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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세포신곡

[논커플링]4월 9일, 세오도아 리들.

하츠토리 하지메 탄신기념 릴레이 합작 「영속신전재래 지고천」참가글.

합작 주소 : https://www.notion.so/02ebe8340c25473ea8ac25dc71410cd4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5 : 2-4

 

*

 

“또 신앙단체라도 만들 생각입니까?”

“고약한 농담이네.”

 

옅은 웃음 너머로 페이지가 넘어간다. 드레퓌스 츠바이크는 커피 메이커에서 갓 뽑아낸 커피를 머그잔에 가득 담은 채 감흥 없는 얼굴로 홀짝였다. 둘 사이의 하얀 접시에는 요깃거리로 놓인 비스킷이 있다. 팔락이는 종이소리가 얼마간 이어지다, 천천히 덮였다.

 

“츠바이크.”

“네.”

“꿈에서 죽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

“전 현재 3대째 이름을 갈아치우며 살고 있어요. 질문을 바꿔주시죠.”

“꿈에서 죽은 사람을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들어?”

 

츠바이크는 가벼운 한숨을 쉰다. 머그잔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내가 꿈을 꾸고 있구나, 싶죠.” 

“삭막해.” 

“삭막한 정도가 딱 좋습니다. 꿈속에서 애걸복걸 목 놓아 울다가 깨면 얼마나 한심한 기분이 되는지 아나요?” 

“경험담이야?” 

“노코멘트.”

 

말을 마친 츠바이크가 다시 커피를 홀짝인다. 환기를 위해 열어둔 문 사이로 따뜻한 바람과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바로 어제 소나기가 내린 오전 11시의 공기는 적당히 맑고, 활짝 피어난 꽃잎은 바람을 따라 부드럽게 흔들린다. 바야흐로 봄이었다.

 

“그리운 사람의 꿈이라도 꿨습니까?” 

“…글쎄, 그립다고 해야 할까….”

 

재앙의 기색 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평온.

 

“꿈에 하츠토리가 나왔어.” 

“호오.” 

“온갖 재앙을 이끌고, 무너졌을 지고천 연구소를 일으켜 다시 나타났지. 마치 요한계시록처럼.” 

“스케일이 크군요.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끝은 결국 모든 부덕不德이 심판받고 새 하늘 새 땅이 찾아오는 결말일 텐데요.” 

“응. 하지만 그런 결말은 없었어. 내가 부쉈거든.” 

“당신이?” 

“내가.”

 

열어놓은 창문으로 빛이 스며 들어와서 접시 위의 비스킷에 그림자가 진다. 우둘투둘한 모서리의 형태가 마치 견고한 성벽처럼 늘어섰다. 그걸 가죽장갑에 덮인 손가락이 하나 집는다. 톡, 부스러뜨린다. 바스러진 조각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왜 부쉈나요?”

“진짜가 아니니까.”

“하긴 그렇네요. 꿈이라는 건 허상. 손에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는 그림자놀이죠.”

“…….”

“하지만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사람은 자신의 무의식을 전부 조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예외는 아니겠죠.”

 

세오도아는 살짝 시선을 들어 상대방을 바라본다. 표면상으로는 츠바이크 가문의 아들이지만 실제로는 삼대가 바뀌기 넉넉한 시간을 같은 얼굴로 살아온 자는 표정을 얼핏 보는 정도로는 속내를 짚어보기 어렵다. 다만 낮고 담담한 시선의 온도를 통해, 그가 자신을 빈정거리거나 경멸하고 있는 건 아님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아니면, 꿈속에서 계속 살고 싶었나요?”

 

그 질문에 세오도아는 재채기라도 하듯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럴 리가 있겠어? 그럴 리가 없잖아. 꿈속이 얼마나 난리법석이었다고. 땅은 불타고, 태양은 벌레 먹히고, 물은 오염되고, 사람들은 미쳐 날뛰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서 재앙을 부르고…….

 

다신 꾸고 싶지 않아.

 

“그런가요.”

