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차 창작/듀라라라!!

[로쿠미카(롯치미카)]미카도 총수 10제 중 02.「√3점」

발단은 미카도의 짧은 한 마디였다.

 

"√3점이네요."

 

그 이전의 대화는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날씨를 제대로 예고해주지 않는 일기예보라거나 동전을 넣으면 먹어버리면서 오락실의 코인을 넣으면 음료수를 토해내는 자판기라던가 어딘가에서 들었던 적당히 시시한 농담거리같은 것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뭐 그런 사소한 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 이전에 무슨 이야기가 나누어졌든 결과적으로 로쿠죠 -롯치의 머릿 속에 남은 것은 √3이라는 미묘한 채점결과뿐이었다.

 

"…√3? 특이한 점수네."

 

처음에는 정말로 그렇게만 생각했다. 만약에 그 이후에 미카도가 보였던 반응만 아니었더라면 √3이라는 수치는 로쿠죠에게 있어 그냥 좀 특이한 숫자라는 인상만을 남긴 채 의식의 흐름 너머로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그래, 로쿠죠의 중얼거림에 미카도가 갑자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추고 작은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더듬더듬거리는 말투로 자신이 그것을 말했냐고 되물어보지만 않았더라면. 거기에 로쿠죠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안색으로 갑자기 볼일이 생겼다는 말과 함께 붙잡을 틈도 없이 거리의 인파 속으로만 사라지기까지 했으니- 이쯤되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3에 뭔가가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대체 뭐지?

 

"어라, 롯치-. 뭘 적고있는거야?"

 

생각에 잠겨있던 로쿠죠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이스티가 담긴 컵에서 방울져 흘러내린 물로 적셔진 손가락이 짙은 빛깔의 나무 테이블 위에 √3이라는 글자를 덧그리고 있었다. 비록 컵 바깥에 맺히는 물방울로는 한계가 있기에 √안의 3쪽으로 가면 갈수록 점차 물기가 사라져 그냥 손자국만 남아있긴 했지만. 그리고 로쿠죠가 그 낙서에 대한 사정을 설명하기도 전에, 그의 옆자리에 서있던 갈색머리의 소녀가 기세좋게 롯치의 어깨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13…? 아, 아니지. √3이구나?"

"에엑ㅡ √라면 수학이지? 나 수학은 싫어ㅡ."

"그러고보니 카나쨩은 지난 시험에서 낙제점이었지?"

"아ㅡ 진짜!! 말하지마! 울트라 짱난단 말야!"

"근데 롯치, 이건 왜?"

 

옆에서 소란스레 꺅꺅 떠들기 시작한 두 명의 소녀들과는 달리 조금 전부터 시종일관 로쿠죠의 물낙서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던 소녀가 물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는게 나으려나, 얼마 남지 않은 물기마저 전부 날아가버린 손가락으로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리던 로쿠죠는 이윽고 그 얼굴에 평소대로의 웃음을 띄면서 기세좋게 말했다.

 

"실은 여기에 담긴 의미를 풀어내면 데이트를 해줄지도 모르는 귀여운 아이가 있어서 말이지!"

"뭐어ㅡ? 싫다, 또 헌팅이야? 롯치는 진짜 질리지도 않는다니까-. 그보다 그런건 다른 여자들 앞에서 보이지 않게 풀라구!"

"아하하, 미안미안."

"됐어됐어, 롯치가 어디 뭐 한두 번 그러는것도 아니고."

 

맨 처음 √3의 이름을 읽은 소녀가 한손을 팔랑팔랑 흔든다. 아닌게 아니라 로쿠죠 치카게라는 남자는 자신이 꼬신 여자들 앞에서 태연히 다른 여자들에게 추파를 날린다거나 이 세상의 모든 소녀들은 소중한 존재라는 다소 낯뜨거운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다니는 성품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일일이 화를 내거나 토라질 만한 사람이었다면 가장 처음에 그의 제안을 거절하거나 말도 안되는 상황에 화를 내버리고는 자신의 갈 길을 갔을 것이다. 소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학시함과 담당교사의 대머리 진행도를 두고 수다를 떨던 두 명의 여학생도 대화를 멈추고 이쪽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3이라… 평범하게 생각해보자면 제곱근 3이겠지만, 그건 좀 재미없지?"

