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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듀라라라!!

[시즈미카]버려진 이야기

 

짐승은 몰아치는 빗속에 있었다. 뺨에 닿는 공기는 차가워서 우산대를 잡고있는 손끝이 붉게 아려왔지만 그렇다고해서 입김이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거리와 쇠난간을 세차게 때리는 빗방울 소리 사이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을 집중하지 않았더라면 어딘가에 있는 낡은 물체가 삐걱이는 소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가냘픈 소리. 그리고 미카도는 그 짐승이 담긴 상자 앞에서 걸음을 멈춘 채 그 안에 담긴 네 발 달린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산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이 박스의 모서리에 떨어지면서 골판지를 흐물흐물하게 만들었다. 미카도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이대로 계속 여기에 서있으면 흐물흐물해진 골판지가 그대로 무너져내려 진흙색 액체가 되는건 아닐까…하는, 다소 어긋난 감상을 품었다. 짐승의 울음소리는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거기서 뭘 하고있어?

-누가… 동물을 버려서요.

 

울음소리와 빗소리를 가르며 누군가가 말했다. 미카도는 빗방울이 우산을 때리는 소리에 집중하고있던 나머지 그 질문에 자신이 대답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을 물어본 것이 누군지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몇 번인가 거리에서 들었던 목소리는 오늘따라 현저히 차분해진 상태였다. 오늘은 본인이 철천지 원수처럼 여기는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은 것인가. 미카도는 아무러면 어떠냐는 마음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의 창을 닫은 채 짐승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박스 한 쪽에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몸을 바들바들 떨며 울고있었다. 엄마를 찾는 것인지, 전 주인을 찾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자신을 쓰다듬어줄 손을 찾는 것인지…. 두 손으로 차갑고 딱딱한 우산 손잡이를 붙잡은 미카도가 이런저런 상황을 떠올리는 동안 옆에 서있던 남자가 몸을 숙여 상자 속 짐승을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아직 한참 어리군. 이렇게 어린 새끼를 버리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미카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시선은 완전히 젖어버려서 너덜너덜하게 무너지기 직전인 골판지 상자에 못 박아버린 채 곁에서 들리는 짐승의 힘없는 울음소리에 잔잔한 짜증을 느끼던 미카도의 귀에 남자가 혀를 차듯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새어들어왔다.

 

-이대로 놔둘수는 없겠는데… 데리고 갈까.

 

그것은 상호작용을 위한 대화의 시도라기보다는 자기자신의 마음 속을 토해내는 독백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미카도는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비명을 지르듯이 터져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우산대를 잡고있던 두 손은 어느새 서로의 손등에 한껏 손톱을 세운 채 삐걱거리고 있었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철맛도 분명 기분 탓은 아니리라. 가슴 속에서 용솟음치는 감정을 억누르는데에는 손가락은 물론 신발 속에 들어있는 발가락까지 모조리 동원해야했다. 그들을 있는 힘껏 그러모음으로써 평정을 가장한 미카도는 바로 옆에 있는데도 우산에 가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에게 말했다.

 

-데려가시는건가요?

-여기 내버려두기는 불쌍하니까.

-…키우시려구요?

-으음… 일단은 다른 사람을 알아봐야지.

-그때까지는 시즈오씨가 돌보시는건가요?

-그렇게 되겠지. 새로운 주인을 찾거나 전 주인이 다시 찾으러 온다면 또 모르겠지만.

-……….

-왜 그래?

-아뇨, 사실은.

-사실은?

-제가 데려갈까 어쩔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마음 속 어딘가에서 거짓말, 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미카도는 괘념치 않으며 계속 계속 거짓말의 말을 자아냈다. 상자는 계속해서 쏟아지는 빗줄기에 완전히 젖어들어가 보기 흉하게 쭈글쭈글해져가고있었다. 자신조차 자신이 대체 무슨 논리로 어떻게 떠들고 있는지 모를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말을 멈춘 미카도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우산을 빙글빙글 돌렸다. 우산의 피부에 맺혀있던 빗물 덩어리들이 원심력에 의해 후드득 떨어져 나가면서 유약하게 문드러져가는 상자를 내리쳤다. 상자는 끈질기게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래? 네가 키우려고?

-키운다기보다는… 새 주인을 찾아주는게 어떨까 싶어서요. 가령 다라즈라던가….

-…너, 아직도 거기에 있는거냐.

-에에, 뭐어. …그러고보니 나가셨었죠. 죄송합니다.

-거긴 최근 별로 좋지않은 녀석이 늘어나는 모양이니… 너도 조심하는게 좋아.

-…걱정해주셔서 감사 합 니 다 .

