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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로그/퍼스트 위시(2016)

[모브코랄]잠들기 전의 시선


저는 이때가 제일 좋아요. 

속삭이는 목소리에는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흥분이 잔뜩 묻어있다. "그 말은 질리도록 들었습니다." 코랄이 담담히 대꾸하는 동안 안대를 고정하는 매듭이 하나씩 풀려나가며 눈을 가린 천이 느슨해졌다. 

하지만 정말로 좋은걸 어떡해요. 

한쪽 손바닥이 뺨에 닿는가 싶더니 둥근 손가락 하나가 감겨있는 눈꺼풀을 어루만진다. 아마도 엄지 손가락이겠지. 둥굴게 솟아있는 안구의 윤곽을 따라 몇 번이고 그려내던 손길은 이내 뺨을 길게 훑어내리며 떨어져나갔다. "나중에는 키스라도 하겠군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해요.

뒤이어 머리를 땋아두었던 끈이 풀린다. 그리 뻣뻣한 편은 아니지만 하루 꼬박 땋여있던 머리카락은 다소 부스스할 터였다. 굵은 빗으로 머리카락을 천천히 정돈받는 동안, 코랄은 제 등을 꼿꼿이 핀 채 가만히 암흑을 응시했다. 불은, 켜져있을까. 

코랄씨.

"뭡니까."

아직 자살할 마음은 없으신가요?

"없습니다." 

아아.

한숨인지 감탄인지 모를 말과 함께 빗질이 끝났다. 코랄은 제 머리카락을 손으로 잠시 매만져보다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머리카락이 시트 위로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만약 그럴 마음이 드신다면, 제가 정말 깔끔하고 아름답게 끝나도록 도와드릴테니까요.

코랄은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한쪽 팔을 들어올렸다. 누군가의 오른편 얼굴에 손바닥이 비스듬히 닿아, 미간과 뺨의 살결이 느껴졌다. 손바닥 아랫쪽에는, 아마도 입술의 감촉. 

"그 말은 이미 질리도록 들었습니다." 

부끄러워하는 듯한 웃음소리가 난다. 코랄은 손을 내렸다. 발자국 소리는 문가까지 이어진 다음 작별인사를 남기고 문 너머로 사라졌다. 촛불을 불어 끄는 듯한 소리. 그리고 멀어지는 흐릿한 삐걱임. 

암흑 위에 암흑이 덮인다.
손에 남은 감촉은 금방 사라졌다.

다만 머리는 그리 금방 잠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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