"전체 값에 뭔가 암호가 숨어있는건 아닐까?"

"에ㅡ 그건 좀 아닐 것 같은데. 여자애가 그런 머리아픈 거 생각할 리가 없다구!"

"남들이 자기랑 똑같을거라고 생각하지 마, 카나쨩."

"에에잇, 수학 잘 하는 리츠가 이상한 거야!!"

 

 

꺅꺅이는 소녀들의 소란과 함께 몇 시간이 물 흐르듯 지나가 버렸지만, 결국 이렇다 할 수확은 나오지 않았다. 원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호였던 데다가 진득하게 암호를 풀기보다는 이런저런 농담이나 수다가 곁들어졌기에 더더욱 뭔가를 얻기가 어려웠던 것이리라. 이런 상황에서는 여자아이들이 방해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쉽겠지만 그런 괘씸한 결론따위 용납하지 못하는 로쿠죠는 √3의 의미가 그만큼 난해할 뿐이라고 생각해버린 뒤 평소처럼 노래방이나 오락실에라도 갈 생각으로 카페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오늘따라 머리를 지나치게 사용한 탓에 다들 진이 빠졌는지 평소보다 일찍 헤어지는 것이 되어버려, 결국 로쿠죠는 풀이 도중에 누군가가 메모지에 적은 √3의 값을 한 손에 쥔 채 홀로 거리를 걷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처량하다면 처량한 신세지만 그런건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걸어가던 로쿠죠는 자신이 어느 공원 근처를 걷고있음을 눈치채고 고개를 들었다. 초록빛 식물 담 너머로 보이는 공원 안에는 그네나 시소같은 것들이 묵묵히 주저앉아있었다.

 

 

류가미네 미카도도 그곳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페인트가 낡아서 살짝 떨어져 나간 그네에 매달려있는 쇠사슬이 칭얼거리듯 삐걱거린다. 모래밭을 디디고있는 운동화 끝은 느릿느릿한 속도로 앞뒤로 흔들리는 그네의 흔들림에 맞춰 마른 모래를 파고들어가 그 아래의 진갈색 모래를 들추어 내고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에 그리 빠져있는 것인지 로쿠죠가 맥없이 움직이는 미카도의 옆모습을 노골적일 정도로 빤히 바라봐도 눈치채는 기색은 없다. 심지어 공원으로 들어선 구두 아래에서 모래가 사박이는 소리를 내도 여전히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미카도의 모습에 슬쩍 장난기가 동한 로쿠죠는 그대로 무방비한 등으로 접근한 뒤 살짝 처져있는 머리에 자신의 모자를 덮어씌우며 그 어깨를 끌어안았다.

 

"뭐하는거야 미카도?"

"우와아앗?!     …뭐, 뭐야… 로쿠죠씨였나요, 깜짝 놀랐잖아요!"

"아까부터 계속 쳐다봤는데 허니가 전혀 눈치주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저는 남자라구요…."

 

몇 번을 지적해도 고쳐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로쿠죠의 말에 한숨을 내쉰 뒤, 미카도는 자신의 머리에 강제로 씌워지다시피한 로쿠죠의 모자를 벗어 다시 원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 와중에 상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작은 종잇조각이 떨어져 모래 위에 소리없이 내려앉았다. 단순한 호기심에 그것을 주워올려 펼챠본 미카도는 그 안에 빼곡히 적혀져있는 숫자의 나열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3=1.7320508075 6887729352 7446341505 8723669428 0525381038 0628055806 9794519330 16909…」

 

그 주변에는 숫자를 조합한 말장난이라거나 이런저런 추측들이 난무하고있다. 한참이나 그 종이조각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미카도가 얼굴을 돌려 로쿠죠를 돌아보자 그는 보기 드물게도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긁적이고 있었다.

 

"…아니, 그게 조금 신경이 쓰여서…. 그런데 결국 알아낸 건 없었어."

"…………………."

