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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로그/퍼스트 위시(2016)

"봤어, 앰버?"

"코랄."

이름을 부른 상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코랄은 조용한 방의 한가운데에 자세를 바로하고 선 채 상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계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미끄러져 딱딱한 바닥 위로 떨어져내렸다. 

"앰버를 찾았다."

본래 그는 기쁜 일이 있으면 소란스럽게 기뻐하고 화나는 일이 있으면 벼락처럼 화를 내는 성격이다. 그런 그가 비단을 재단하는 재봉사마냥 신중하게 말을 고른다면, 뒤에 이어질 말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었다. 코랄은 한 손을 가만히 쥐었다.

"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어. 미안하다."

초침 소리.

하나.
둘.
셋.

"누나가 맞습니까?"
"코랄."
"확인하려는 겁니다."

남자는 긴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작은 봉투를 코랄에게 넘겨주었다. 서류가 아닌 물건을 담고 있음이 명백한 봉투를 열자, 안에서 작은 물건 몇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긴 끈으로 만들어진 팔찌.
녹색 빛의 소울 크리스탈.

"유품이다."
"부족합니다."
"미안하지만, 앰버가 가지고 있던 것이..."
"유체를 보여주세요."

초침 소리가 툭, 떨어졌다.

"제가 직접 봐야겠습니다."

=

사하긴 족의 본거지 깊은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앰버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흑와단의 관에 담겨, 가만히 손을 모으고 있다는 점일까.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비우고 홀로 남은 서늘한 방에서, 그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코랄은 제 허리춤에 달려있던 마도서를 풀어내어 앰버의 차가운 손 아래로 밀어넣었다. 얌전하게 책을 품에 안은 앰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게 마도서는 챙겼어야지."

죽은 이는 말이 없다. 코랄은 그대로 방을 나왔다. 그때까지 복도에 우뚝 서있던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충분한가, 그런 말을 던지던 남자의 시선이 문득 코랄의 비어버린 허리춤에 머물렀다.

"코랄, 마도서는 어쨌지?"
"누나에게 있습니다."

남자의 입이 꾹 다물렸다. 코랄은 그 바위같은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신생아 마냥 눈을 굴려대던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건 카넬리안 중위님의 유품이지. 그걸 죽은 누이에게 줘도 괜찮은거냐?"
"상관없습니다."

코랄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곤 말을 이었다.

"저는 이제 학자를 할 수 없으니까요."

=

소환사의 크리스탈은 그를 쉽게 받아들였다. 그와 누나에 얽힌 사정을 알고 있는 이들은 드문드문 딱한 시선을 보냈으나 그는 괘념치 않았다. 당분간은 집안의 소환서적을 읽고 학습하고 소환하여 응용하는 나날이었다.

어느 날 코랄이 책의 마지막 표지를 덮었을 때, 창문에서는 기울어진 햇빛이 느슨하게 스며들어왔고 책상 구석에 놓여있던 소환사의 소울 크리스탈은 나뭇결 위에 흐릿한 녹색빛을 남겼다. 코랄은 그걸 바라보다 문득 입을 열었다.

"앰버."

창문 사이로 바람조차 불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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