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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듀라라라!!

[신라미카세르]안정요법(安靜療法)


키시타니 신라라는 인물은 사람을 깊게 사귀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냉혈한이라거나 타인과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보내고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오히려 경박할 정도로 잘 웃는 사람이고, 직업의 특성으로 인해 외출을 자주 하지 못하는 대신 그의 일터를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나열해보면 마치 그가 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내인 것 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ㅡ 그것은 그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다.

 

그는 잘 웃는 것 만큼이나 쉽게 차가워질 수 있고, 직업적인 특성으로 만나는 이들은 모두 인간으로서의 온정이 약간 모자란 사람들 뿐이다. 애초에 멀쩡한 병원을 놔두고 뒷골목의 야매 의사에게 찾아올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이라는 시점에서 이미 평범한 인간관계를 맺기는 그른 것이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도 그저 친분이 존재하고 있을 뿐으로, 만약 그들 중 하나가 죽거나 사라진다한들 신라는 아깝다고 생각할지언정 그들의 죽음에 눈물 흘리거나 '친구'를 그리워한다거나 상실감에 가슴아파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한다면 그 대상은 단 하나. 그의 연인이자 목없는 듀라한인 세르티 스툴루손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같은 인간에게는 마음을 쓰지 않으면서, 인간과는 현저하게 다른 인외의 존재에게 마음을 빼앗겨 감정을 허락한다.

 

키시타니 신라라는 인물은, 그런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을, 터다.

 

=

 

〔신라, 오늘도 또.〕

 

또, 라는 말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은 없다. 그것은 두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하나는 그 문장을 보낸 발신인 -세르티 스툴루손이 그 이하의 문장을 일일이 타이프할 정도의 정신적인 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그녀에게 일어난 일이 그들 사이에서는 굳이 문장으로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능히 추측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라는 것을 연쇄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한바탕의 진료를 끝내고 자신의 주거지로 돌아오는 길에 그 메세지를 수신한 신라는 잠시 얼굴을 찌푸리고는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또, 인가.

 

입 안으로 씹어삼키듯이 중얼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선 신라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거실 한쪽 서랍에 들어있던 구급상자를 꺼내들었다. 야매 의사와 상처를 입지 않는 듀라한이라는 구성으로 이루어진 집 안에서 단순한 구색 갖추기용으로만 준비되어 구석에서 쓸쓸히 먼지를 맞고만있던 타원형의 상자는 요근래들어 상당히 잦은 빈도로 사용된 덕에 먼지 하나 없이 새하얀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참으로 달갑지 않은 일이다. 신라는 그런 생각을 품은 채 상자의 잠금장치를 풀어내고 뚜껑을 열었다. 강렬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가까운 거리에서 말의 울부짖음 소리가 들려왔다. 세르티가 돌아온 것이겠지.

 

아니나다를까 신라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언제나와 같은 검은 수츠에 헬맷을 쓴 세르티의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약간 뒤쪽에 말없이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것은.

 

"또 보네, 류가미네 미카도군."

 

소년은 대답없이 눈을 한번 깜박였다. 그 왼쪽 눈매는 무언가에 호되게 긁히기라도 한 것처럼 피부가 붉게 변색되어있고 굳게 다물린 입술은 터져서 보기싫게 부어올라있다. 한눈에 봐도 누군가와 다툼을 벌였다는 것이 명백한 그 모습에 살짝 한숨을 내쉬고, 키시타니 신라는 자신이 현재 앉아있는 소파의 옆자리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가죽과 손바닥이 부딪쳐서 나는 소리는 조금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자자, 서있지말고 여기 앉아. 상처는 치료해야지?"

"…………."

