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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듀라라라!!

[키다미카♀]ROLLING LOOP

  

'날이 참 맑구나-'

 

키다는 명백한 딴 생각을 하면서 비스듬한 시선으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텅 빈 운동장의 한 구석에서 체육수업을 받는 아이들이 배드민턴 채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저기에 미카코가 있으면 참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키다의 수업시간 중에 미카코가 운동장에 나오는 몇 안되는 경우인 오늘, 운동장에 미카코의 모습은 없었다. 이 저주받은 시간표는 대체 무어란 말인가! …하긴 이렇게 불만을 토로해봤자 의미는 없다. 키다는 그저 오늘따라 시간표를 바꾸어버린 체육선생과 화학선생의 공모에 울분을 삼키며 쥐고있는 펜을 빙글빙글 돌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물함에 넣어두었다 꺼내든 책에서 희미한 먼지냄새가 느껴졌다.

 

원래대로라면 미카코의 책을 빌렸겠지만, 갑작스럽게 시간표 배치가 바뀐 바람에 미카코도 키다와 같은 시각에 같은 수업을 듣게 되었다. 일단 세세히 분류하자면 키다는 생물수업, 미카코는 화학 수업이기 때문에 같은 수업이라고 분류하기는 뭐하지만 안타깝게도 교과서가 하나로 되어있으므로 아쉬운 입장인 키다쪽에서 손을 뗄 수 밖에 없었다. 개중에는 책을 반으로 갈라 수업마다 나누어쓰는 녀석도 있다곤하지만 미카코는 그런 난폭한 짓따윈 생각도 못하는 모범생이고, 키다도 그렇게까지해서 책을 빌릴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미카코를 등 진 채 다른 남학생에게서 책을 빌려야했던 키다는 그 반동으로 여봐란듯이 선생의 수업을 흘려듣고 있었다.

 

아아, 미카코의 체육복 모습을 볼 수 없는 수업이라니, 신은 어찌 이리 잔혹하단 말인가…!

 

흘끗 시계를 보지만 수업시간은 아직 십분도 지나지 않았다. 키다는 온몸이 찌뿌드드해지는 것을 느끼며 책상 위에 냅다 엎드렸다. 키다네 반의 생물 담당인 교사는 인품이 좋다고 해야할지 성격이 무르다고 해야할지, 학생이 자는 모습이 보이더라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말없이 태도 점수를 깍는 것도 아니니, 현대에 보기 드문 부처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걸로 부처님이라는 명칭을 얻어도 본인은 전혀 기쁘지 않겠지만 언제나 멋대로 만족하는 것은 학생들이다. 키다는 그 멋대로 만족하는 무리 중의 한 명이 되기로 결심하고 눈을 감았다. 오후의 햇살이 느긋하게 내리비쳐졌다.

 

 

 

…눌어붙은 냄새가 난다.

 

…….

………….

……………….

 

미카코?

 

……!

 

 

퍼뜩 눈을 뜨자, 역사의 사이토 선생이 교실로 들어오는 참이었다. 약간 멍한 머리는 언제 생물 선생이 역사 선생으로 바뀌었는가 하는 어수선한 생각을 헛되이 반복하다 그가 책을 교탁위에 후려치듯이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키다가 수업시간 하나를 그대로 잡아먹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그걸로도 모자라 쉬는시간까지 완벽히 탕진해버렸다는 사실도. 게다가 역사선생은 성격이 깐깐해서 수업시간에 눈동자를 움직이거나 볼펜을 따각이는 행위조차 곱게 보아넘기지 않는다. 지난주와 같은 시간표긴 하지만 어째 오늘따라 하루종일 업이 끼어있는듯한 처참한 기분에 키다가 미간을 찌푸리자마자 때마침 사이토와 눈이 마주쳐, 키다는 수업태도 불량을 이유로 교실 뒷편에 서서 수업을 듣는다는 최악의 처지에 이르렀다. 시간표가 바뀐 덕에 이번 시간에는 미카코가 체육일텐데 이래서야 창밖을 바라보는 것도 무리다. 키다는 한숨을 내쉬며 책장을 팔락였다.

 

문득 창틀 부근을 바라보니 선생님 중 누군가의 것으로 추정되는 자동차가 빠르게 교문을 벗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

 

 

키다는 수업이 끝난 뒤에도 교사에게서 가벼운 주의를 듣느라 쉬는시간을 5분 정도 잃어버렸고, 그 결과 마음이 더욱 피폐해지고 만 그는 피폐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종례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와 미카코가 있는 A반을 향해 느긋하게 걸어갔다. 뒷문 창문으로 슬쩍 들여다보니 과연 미카코의 담임은 다소 느린 어조로 종례사항을 말해주고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종례를 끝난 선생이 앞문으로 나오면 단숨에 뒷문을 열고 들어갈 작정으로 뒷문 근처의 벽에 몸을 기대다가, 키다는 문득 A반의 앞쪽에 있는 계단에서 누군가가 걸어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키다군."