 

츠바이크는 그 이상 깊이 캐묻지 않는다. 그의 시선이 뒷표지를 위로 하여 눕혀진 성경책에 닿았다가, 떨어져나간다. 흑녹색의 가죽 표지가 테이블 위에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 얘기, 다른 사람들에게도 할 겁니까?” 

“안 해. 분위기만 어수선하게 만들 거 아냐.” 

“그럼 저한테는 왜 했나요?” 

“금방 잊어버릴 것 같아서.”

“나 참.”

 

대화의 맥을 끊듯이 무언가 진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익숙한 동작으로 자신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츠바이크는 액정을 몇 번인가 두드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간이 좁다. 세오도아는 어렵잖게 상황을 추리했다.

 

“또 편집 트러블이야?” 

“네.” 

“너무하네, 휴일인데.” 

“조금만 통화하면 끝날 겁니다. 실례하죠.” 

“수고해~.”

 

달칵, 하고 문이 닫힌다. 이런 일은 한두 번 있는 게 아니다. 아마 조금 있으면 츠바이크가 평소의 얼굴로 돌아와서 ‘끝났습니다.‘ 하던가, 좀 더 미간이 깊어진 채로 돌아와서 ’잠깐 다녀오죠.‘라고 하던가 둘 중 하나겠지. 세오도아는 무의식적으로 손끝을 문지르려다, 자신이 아직 반으로 가른 비스킷을 그대로 들고 있음을 깨닫는다.

 

─자기 본위의 세계를 만들고 싶은 거라면 꿈속에서나 마음대로 하란 말이야!

 

후, 하고 웃음이 새어나온다. 세오도아는 자신이 비스킷을 반으로 갈라놓은 주제에 다시 얌전히 접시로 돌려놓으면서 생각한다. 이것 봐, 하츠토리. 너는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모든 것을 알고 관조하는 척 하면서 그냥 자리에 맹하니 앉아있을 뿐인 꼬맹이라고.

 

─멋대로 머릿속에서 그가 죽지 않는 세계라도 만들어서, 원하는 만큼 구원받는 삶을 살면 되잖아!

 

그래, 꿈이야 만들 수 있어. 환상이야 얼마든지 꾸밀 수 있어. 내 입맛대로 오밀조밀한 이상향을 만들어버리면 그만이라고. 그리고 거기에 평생 사로잡혀서 지낸다면 아무 걱정도 없을 거야. 항상 웃으면서 지낼 수 있을 테지.

 

하지만 말야. 하지만 말이지.

 

“난 그러지 않아.”

 

무대에 오릅시다. 무대에 오릅시다. 멋진 배경, 아름다운 음악과 훌륭한 대사와 함께 어우러지며 무대에 오릅시다. 깊은 생각은 하지 맙시다. 오로지 주어진 역할대로 움직입시다. 그리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감동의 물결을 자아내는 겁니다.

 

“나는 그런 짓만큼은 하지 않아.”

 

그렇다! 춤춰라! 노래하라!

 

“나는….”

 

완전하고 무결하며 전지전능하신 신의 사랑 아래에서!

 

“신이 되지는 않을거야.”

 

언어는 꿈과 같이 흔적을 남기지 못해서 아무것도 더해지지 않는다. 세오도아는 지긋이 눈을 감고, 제가 뱉은 말을 곱씹듯이 다시 중얼거린다. 나는 신이 되지 않아, 나는 신이 되지 않아….

 

그러니까. 

그러므로. 

그리하여.

 

꿈은 꿈으로 마무리된다. 현실에는 무엇도 더해지지 않는다. 시간은 그저 정방향으로 흘러가고 죽은 이들은 죽은 채로 침묵하며 마땅히 축복받아야 할 아이의 생일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다. 세오도아는 마음을 정리하고 감았던 눈을 떴다. 슬프지는 않다. 비탄스럽지도 않다.

 

다만 조금, 쓸쓸한 기분이었다.

 

*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묵시록 22:21

 

 

 

 

>>4월 10일, 관측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