 

신라의 말에도 소년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 다리가 둔하게 느껴질 정도로 묵직하게 움직였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어느 순간부터 태엽이 어긋난 양철인형처럼 어딘가 어색한 동작으로 뒤바뀌어 버렸고, 그 휘청이는 틈을 놓치지 않듯이 세르티의 팔이 미카도의 어깨를 부축했다. 일순 소년의 얼굴이 살짝 경련을 일으켰지만ㅡ 그 정도였을 뿐, 저번처럼 거절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세르티의 팔이 뻗어지는 순간에 저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신라는 조금 안도하며 구급상자 안의 도구를 꺼내들었다. 절룩이는 걸음걸이로 신라의 옆자리에 앉은 미카도는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은 눈동자로 그 움직임을 쫓아보고 있었다.

 

"오늘은 어쩌다 다친거야?"

"…어쩌다보니…."

 

간신히 돌아온 대답은 한없는 불친절에 가깝다. 그렇다고해서 명확한 대답을 바라고 물어본 것도 아니지만 매번 이런 식이어서야 입맛이 씁쓸하다. 거즈를 소독약에 적신 신라가 쓴 웃음을 지으며 미카도의 뒷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세르티가 PDA에 타이핑하여 내민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선샤인 근처 뒷골목에서 안좋은 패거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 이번에는 황건적의 잔당.〕

 

 

신라는 PDA에서 눈을 돌려 미카도를 바라보았다. 얼굴을 아래로 숙이고있는 미카도의 눈동자에는 옅은 그림자같은 것이 탁하게 끼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전에는 좀 더 반짝거리는 눈을 하고있었을텐데, 이 아이는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 걸까. 이미 답을 알고있는 질문을 헛되이 반복하며 신라는 눈가의 상처에 거즈를 가져다댔다. 상처에 소독약이 닿아서 상당히 쓰라릴텐데도 소년은 그저 몸을 약간 움츠렸을 뿐 아무런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맨 처음 여기로 찾아왔던 과거의 소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지만ㅡ 그것은 어른스럽다는 감상보다는 안쓰러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세르티에게도 마찬가지인지, 그녀는 두 손을 가슴 부근에 가지런히 모아올린 채 초조히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있었다.

 

 

 

…류가미네 미카도라는 이름의 소년이 처음 이 장소에 올라온 것은 약 한달 전의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운반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세르티가 그 도중에 길거리에서 난투를 벌이고있는 불량배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던 것이다. 평소 싸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의 소년이 난투극에 뒤석여있는 모습을 본 세르티는 그 소년이 무언가의 트러블에 억울하게 휘말렸다고 판단, 오토바이로 불량배들을 떨쳐내버린 다음 반쯤 기절하다시피한 미카도를 데리고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하지만 신라의 치료를 받고난 다음 그럭저럭 정신을 차린 미카도에게 들은 상황설명은 세르티와 신라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소년은 무고한 입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따지고 들자면 자업자득인 쪽에 가까웠다.

 

거리에 몰려있는 불량배들이 맘에 들지 않아서 노려봤더니 시비가 붙었고, 그대로 열이 올라서 마구 주먹질을 해버렸다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세르티와 신라는 나란히 귀를 의심했다. 도중에 무례를 무릅쓰고 체온계를 입에 물려버리기까지 했지만 미카도의 상태는 무수한 구타흔적을 제외한다면 지극히 정상이었다. 하지만 대체 무엇때문에 미카도가 갑자기 그런 바이올러런스한 세계에 뛰어들어버리게 된걸까. 치료를 받은 미카도가 오피스텔을 떠난 이후 신라가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세르티가 약간 머뭇거리는 동작으로 PDA를 내밀었다.

 

〔어쩌면〕

〔키다 마사오미라는 소년이 사라져서 그런 걸지도 몰라〕

〔미카도군과 그 아이는, 무척 친한 사이처럼 보였으니까…〕

 

"그런가."

"역시 그 나이에 친구가 없어지면 쓸쓸하겠지-"

"하지만 뭐, 금방 추스릴 수 있을거야."