"안녕, 앙리쨔… 어라? 왜 그쪽에서 올라오는거야?"

 

눈에 익은 앙리의 모습에 반갑게 손을 들어 인사하려던 키다는 지금 상황이 어긋난다는 것을 깨닫고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A반에서는 아직 종례가 진행중이고, 종례가 시작하기 전에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을 터다. 학급의 모범적인 반장인 소노하라 앙리가 수업을 땡땡이치거나 도중에 교실을 빠져나오거나 할 리도 없을 텐데 종례가 진행되는 이 시점에서 교실로 돌아오고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불현듯 자신의 등 뒤에 들러붙는 불안감을 느낀 키다가 몸서리를 치는 것과 동시에 계단참에 서있던 앙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류가미네 양은… 조퇴했어요."

"조퇴?! 무슨 일 있었어?"

"…………."

 

대답은 금방 돌아오지 않는다. 초조한 마음에 앙리쪽으로 걸어가려고 하던 키다의 눈앞에서 갑자기 A반의 담임이 앞문을 열고 등장했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춘 키다 앞에서 앙리를 발견한 교사가 그녀를 향해 말을 걸었다.

 

"오오, 왔구나. 류가미네의 상태는 어떠니?"

"많이 진정된 것 같아요. 다음주부터는 정상적으로 등교할 수 있을거라고…."

"그래…. 수고했다, 소노하라."

 

담임은 그렇게 말하고는 복도를 지나갔다. 키다가 잠시동안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앙리가 반 안으로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학급의 아이들이 그녀에게 질문을 쏟아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질문은 대부분이 조금 전 담임이 앙리에게 건넨 말과 비슷한 뉘앙스를 띄고 있었으며, 어떤 아이들은 류가미네가 안됐다며 우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가방을 들고 다시 복도로 돌아온 앙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키다군. 일단 우리끼리 돌아갈까요."

"……어어."

 

키다는 자신이 대답을 한지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앞서가는 앙리의 뒤를 따라갔다. 교실 안의 아이들도 하나 둘씩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술렁거림도 함께 복도 바깥으로 배어나오고 있었다.

 

=

 

교문을 지나 거리를 걷는다. 여태껏 몇 십번이고 오고갔던 거리인데도 미카코가 빠졌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렇게나 낯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김질하며 걷던 키다는 아직까지 말을 열지 않는 앙리의 뒷모습을 향해 말을 걸었다. 학교에서 비교적 일찍 나온데다 상당히 걸어온 탓에 주변에 라이라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어?"

"약간의 사고가 있었어요. …류가미네양에게."

"사고?! 심각한거야?"

 

단지 한 줄의 말을 들은 것 뿐인데도 목소리가 뒤집히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런 키다의 심정을 알아차렸는지 앙리가 살며시 뒤를 돌아보았다.

 

"…상처는 없어요. 다만 머리카락이 타들어가서…."

"머리카락이 타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키다의 추궁을 들은 앙리가 긴 숨을 토해내고는 말을 이었다.

 

"화학실에서 류가미네양의 앞에 있던 알콜램프가 불이 붙은 채 삼각대에서 쓰러지면서 그대로 류가미네양에게 옮겨붙었어요. 다행히 램프를 등지고있었던 데다 마이를 입고 있었고, 화학선생님이 빠르게 대응해주신 덕에 옷과 머리카락이 약간 그슬리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그게 너무 충격이었던 모양이에요."

 

그 이후 화학선생님의 배려로 소노하라 앙리와 함께 조퇴한 미카코는 근처 미장원에서 불에 그슬린 머리를 자른 다음 그대로 자취방으로 귀가했고 자신은 보고를 위해 화학 선생님과 함게 돌아왔다는 앙리의 설명을 들으며, 키다는 발밑이 빙글징글 돌아가는 듯한 어지럼증에 근처 가게의 벽에 한쪽 팔을 기댔다. 내일이 주말이기에 하루 쉬고 다음주부터 정상적으로 등교하려한다는 말까지 모두 전달한 앙리는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카코는, 어때?"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그런데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고 나올 무렵에, 갑자기 울면서 저에게 그러더라구요.「마사오미가 예쁘다고 해줬던 머리카락인데, 전부 잘려버렸어. 이걸 보고 마사오미가 실망하면 어쩌지?」…라고."

