 붙잡아 끌어올렸다.

 

부글거리며 물이 스쳐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오랜 시간동안 온수에 침잠되어있던 얼굴이 비로소 바깥으로 노출된다. 한계까지 억눌려있던 폐가 외부에 존재하는 산소를 끌어모으기 위해 있는 힘껏 부피를 늘리고, 그 속도에 따라가지 못한 기도가 경련을 일으키며 밭은 기침을 토해냈다. 온수에 짓물릴뻔한 입 안과 코끝에서 어딘지 모르게 단내와 뒤섞인 철맛이 나고 기침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시야에서 붉은 빛이 엿보인다. 하지만 어딘가에 상처가 났다는 감각이나 기억은 없기에 영문을 모른 채 일단 호흡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에만 달라붙어있던 태현은 숨이 넘어갈 듯한 기침을 몇 십번이고 반복한 다음에서야 간신히 자신의 정면을 향해 촛점을 맞출 수 있었다.

 

"…왜 안 쏘는거야?"

 

손에 쥐어진 총구는 정확히 안승범의 한쪽 안구를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태현은 감히 먼저 손가락을 움직여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렇다고 손을 움직여 권총을 내려놓지도 못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갔다가 겨우 되돌아온 탓에 본래의 힘을 잃어버리고 파들파들 떨리는 손가락으로는 떨리는 총구의 궤도를 한 군데에 묶어두는게 한계였다. 어떻게든 대답하려 크게 숨을 들이켰던 태현은 그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한창 울음을 터뜨릴때 내는 소리와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고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감정이 마구 날뛰고, 총구는 제자리에서 쉼없이 덜걱거리고,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끝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서서히 일그러지는 시야 속에서 걷어차이듯이 토해진 날숨과 서로 껴안고있는 흐느낌을 듣고,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울고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 안 쏘는 거냐니까."

 

질문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쇳덩어리만큼이나 무겁다. 태현은 자신을 추스리듯이 눈물 섞인 기침을 거듭하며 승범을 바라보았다. 얼굴의 표정은 명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 눈빛에 서려있는 감정은 흐릿한 눈으로도 얼마든지 읽어낼 수 있었다. 짙게 깔려있는 의문과 아직도 군데군데 남아있는 살의, 그리고 유령처럼 희미하게 서려있는 것은….

 

"…죽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태현의 대답을 들은 승범이 짧게 웃었다. 태현도 웃으려고 했지만 입꼬리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울고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심장에서 잘각거리고 있는 무수한 앙금이 웃음이라는 감정이 터져나오는 것을 쉬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결국 태현이 한 일은 짓눌린 숨을 토해내며 몸을 들썩이는 일 뿐이었고, 다만 손에 붙잡혀있던 권총만이 별개의 생물마냥 달각거리며 유쾌하게 흔들렸다. …미친 생각이겠지만, 권총이 자신 대신 웃어주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걸 안 쐈으면 당신이 죽었을텐데?"

 

총구는 여전히 안승범의 안구를 겨누고있다. 태현은 대답없이 크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깜박였다. 볼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린 물방울이 수없이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나가는 가운데 멱살을 붙잡고 있던 안승범의 손이 태현의 몸을 신경질적으로 흔들었다.

 

"당신이 무슨 신이라도 되나? 죽이지 않으면 죽을 상황이라고!! 방아쇠를 당겨버리면 끝이잖아!"

"…그런 짓은 하고싶지 않습니다."

"하! 대단한 분 나셨군 그래. 선인 노릇이라도 할 생각이야? 그래봤자 인간은 죽으면 다 소용없다고!!"

 

"그러니까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터져나온 목소리는 차라리 오열에 가깝다. 안승범이 흠칫 몸을 떨고, 태현은 다시금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는 감정을 느끼며 총을 꽉 그러쥐었다. 발포를 위한 준비동작이 아니라, 시련을 마주한 신자가 십자가를 그러쥐는 것과 비슷한 행위였다. 이를 꽉 악물어서 감정이 말을 짓밟아버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고, 태현은 총구에 가려지지 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한 마디 한 마디를 힘겹게 뱉어냈다.

 

"말했었죠… 저는 이번이 세번째 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 눈앞에서 죽어갔는지… 알고 있습니까?!"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목이 부러져서,

천장에 깔려서,

목이 졸려서,

칼에 찔려서,

독을 마셔서,

총을 맞아서,

둔기에 얻어맞아서,

 

…복수의 허무함을, 알아서.

 

"죽으면 그걸로 입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그런 장면을, 저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봐왔습니다!! 죽은 사람은, 그냥 죽은 시체…!! 영혼이 남아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다시 부활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사람은,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어진단 말입니다!!!

안승범씨는, 그렇게 되도 좋은 겁니까?!"