 

미카도의 대답은 없다. 혹시나 화난건가 싶은 마음에 조심스레 미카도의 안색을 살펴보던 로쿠죠는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키득키득 웃고있는 얼굴을 발견하고는 잠깐 멍해졌다. 조금 전 그네에 매달려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표정이 된 미카도의 웃음소리에 리듬을 맞추기라도 하듯이 그 손끝에 쥐어진 종이조각이 팔랑거렸다.

 

"…허니?"

"앗, 죄송해요. 설마 이걸 이렇게나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실 줄은 몰라서… 아하핫."

 

이후로도 한참을 웃던 미카도는 적당한 시점에서 스스로를 추스르고는 아직도 자신의 등 뒤쪽에 서있는 로쿠죠에게 약간 몸을 기대며 √3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로쿠죠와 소녀들이 한데 모여 3시간 가까이 고민했는데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던 암호의 결말치고는 제법 시시한 내용이었다.

 

"…친구가 썰렁한 농담을 해서 매겨버린 점수?"

"네."

"엄청 냉정한 채점이네. 친구가 상처받지 않았어?"

"마사오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거든요. 말로는 호들갑스레 아프다느니 상처라느니 했지만 실제로는 별로 신경 안 썼을 거에요."

"흐음, 꽤나 사이좋았던 모양이네."

"아……… 네. 어릴 적부터 친구였으니까요."

 

우울하게 흐려지는 말끝을 들으며, 로쿠죠는 √3점을 처음으로 말했을 때의 미카도의 표정과 태도, 그리고 지금 사실을 밝히는 미카도의 목소리에 묻어났던 감정을 토대로 하나의 추측을 만들어냈다. 마사오미라는 이름(어쩌면 성일지도 모르지만)을 가진 미카도의 소꿉친구는 아마도 어떤 일로 인해 미카도의 곁에서 멀어졌을 것이며 그것은 미카도에게 있어 결코 달갑지 않은 추억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어떤 과정을 거쳐 잠시나마 자신에게 친구의 그림자를 덧씌워보았던 미카도는 친우의 모습을 타인에게서 찾으려 한 자기 자신을 껄끄럽게 여기고 있으리라. 손에 들고있던 모자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만큼이나 자연스레 이어지는 추리에 잠깐 미간을 좁히고, 로쿠죠는 미카도의 왼쪽에 늘어뜨려져 있는 그네에 털썩 주저앉았다. 갑작스런 무게에 쇠사슬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토해내며 안간힘을 쏟아냈다.

 

"그럼 나는 몇 점쯤 돼?"

"엣… 로쿠죠씨요?"

"편하게 롯치라고 불러도 된다니까, 허니."

"그러니까 전 남자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요? …아무튼, 로쿠죠씨는 √6점."

"엇, 그럼 내가 더 높은건가?"

"아뇨, 그냥 로쿠죠(六条)씨니까 √6로 한거에요."

"그런 채점방식이라면 치카게(千景)라는 더 멋진 이름이 있어, 허니."

"고맙지만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째서? 아, 혹시 이름으로 부르는게 부끄러워서…."

"자꾸 그러시면 천千을 4로 오인해서 √4점을 드릴거에요."

"…허니. 그건 그냥 2점이잖아?"

"그렇네요. 그럼 √√4점으로…."

"이중봉인?!"

 

실없고 바보같은 담소가 흘러간다. 미카도의 바로 옆에서 웃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로쿠죠는 이제야 어두운 기색없이 완연히 웃을 수 있게된 옆얼굴을 조금은 눈부신 표정으로 바라보던 로쿠죠는 그네를 매달아두고있는 쇠사슬을 붙잡은 손에 슬쩍 힘을 주었다. 울퉁불퉁한 형태가 손바닥을 압박해들어왔지만 고통이라던가 하는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내부의 뭔가를 억누르려는 것처럼 그렇게 쇠사슬을 짓눌러대던 로쿠죠는 다만 얼굴표정만큼은 조금도 무너뜨리지 않은 채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주홍색 노을이 밤기운을 빨아들여 쪽빛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을 무렵 자리를 털고 일어나 미카도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얼굴도 모르는 √3점의 소년에게 질 수 없다는 생각을 품은 채로.

 

 

===================================

 

*로쿠죠 치카게의 이름에는 숫자가 2개입니다.

하나는 성의 로쿠六(=6), 남은 하나는 이름의 치千(=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