"…………."

 

키다는 벽에 한쪽 팔을 기댄 채 깊은 호흡을 반복했다. 어지럼증이 서서히 가라앉아가기 시작했다. 서서히 저물기 시작하는 태양이 키다의 등과 앙리의 어께에 내려앉아 보도블럭 위에 검은 그림자를 길쭉하게 뽑아내고 있었다. 세번의 호흡을 마지막으로 구부러져있던 상체를 똑바로 일으켜세운 뒤, 키다는 오렝지색으로 물드는 앙리를 향해 말했다.

 

"…미안, 소노하라. 나 이쯤에서 먼저 돌아간다!!"

"네, 다음주에 봐요."

 

앙리의 목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키다는 거리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

 

 

미카코는 자취방의 한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눈물자국이 남아있는 눈가와 뺨이 희미하게 당겨왔다. 어제같았으면 머리카락이 들러붙어서 간지러웠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제 단발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숏컷이 되어있었다. 무력한 손가락을 뻗어 자신의 뒷통수를 만져보아도 이전과 같은 부드러운 감촉은 오래 느껴지지 않는다. 미카코는 또 눈물이 나려는 눈가를 소매로 거칠게 문지르며 코를 훌쩍였다. 쇠로 된 계단을 누군가가 달려올라오는 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다. 미카코가 멍하니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자, 문 너머의 방문자가 숨을 헐떡이며 말을 걸어왔다.

 

"미카코, 거기 있지? …문 열어줘."

"………마, 마사오미?!"

 

소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기겁하며 현관문 쪽으로 반쯤 기어가듯이 달려갔다. 문을 열어주기 위함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문손잡이을 안쪽에서부터 붙잡은 채 건너편의 소꿉친구를 향해 울음기가 남아있는 메마른 목소리로 외쳤다.

 

"왜, 왜 여기있는거야?!"

"소노하라한테서 들었어. …머리카락, 잘랐다고."

"……!!!"

 

소녀는 더더욱 문손잡이에 힘을 주었다. 그냥 안전장치를 걸어도 되겠지만 그렇게했다간 이 갈 곳 없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할 지 알 도리가 없었다. 손끝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세게 붙잡힌 문손잡이가 덜걱거렸다. 미카코는 악물려있던 이빨을 간신히 들어올려 그 사이로 힘겹게 목소리를 토해냈다. 혓바닥이 마치 자신과는 다른 별개의 생물처럼 둔탁하게만 느껴졌다.

 

"……돌아가, 마사오미. 오늘은… 오늘은 만날 수 없어."

"미카코."

"돌아가라니까? 부탁이니까 제발 돌아가!!!"

"싫어."

 

너머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평소의 키다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낮고 조용하다. 미카코는 심장이 떨리는 기분을 느끼며 문손잡이를 붙잡은 손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꽉 짓눌린 손바닥에는 감각이 슬슬 없어지고, 지나치게 긴장한 팔근육은 서서히 저릿거리기 시작했다. 매달리듯이 현관문에 몸을 기댄 소녀는 스스로 자신의 등을 밀어버리려는 듯이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다시금 외쳤다.

 

"…바, 바보 마사오미 주제에…!! 왜 돌아가지 않는거야? 도대체 왜 온건데?!"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나오지 않아도 좋으니까 들어줘."

"…………."

 

미카코가 아무 말도 못하는 사이 문 너머에서 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키다가 현관문에 이마를 맞대거나 손바닥을 맞댄 것이리라. 미카코는 어쩐지 전자일 것 같다고 생각하며 문에 옆머리를 기대었다. 귀를 통해 철제문 특유의 미약한 서늘함과 함께 웅웅거리는 소리와 뒤섞인 키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미카코의 긴 머리를 좋아했어. 새까맣게 빛나는 모습이 예뻤고, 감촉도 부드럽고. 뭣보다 미카코가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모습이 너무 어울려서 눈을 뗄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머리가 짧아진 미카코에게 실망을 한다거나 미카코를 싫어하거나 할 리가 없잖아. 내가 좋아하는 건 미카코고,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도 미카코인걸. 겨우 머리카락이 짧아진 정도로 이 마사오미가 절세의 미소녀 류가미네 미카코를 포기할 것 같아?"

 

미카코는 말없이 그 말을 듣고만 있었다. 가만히 그 말을 듣고있자니 오늘 오후에 화학실에서 일어났던 그 사건 이후로 심장을 속속들이 꿰뚫고있던 무거운 화살들이 스르르 녹아서 사라져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무엇때문에 그토록 가슴 졸이고 두려워하고 있었는지가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소녀는 문에 대고있던 옆머리를 들어 자신이 붙잡고있는 현관문을 올려다보았다. 굳게 닫힌 문 너머에 키다 마사오미가 서있는 모습이 보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미카코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쭉 좋아할거야.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마사오미…."