 

꿈틀, 하고 멱살을 붙잡은 팔이 움찔거린다.

태현은 겨눈 총구 너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유리를 밟는 듯한 위태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했던대로, 저는 신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살아남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끔찍한 경험은… 이제, 넘치도록 충분합니다…."

 

무너져내리는 건물 아래 승아와 그 아이가 깔려있다.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고, 둘 다 구해달라고 온 몸으로 외치고있다.

그런데도 구할 수 있는 것은 둘 중 하나.

 

그는 미칠 것 같은 고뇌 속에서 승아를 선택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 마리의 괴물이 탄생했다.

 

그때의 행동에 악의는 없었다. 살의도 없었다. 해를 끼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있었던 것은 오직 사랑하는 이를 구하고 싶다는 피맺힌 마음뿐이었다. 그런데도 거기서 살의는 자라났다. 자라나서 이렇게 되돌아왔다. 되돌아올때마다, 어째서 그때 그 아이를 죽인거냐고 되물어온다. 그게 본심이 아니었다고 아무리 외쳐도 그 아이가 죽은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죽은 그 아이의 영혼이 돌아와서 자신을 변호해주지도 않는다. …죽음은 죽음. 아무리 발버둥쳐도 되돌릴 수 없다. 마음 속에 심어진 죄책감과 자책과 후회는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나고, 완전한 속죄의 길은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손에서 그 이상의 죽음이 탄생하지 않기를 빌면서 살아가는 것 뿐.

 

"…그러니까 저는 설령 당신이 저를 죽이려 한다해도 당신을 죽이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두 사람 다 살아서, 여기를 빠져나갈 겁니다. 맨 처음에도, 그렇게 말했지 않습니까…."

"…멍청한 이야기야. 당신 바보지?"

"……………."

 

태현은 침묵한다. 승범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물 속에 담궈져있던 태현의 몸을 끄집어 올렸다. 물소리와 함께 푹 젖은 태현의 몸이 욕조 바깥으로 비틀비틀 끌려나왔다. 그대로 손을 놓자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아버리는 태현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승범은 시선의 높이를 맞추듯이 그의 정면에서 무릎을 굽혔다. 숨이 한번 끊길 뻔한 데다가 혼신의 힘을 다한 말을 뱉어낸 탓인지 태현의 안색은 형편없는 색으로 변해있었다. 총을 쥐고있는 손가락 끝도 새하얗게 변해있어서, 힘을 조금만 주면 석고처럼 부서질 것 같다.

 

"당신, 죽을 것처럼 보여."

"…안 죽습니다… 저도, 당신도…."

"그런 몰골이어서야 설득력이 없는데."

"…………."

 

대답은 금방 돌아오지 않는다. 물이 증발하면서 조금씩 체온을 빼앗아가는 것인지 웅크리고있는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승범은 짧게 혀를 차고는 물에 젖어있는 태현에게 자신의 상의를 벗어 내밀었다. 살짝 충혈된 시선이 그 옷을 타고 올라오다 승범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멍하니 깜빡이는 눈동자가 아무래도 영 상황을 파악 못한 것처럼 보여, 승범은 쫄딱 젖은 태현의 제복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걸치고있어. 젖은 걸 그냥 입고있는 것보단 낫겠지. …수갑때문에 갈아입긴 글렀고."

"아… 감사합니다."

 

예의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태현이지만 손에서는 여전히 총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일부러 놓지 않고있다기보다는 너무 힘을 준 탓에 도리어 손가락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태현이 미간을 찡그리며 낑낑대는 것을 지켜보던 승범은 다짜고짜 그 손을 잡아올려 총을 쥐고있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내기 시작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은 지독하게도 굳어있었다. 대체 얼마나 세게 힘을 준거야. 이래서야 제때 총을 쏠 수도 없었겠구만. 승범의 조롱조에 태현이 희미하게 웃었다. 죽음의 파리한 빛깔을 떠올리게 하는, 처연하고 울적한 웃음이었다. …승범은 문득 자신이 죽인 남자를 떠올리고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일입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냐."

 

고개를 저어 영상을 지운다. 그러던 중 승범은 어느샌가 자신이 자연스레 권총을 쥐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빈 손으로 옷을 추스리고있는 태현은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승범은 오른손에 쥐어진 총을 잠시 바라보다 왼손 끝에 연결된 수갑을 바라보았다. 체인의 길이는 대략 두뼘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파리한 안색의 태현이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눈에 담고, 승범은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총구를 겨눴다. 태현이 흠칫 고개를 돌린 것과 총구에서 불꽃이 튀어오른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리고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퍼졌다.

 

"반동이 제법 있구만."

"…무, 무슨, 짓을…!!"

