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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로그/퍼스트 위시(2016)

언젠가의 장소.


낮에도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벽에서는 불타는 횃불이 어슴푸레 하게 바닥을 비췄다. 어둑어둑한 동굴 바닥에는 약간의 고인 물과 함께 거뭇한 자국이 남이있다. 누가 지우려고도 하지 않아 그대로 바위에 물들어버린 핏자국. 그 각도를 가늠해보면, 누군가가 울퉁한 자리에 피를 흘리며 넘어졌다는 계산이 나왔다. 죽었던가 살았던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쓰러진 사람이 한둘이었어야 말이지.

핏자국은 벽에도 남아있다. 코랄은 딱히 발을 헛디디지도 않으며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희생과 피와 죽음이 습기와 곰팡이처럼 서로 맞물려 자라나던 시절의 기억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마냥 텅 빈 동굴에 제 몸을 잔뜩 욱여넣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그 기억의 비늘이 어둠속에서 빛나는 뱀의 비늘처럼 번뜩였다. 횃불은 여전히 어둡고, 바람이 없는데도 무언가를 호소하고 싶은 듯 거칠게 일렁였다.

원한인지 애원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미련인지. 어느 쪽이든 코랄은 손을 데일 걸 뻔히 알면서 불에 손을 뻗는 자가 아니다. 거기에 자신을 붙잡으려고 벼르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더더욱. 

동굴 끝은 바다로 이어진다. 바다로 이어진다 한들 제대로 발 붙일 곳도 없는 바위절벽이라 섣불리 나갔다간 파도에 휩쓸려 절벽에 머리가 부서졌다. 주변엔 복잡한 해류가 있어 한 번 빠진 존재는 살이 헤고 뼈가 바스러질 때까지 해협을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시체들이 버려졌다. 때로는 산 채로 내던져진 누군가의 긴 비명이 남을 때도 있었다.

코랄은 살아남았다.

작은 돌이나 모래같은 것들이 발 아래에서 밟힌다. 바작거리는 소리는 누군가의 신음이나 저주와 비슷했다. 하도 많이 들어 이제는 바람소리처럼 익숙한 것들.

왜 너는.
왜 나를.

괴로워.
그만해.

왜.

"왜 너만 살아남은 거야."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대단히 익숙하다.
코랄은 그녀를 돌아보는 대신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를 응시했다.

"역시 꿈은 꿈이군요."

눈을 깜박이자 동굴 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누나가 여기 있으면 말이 안되지."

그는 조금 한숨을 내쉬고, 꿈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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