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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검은방

[검은방3/승범태현]네가 이겼다 EA

-검은방은 드라마나 영화같은 영상매체로, 거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전부 배우라는 설정.

-태현의 성격이 좀 많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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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현선배는 담배 안 피웁니까?"
"안 피워."
"술은 마시면서."
"술은 나 하나만 망치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쥐고있는 술잔을 흔든다. 안에 들어있는 호박색 액체가 회오리치고, 그대로 잔이 기울어지면서 약간 벌어진 입술사이로 흘러들어갔다. 그 서슬에 입가로 흐른 술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는 태현을 바라보며, 승범은 물고있던 담배를 까딱였다.

 

"하지만 취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잖습니까."
"난 취해서 사람 패거나 험한 말 내뱉은 적 없어. 아니면 목격증언이라도 있나?"
"…없죠."

 

시간을 끌다 대답하니 피식 웃고는 다시 술병을 그러쥔다. 그 가격만큼이나 도수도 높은 양주는 슬슬 내용물이 떨어져가는 중이었지만 태현의 얼굴은 약간의 홍조를 제외하면 멀쩡한 편이었다. 그 모습과 몇 시간 전 자신의 앞에서 '류순경'을 연기하던 태현의 모습을 겹쳐보던 승범은 담배가 거의 타 들어갔다는 것을 알고 눈앞의 재떨이에 담배를 꾹 눌렀다. 천적인 물과 마주친 담배가 짧은 단말마를 내질렀다.

 

"…그런데 말이죠, 선배."
"왜?"
"보통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앞에서 담배 못 피게 하지 않나요?"
"그렇지. 비흡연자인 자기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니까."
"그럼ㅡ."

 

왜 저는 묵인하시는 겁니까.
승범의 의문을 한 박자 먼저 알아낸 것 처럼, 태현이 내뱉었다.

 

"너는 괜찮아."
"어째서요?"
"딱히 손해본다는 느낌이 안들거든."

 

반쯤 남은 술이 단숨에 태현의 입술 사이로 사라진다. 승범은 어째서인지 그대서야 강한 갈증을 느끼고 입술을 핥았다. 방금의 한 잔으로 주량의 마지노선이 아슬아슬하게 넘겨진 모양인지 조금 몽롱한 표정이 된 태현이 희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너때문에 죽는 것도 좋을거야."
"……그게 애인한테 할 말입니까?"
"난 진심이야. 오히려 그랬으면 하는데."

 

네가 담배 피우는 모습은 멋있거든.
그 댓가라고 생각해보면 되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타산이 맞지않는 말을 내뱉는 태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승범은 새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단숨에 연기를 들이켰다. 앞부분이 빠르게 타들어가면서 매캐한 연기가 폐 속 가득 차오르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전 선배가 저때문에 죽는건 맘에 안드는데요."
"그럼 같이 죽을까?"

 

풀어진 얼굴로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한다. 잠시 태현의 얼굴을 바라보던 승범은 그대로 담배를 재떨이에 내던진 뒤 자리에 느슨하게 늘어져앉아있는 태현의 턱을 붙잡아올려 입을 맞추었다. 담배맛이 나는 키스는 남녀를 불문하고 최악일텐데도 태현에게서는 아무런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긴 키스의 끝자락에 느릿느릿 뻗은 손이 승범의 뒷머리를 살짝 매만졌을 뿐이다. 승범은 혀끝에 맴도는 알코올기운을 느끼며 입술을 떼어냈다.

 

"…선배, 취했네요."
"아닐걸."
"취했어요. 그러니까 그런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하지."
"그럼 그런걸로 하자."

 

무책임하게 내뱉고는 헤실헤실 웃는다. 평상시에는 보기 힘든 모습에 역시 취한거라고 입 속으로 중얼거리고, 승범은 태현은 부축해 침대 위에 쓰러뜨리듯이 눕혔다. 다른 사람들보다 취기가 늦게 올라오는 편인 태현은 이제 슬슬 양주의 알코올이 머리를 치고올라오는지 어린아이의 옹알이같은 소리를 내며 이불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윽고 흐릿하게 뜨인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승범의 윤곽을 찾아내고는 이리 오라는 것처럼 손목을 얕게 흔들었다.

 

…아까는 세상 다 산 사람처럼 굴더니, 이제는 또 어린아이처럼 군다.

승범은 쓰게 웃으면서도 연인의 요구에 따라 누워있는 태현의 손을 붙잡아올려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손끝은 가늘게 떨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