"……말하고 싶은건 이거였어. 그럼 가볼게."

"아…. 마사오미, 잠깐…."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황급히 고개를 든 미카코의 귓가에 서서히 계단을 걸어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키다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초조한 마음에 여지껏 굳게 잡아뒀던 문손잡이를 힘껏 비틀어버린 미카코였지만, 너무 오랜시간 한 가지 행위에만 집중해있던 팔근육은 갑작스런 명령에 올바른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바깥으로 튕겨나가듯이 열린 문 사이로 빨려나가 버렸다. 덕분에 문에 기대고있던 미카코는 균형을 잃고 바로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현관문과 함께 석양이 지고있는 거리에 다소 소란스러운 소리를 퍼뜨렸고, 현관문에 부딪친 이마를 한 손으로 누르던 미카코는 계단을 걸어내려고있던 키다가 이쪽을 돌아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흠칫 몸을 긴장시켰다.

 

"아, 아, 마사오미…. 저기, 머리카락, 역시 이상해…?"

"………미카코……."

 

키다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에 어쩐지 성급해보이는 발걸음으로 단숨에 미카코의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어쩐지 그 눈동자가 무서워진 미카코가 살짝 시선을 내리까는 것과 동시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어깨를 붙잡은 키다가 감격한 목소리로 외쳤다.

 

"귀여워!! 최고야!! 세상에서 제일, 아니 이 우주에서 최고로 귀여워! 역시 미카코는 절세미인이야!! 나는 지금 이순간 미카코에게 초속단위로 다시 반하고있어! 역시 내 첫사랑이야! 이 감격을 글로 남겨 후세에 남기고 싶지만 그렇게했다간 이 지구의 모든 나무를 베어넘겨도 모자랄테니까 관둘게! 라기보다 글을 쓸 시간에 차라리 미카코랑 데이트를 하겠어! 말이 나온 김에 지금 당장 출발하자!!"

"자, 자자자자자자잠시만 마사오미!! 텐션 너무 높아!! 태클을 걸 틈도 없이 높다구!! 게다가 눈이 맛이 갔잖아! 정신차려 이 바보!! 지금이 몇시라고 생각하는거야?! 데이트 가기에는 늦었다구!! 그리고 동네 창피하니까 그렇게 큰 소리로 외치는 건 당장 그만둬!!"

"상관없어! 나는 지금 최고로 High한 상태니까!!"

"무슨 헛소리야!!"

 

영문 모를 소리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양손 주먹으로 번갈아가며 키다를 때리는 미카코와 아랑곳하지도 않고 미카코를 아예 덥석 껴안아버리는 키다. 공격할 수단이 봉쇄당한 미카코가 입을 뻐끔거리는 것과 동시에 미카코의 짧은 머리카락에 뺨을 대고있는 키다가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미카코라면 삭발을 해도 아름다울거야. 내가 보장할게."

"또 그런 바보같은 소릴…."

 

자신의 가슴께에서 들려오는 미카코의 목소리에 히죽 웃고, 키다는 기세좋게 말했다.

 

"좋아! 그럼 내일 하루는 데이트의 날이다! 아침이 되자마자 맞이하러 올테니까 준비해둬?"

"에… 잠시만!! 키다군, 학교는 어쩌고?!"

"미카코를 위해서라면 하루정도 빠져도 괜찮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된 김에 아예 사랑의 도피를…."

"………키다, 이대로 뒤로 밀어도 돼?"

"우웃?! 왠지 사랑스런 우리 미카코씨에게서 살기가!!"

 

시끌벅적하게 떠들다 일단 한 발 물러선 뒤, 키다는 미카코의 짧은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이전까지와는 상당히 달랐지만 이것도 어쩐지 강아지같은 느낌이라 나쁘지는 않았다. 키다가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자 미카코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가를 끌어올렸다.

 

…아아, 웃어주는구나.

 

키다는 안도감에 차오르는 마음으로 미카코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미소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변함없이 상냥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

 

 

"…미카코."

"뭐야,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미카코도 나에게 다시 반했지?"

"………전혀."

"전혀?!"

"키다군은 옛날부터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걸."

"그런……."

"그러니까!!     …………굳이 새로 다시 반할 필요가 없잖아."

"…………."

"……………."

 

"미카코. 역시 사랑의 도피를…."

"그러니까 그 소리는 이제 그만해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