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포신곡 전력 60분 「기념일」
- 5/21 아토 하루키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정말 괜찮아?”
루이가 고개를 돌린다. 아토 하루키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중이었다. 방과후의 귀가길. 수업이 모두 끝난 뒤의 공기는 한산하고, 따스한 기운이 감돈다. 바야흐로 만물이 움트고 꽃이 피어나며 겨울의 찬 기운이 멀리 멀리 도망가는 봄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루키의 생일 일주일 전이었다.
“괜찮냐는건 어떤 부분을 묻는거지?”
“그러니까… 정말로, 내가 오토와 너희 집에 가도… 되는 거야?”
“루이다.”
“…루이.”
그건 하루키가 원하던 방향의 대답은 아니다. 루이도 그걸 잘 알고 있는지 안경 테두리를 가볍게 치켜올렸다. 하루키. 네가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의견을 말해봐도되겠나. 중학생 언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정중한 말투에는 사뭇 거절할 수 없는 힘이 있다. 하루키는 자신이 휘말릴 걸 알면서도 머뭇머뭇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생일은 중요한 날이다.”
“…그냥, 어쩌다보니 그날에 태어났을 뿐이잖아.”
“「어쩌다보니」 태어난 것이 중요한 거다, 하루키.”
안타까운 말이지만 세상 모든 아이들이 철저한 계획과 바람 아래 태어나는 것은 아니야. 아이들의 탄생을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의사 혹은 방임이니까. 태어나기 이전에 탄생을 소망할 수 있는 존재는 없어. 그건 인간 뿐만 아니라 동식물, 혹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지. 다소 장황한 이야기겠지만 루이의 차분한 목소리는 어떤 화제도 진지한 색채를 더하는 힘이 있다. 하루키는 종종걸음으로 루이의 곁을 따라 걸으며 그 말의 결을 더듬었다.
“결국, 우리의 탄생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는 거다.”
“그럼 더더욱, 축하할 이유가 없는 거 아냐?”
“아니. 우리의 의지에 의해 벌어지지 않은 탄생은, 그렇기에 우리의 의지를 통해 축하받아야 해.”
“…못 쫓아갔어.”
“간단한 문제다. 하루키, 네가 만약 이웃에게서 죽어가는 식물의 관리를 넘겨받았다고 하자. 이 식물은 네가 원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야. 하지만 확실히 너에게 존재하지.”
“거기까진 알겠어.”
“너는 식물을 조심히 키워서 튼튼하게 길러내는 것에 성공했다. 어쩌면 병들어 시들시들해진 모습을 보고 낙담했을 수도 있지. 그러는 와중에 깨닫는 거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 식물과 만난지 1년이 된다고.”
“…….”
그건 분명 아무래도 좋은 날짜,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일들의 덩어리다. 하루키는 제 앞에 놓은 화분에서 그럴듯한 줄기와 잎새가 자란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녹색의 이파리들이 흔들린다. 거기에는 하얀색이나 연노랑 빛이 조금 섞여있을 수도 있고 표면이 까끌까끌하거나 매끈할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그건 하루키가 기른 나무였다. 인간이 감히 우주의 시간을 규격대로 나누어 가며 만든 하나의 원. 거기에 점이 찍힌다. 오랜 세월 빙그르르 돌다가, 다시 하루키의 앞으로 돌아온다.
「생일 축하합니다」
“무시할 수도 있어, 아무래도 좋은 평범한 날이라고 넘기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우리가 그 날을 특별하게 여기고, 즐겁게 보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순간이 될거야.”
“모두가 나를 위해 힘을 합치니까?”
목소리는 조금 부루퉁하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련없이 신나서 과장된 몸짓이나 언어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스르륵 떠오른 탓이었다. 아토 하루키는 그런 목소리를 안다. 아무래도 좋으니 저 만만한 녀석을 마구 패주고 싶다는 충동. 그걸 부추기는 웃음소리들.
그 생각이, 손가락으로 꾹 눌린다. 눈을 깜박여보면 오토와 루이가 정면에 선 채 하루키의 이마 정중앙을 문지르고 있었다.
“뭐, 뭐야?”
“너는 생각이 너무 많다.”
“많은 게 아니라” “생일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너 자신이 축하받아야 하는 날이야.”
“…….”
태어난 걸 축하해. 그리고 이만큼 살아온 걸 축하해. 너는 분명 앞으로도 나름의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 그걸 축하하자. 이 날, 이 계절에 태어난 너는 여지껏 너 자신이 그려온 궤적에 마음을 피고 당당하게 굴기에 충분한 존재니까.
“내가 한 건 아무 것도 없는데도?”
“왜 없다고 하지?”
고개를 들면.
“나와 친구가 되지 않았나.”
빙긋이 웃고있는 오토와 루이가 있다.
*
“그 미소에 넘어간지가 어연 10년을 넘는다니, 무섭네.”
“나는 유능한 소장이니까 유능한 직원은 놓치지 않거든.”
“자화자찬이야?”
키득거리면서 업무 서류를 정리하고, 느긋하게 건물을 나선다. 사회인이 된 이후로 나고야 탐정 사무소의 본점이 이동하거나 타구리가 데릴사위로 장가가는 등 여러가지 일이 있어 루이와 하루키만이 조촐하게 보내게 된 생일파티였지만, 이번에는 아무래도 사정이 다르다. 지고천 사건이 끝나고 약 1년, 그때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못한 생일파티를 이번에야말로 거하게 해보자! 고 모두의 뜻이 모인 이벤트가 된 것이다.
“4월의 레이지 생일 파티도 대단했는데 말야.”
“그래, 다들 네 생일도 그 정도 규모로 해주려고 벼른 것 같더군.”
“괜히 부담을 준 것 같아 미안한 걸…. 축하 카드로도 충분한데.”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진다. 책망이나 비난의 세기는 아니었다.
“중요한 건 네 자신이 너의 생일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거니까 말야.”
“…….”
“아니면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나?”
“…없어.”
포도는 5월달에 영글기에는 아직 이르고
흘러가는 수로의 물은 아직 서늘하다.
그럼에도 아토 하루키는 자신의 탄생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태어난 이 세상의 공기를 한 번 들이쉬고, 조금 후의 미래를 기대하는 마음을 부풀리고, 깊이 깊이 우러나오는 반가움을 막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신이 그려온 궤적을, 궤적 속에서 만난 이들을 긍정한다.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취한 행동에 대한 다정한 긍정으로 돌아온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하루키가 해온 일들이 하루키의 미래 또한 축복해주는 것이다.
약속 장소는 미리 예약해둔 일식집이었다. 하루키는 봄의 온기보다 더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한 발 한 발, 축하장소를 향해 다가갔다.
손잡이에 손을 얹고 천천히 힘을 실어 문을 연다.
그건 마치 준비해둔 축포가 팡, 하고 터지는 듯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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