"쏴서 부쉈어. 경찰이면서 총소리에 일일이 놀라지말지?"

 

능청스레 대답해주고, 승범은 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박살난 수갑의 반대편에서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태현이 입술을 뻐끔거렸다. 정신차리라는 의미에서 그 뺨을 가볍게 몇 번 두들겨준 다음, 승범은 태현의 앞에 아예 푹 주저앉으며 말했다.

 

"연결되어있으니까 불편하잖아. 젖은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고, 부축하기도 걸리적거리고. 그래서 부쉈어."

"…다, 당신이란 사람은…!!"

"바람맞은 애인같이 말하지마. 그렇게 심한 짓도 아니잖아."

 

승범은 그렇게 말하며 태현의 어깨 위에 걸쳐진 자신의 옷을 덜어냈다. 안감이 약간 젖었을 뿐, 그리 많이 젖어들지는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그는 얼굴에 히죽이는 웃음을 띄우며 태현에게 운을 띄웠다. 스스로 갈아입을래, 아니면 내가 벗겨줄까? 태현은 승범의 말에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긴 채 승범에게서 등을 돌렸고 승범은 그런 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일부러 먼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죽이고싶지 않았습니다…!!」

 

목욕탕 어딘가에서 태현이 외쳤던 말이 다시금 반사되어 흘러나온다. 

아마도 자신의 환청일 그 소리에 고개를 세차게 저어버리고, 승범은 태현을 향해 짐짓 웃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다 갈아입었으면 업어줄까? 걷기도 힘들어 보이던데?"

"…걸을 정도의 체력은, 있습니다…!!"

"너무 객기 부리지 마시지. 그쪽이 쓰러지면 나도 손해야."

 

승범은 그렇게 말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태현은 제복 안의 와이셔츠 차림으로 승범의 상의를 걸친 채 탐탁찮은 표정을 짓고있었다. …표정은 그렇다치더라도, 와이셔츠의 젖은 천이 살갗에 달라붙어있는게 묘하게 두드러져서 눈을 두기가 힘들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큰 자신의 상의에 손등이 살짝 가려져있는 모습이 왠지….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겁니까?"

 

태현의 한 마디에 겨우 정신이 되돌아온 승범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한두번 내려친 다음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현은 지금 이 사람이 대체 뭘 하는 건지 감이 안온다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다 자신의 몸이 갑자기 번쩍 들어올려지는 바람에 당황스레 눈을 깜빡였다. 빙글, 하고 시선이 돌았다 싶더니 태현의 몸은 어느사이엔가 승범의 품에 안기는 형태로 들려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하자면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공주님 안기 자세'다.

 

"뭐, 뭐뭐뭐뭡니까 이게!!"

"시끄러, 조용히해. 이게 싫으면 얌전히 등에 업히든가."

"차라리 걸어갈테니 이 남사스러운 포즈 좀 어떻게 해주시죠!?"

"거 쨍알쨍알 시끄럽긴…."

 

일견 아깝다는 투로 중얼거린 승범이 슬쩍 혀를 차며 태현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나마 덜 부끄러운 상태가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한 태현이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은 순간.

 

태현의 무릎이 힘없이 꺽이며 욕탕 타일에 부딪쳤다.

 

"…………."

"………어, 어라……?"

 

힘을 주어 일어나려고 해도 중간에서 금방 힘이 빠져버린다.

아무래도, 물에 빠진게 상상 이상으로 체력을 갉아먹어버린 모양이다.

 

"그럼, 실례."

"…아까같은 포즈는 민망하니까 차라리 업어주세요."

"………."

 

결국 등에 업히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은 태현은 승범의 등에 매달린 채 욕탕 건너편의 문을 바라보았다. 태현을 등에 업은 채 그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승범이 태현에게 열쇠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자신이 걸치고있는 상의에서 열쇠를 찾은 태현은 손을 뻗어 잠긴 문을 열었다. 찰칵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지만 어째서인지 승범은 그 안으로 선뜻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등에 업혀있던 태현이 의아해하는 것과 동시에 승범이 한 마디 말을 툭 내뱉었다.

 

"…죽이려고해서, 미안."

"…………."

 

무의식적으로 목을 어루만진다. 아무런 흉터도 없는 그곳에는 목이 졸릴 때의 감각의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태현은 오랫동안 침묵하다 천천히 그에게 머리를 기대며 입술을 움직였다.

 

"저야말로 총을 들이대버려서… 미안합니다."

 

승범은 의외의 사과에 눈을 깜빡이다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 손해보는 성격이구만."

"그 말은 아까도 들었습니다."

 

아아, 그랬지.

승범은 작게 수긍하고 문의 건너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등 뒤의 온기어린 무게감이 어쩐지 기분 좋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