 

그 가벼운 감상은 신라의 예상과는 달리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있다. 미카도는 그날 이후 거의 삼사일에 한번 꼴로 세르티에게 발견되었고, 그때마다 뒷골목의 지저분한 싸움질에 뒤섞여있거나 어둑한 골목길에 쓰러져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카도에게는 싸움의 재능이라는 것이 눈물날만큼 없었고, 사람이 의욕만 넘친다고해서 거기에 대한 재능이 갑자기 꽃피는 것도 아니었기에 미카도는 매번 만신창이가 되어있기 일쑤였다. 보다못한 세르티와 신라가 말리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하고 이따금은 윽박질러보기도 했지만 미카도는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 멈추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결과, 미카도는 이제 이틀에 한번 꼴로 신라네를 방문하는 것이 일상처럼 되어버렸다.

 

사람이라는 것은 친구를 잃어버리면 이렇게까지 폭주할 수 있는 것인가. 처음의 호기심과는 달리 이제는 쓴 감정만이 가득차있는 감정들을 곱씹으며 미카도의 치료를 끝낸 신라가 마지막으로 손가락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자,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자리에만 앉아있던 미카도가 유령처럼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섰다. 생기라고는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어라, 가려고?"

"…신세졌습니다."

〔좀 더 쉬다가지 그래?〕

"아뇨, 괜찮아요."

 

목소리나 얼굴은 전혀 괜찮아보이지 않는데.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신라는 문득 미카도가 한쪽 발을 질질 끌듯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서둘러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 다리로 걸어가긴 힘들텐데?"

"……………."

"내일은 주말이잖아? 상처도 있으니까 여기서 하루정도 자고 가."

"……하지만."

〔신라의 말대로야. 다리를 너무 혹사하면 큰일이 날지도…〕

 

미카도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평소대로라면 '그래도 괜찮아요'라며 억지로 돌아가려고 할 부분에서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만큼은…하고 속으로 가슴을 졸이고 있던 신라는 미카도의 얼굴이 알아볼수 있을 듯 없을 듯한 작은 움직임으로 긍정을 표시하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좋아, 그럼 우선은 저녁이다! 세르티의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고?"

"………그건, 기대되네요……."

 

여전히 메마른 목소리지만 조금은 기운을 차린 듯한 표정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표정은 언제나 오래 가지 못했다. 의욕이 샘솟는 것처럼 부엌으로 걸어간 세르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미카도의 옆얼굴을 쳐다보다가, 신라는 구급상자의 내용물에서 차가운 습포제를 꺼내들며 입을 열었다.

 

"연장자로서 하는 말인데 말이지.  너에게는 이런거 어울리지 않아."

"…………."

 

소년은 포장을 벗긴 습포제 한 장이 약간 부어오른 발목을 감쌀 때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신라는 중도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은 것을 확인한 다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숙이고있는 미카도의 머리는 자신의 허리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서 침묵하고있었다. 군데군데에 흙이 묻어 조금은 지저분해보이는 검은 머리카락을 내려다보던 신라는 천천히 손을 뻗어 거기에 묻어있는 흙먼지를 털어냈다. 본래는 결이 좋았을 머리카락은 먼지와 스트레스 때문인지 까끌까끌하게 변해있었다.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미카도군. 제안하고 싶은게 있는데."

"…뭔…가요?"

"우리 집에 양자로 들어오지 않을래?"

 

가족이라면, 너의 틈새를 메워줄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미카도는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어린아이처럼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눈을 감아버렸다.

신라는 초조해하지도 않고 그 머리카락을 손으로 슥슥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대답은 느긋하게 해줘도 괜찮아."

"………하지, 만."

"일단은 저녁밥부터 먹자."

 

미카도의 미약한 목소리를 가리듯이 말하며 신라는 미카도의 손을 끌어당겼다. 딸려오는 몸은 생각 외로 가벼워서, 어떻게 이런 아이가 그런 격렬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남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것을 굳이 지적하지는 않은 채, 신라는 미카도의 몸을 이끌고 세르티가 분전고투하고있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 온기로 이 아이가 조금이라도 안정할 수 있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있는 자기자신에게 조금 놀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