 

자학이나 다름없는 대화. 미카도는 변화없는 어조로 시즈오의 충고에 대응하고는 조용히 짐승을 건네받았다. 빨갛게 곱은 손가락에 닿은 짐승 한 마리분의 체온은 쓸데없을 정도로 뜨겁게 느껴졌다. 손바닥에 감긴 밴드를 들켰지만 넘어지는 바람에 돌에 긁힌 것이라고 대충 둘러댄 미카도는 때마침 직장동료의 전화를 받은 시즈오를 배웅해주고는 잠시 말없이 그 자리에 멈춰서있었다. 그동안 손에 들린 짐승이 품에 안긴 채 낑낑거리고 손가락을 핥으며 응석을 부렸다. 나를 봐줘요, 나를 사랑해줘요, 이렇게나 연약하고 귀엽잖아요. 그렇게 주장하듯이.

 

그리고 미카도는 상자를 짓밟았다.

 

종이로 이루어진 직육면체가 엉망진창이 되도록 짓밟았다. 질퍽질퍽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운동화 밑창 사이로 종이의 잔해와 뒤섞인 물이 흘러갔다. 상자에서는 피가 나오지 않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지경이었다. 이윽고 진흙 덩어리마냥 곤죽이 되어버린 상자를 바라보던 미카도는 팩 몸을 돌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쯤에는 이미 손에 짐승을 안고있다는 감각조차 잊어버린 상태였다.

 

 

겨우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이미 자취방에 있었다. 오는 길에 우산을 잃어버렸는지 어쨌는지 교복 어깨부근은 푹 젖어있는 상태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빗물에 젖어 축축한 신발을 신은 채 한참이나 현관에 서있던 미카도는 바닥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 고개를 숙였다. 다다미가 깔린 바닥 위에서 짐승이 서투르게 기어가고 있었다. 미카도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짐승이 귀여워서 웃은건 아니었다. 사실 그건 웃음이라고 부를 수 조차 없는 일그러진 기침이었다. 그런 것을 세 번 정도 토해낸 미카도의 얼굴에서 갑자기 표정이 사라졌다. 분출될 장소를 잃어버린 감정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성을 점령하고.

 

"웃기지마!!!"

 

미카도는 절규하면서 손에 들고있던 것을 내던졌다. 빗물에 젖은 열쇠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튀어올랐다. 거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서 기어가던 짐승이 흠칫 고개를 들었지만 미카도의 시야에 그런 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미카도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조금 전에 일어났던 대화의 기억뿐이었다.

 

 

…이렇게 어린 새끼를 버리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어째서…."

…이대로 놔둘수는 없겠는데, 데리고 갈까.

"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

…여기 내버려두기는 불쌍하니까.

"나는 내버렸으면서 대체 왜!!!!!!"

…거긴 최근 별로 좋지않은 녀석이 늘어나는 모양이니… 너도 조심하는게 좋아.

 

 

자신의 폐활량으로 가능한 가장 큰 성량으로 내부에 쌓여있던 온갖 감정들을 토해낸 미카도는 뒤이어 아무 의미없는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온몸을 맴도는 질투와 분노와 절망감때문에 머리가 타들어가버릴 것 같았다. 시야는 단숨에 흐려졌다. 코끝을 치밀고 들어오는 무언가가 호흡을 방해했지만 절규는 그리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그나마 쏟아지는 폭우가 미카도의 비명을 중간에 집어삼킨 것이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깜짝 놀란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거나 경찰에 신고를 넣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미카도의 비명은 처절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그 순간에, 그러니까 시즈오가 다라즈라는 존재를 거절하였을 당시에는 그로인한 충격이 너무나 커서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지만… 시즈오는 자신이 위험하다고 판단을 내린 조직에 대해서 미카도에게 아무런 충고를 해주지 않았다. 미카도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단순히 경황 중에 잊어버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그 사건 이후로도 미카도에게 '다라즈를 나가라'는 식의 직접적인 충고를 던져주지 않았다. 그저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아직도 있는거냐고 묻는 시선을 보내왔을 뿐. …어쩌면 그것이 상대방에게 최대한 간섭하지 않으려는 시즈오의 배려였는지도 모르지만, 미카도는 그런 시즈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무디어지는 기묘한 감각을 맛보았다. 어찌보면 오늘은 그 무디어짐이 극한에 달한 기념비적인 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습지도 않은 생각에 컥컥거리는 일그러진 호흡을 토해내던 미카도는 이윽고 얼굴을 감싸쥐며 무너져내렸다.

 

 

비명은 울부짖음이 되어 몸을 웅크렸다.

폭주하던 감정은 미친듯이 소용돌이치며 보이지 않는 장소에 상흔을 남겼다.

내리는 비는 그 언젠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버려진 것은 애처로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