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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세포신곡

[논커플링]「의문을 묻지 않는다면 답은 돌아오지 않으니」

#세포신곡_전력_60분 『돌아올 수 없는 답』

※세포신곡 전체 시리즈의 스포일러 포함.


 

하라다 미노루는, 이따금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걸 누군가는 형편 넉넉한 자의 여유라 하고, 누군가는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의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남들이 그걸 어떤 식으로 부르던 하라다 미노루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대체로 그렇겠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품은 의문에 대한 해답이다. 

 

하지만 답은 반향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 아무리 강하게 갈구한다 한들 저절로 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라다 미노루는 그것이 퍽 기껍지 않았으나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바라는 것이 마치 강변의 자갈처럼 내버려져 있다면 누구나 그것을 찾아낼 수 있었겠지. 완성된 자신에 도달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보라, 세상에는 완전한 자보다 결핍되고 부족한 이들이 무성하지 않은가.

 

어머니는 서늘한 얼굴로 떠나갔다.

아버지는 다정하게 자신을 밀쳐냈다.

 

그 이상 몸을 의탁할 곳이 없어서 그는 단골 서점 점장님에게 신세를 진다. 스스로 방 한 칸 얻을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이나 기력을 끌어낼 수 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주어진 방에서 가만히 웅크려있던 미노루는 이대로 폐만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책장에 비스듬하게 놓인 책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한다. 『자기계발서』, 『초보 금융지식 익히는 법』, 『영어 초보 탈출 100단어』 ….

 

그는 지금도 '군계일학'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게 될 때마다 그 시절 그 방의 공기를 떠올린다. 마스크를 썼지만 먼지가 쌓여 조금 텁텁한 호흡, 손끝에 달라붙는 먼지의 감촉, 창문을 열었지만 날이 흐려 그리 밝지 않았던 방의 채광…. 그리고 그 앞에 잘못 떨어진 물건 마냥 하얀 표지로 빛나던 『신곡』.

 

우리네 인생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었다.

 

청소를 하다가 제일 많이 하는 짓이 옛날 앨범이나 일기장을 보다가 거기 심취하는 거라는데 미노루는 몹시도 인간적으로 독서에 매몰되었다. 주변의 공기와 바깥의 빗소리,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다리의 감각 같은 것이 멀리 밀려났다가 다시 다가오는 듯한 묘한 일렁임을 감각하며. 그리 빳빳하지는 못한 오래된 종이를 넘긴다. 그 속에서 한 명의 순례자는 제가 도달할 곳을 알지 못하고 스승의 안내에 따라 나아간다.

 

가장 처음에 보이는 것은 지옥의 풍경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각자의 응보를 받아 고통과 신음에 잠겨있다.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은 연옥의 풍경이다. 지옥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또한 천국으로 갈 수도 없는 이들이 그곳에서 죄를 씻을 수 있기를 기다리고, 마침내 그 기회를 마주한 자들이 형벌을 거치는 장소. 마지막 장소는 천국이다. 이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스승을 대신해 그를 이끄는 것은 천계의 성인이 된 베아트리체. (미노루는 여기서 기시감을 느끼지만 눈치채지는 못한다) 순례자는 여러 덕을 이룬 인물들이 그를 기다리다가 이야기를 나눈다. 아쉽고도 유익한 대화를 나누며 성인의 인도를 받아 마침내 빛 그 자체인 신을 우러르고.

 

신곡은 거기서 끝났다. 정신이 들고보니 하늘은 이미 새벽 푸르름에 물이 들어 천천히 걷어올려지고, 새들의 지저귐은 그 모습을 여유롭게 장식하고 있었다. 묘하게 마음은 개운하다. 뿌듯한 결과를 얻은 듯했다. 겨우 책만 하나 읽었을 뿐인데 뭐가 뿌듯한 결과냐 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하라다 미노루는 이 책을 읽는 동안 활자의 나열로 몸을 바꾼 어떤 해답이 자신의 몸으로 스며들어왔다고 느꼈다.

 

그건 당장 입 밖으로 꺼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걸 언어로 만드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 있지 않은가. 다행스럽게도 미노루는 그런 방면으로 살짝 재주가 있었고 제 모종의 목표에 대한 열의도 또렷했다. 에테르에 기자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라다 미노루는 싹싹하고 예의바른 기자로 좋은 평판을 받았다. 특히 어려운 자료라도 반드시 이해한 뒤에 취재에 임한다는 점이 그를 칭찬하는 주된 소재였다.

 

(아뇨, 그냥 준비를 잘 하지 않으면 불안할 뿐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하라다 미노루는 『아카시아의 신민』이라는 새로운 신앙조직의 취재를 맡게 된다. 취재라고 해도 상대측은 어디에 무엇을 감추고 있을 지 알 수 없다. 만약 뭔가 위험하다 싶으면 곧바로 연락을 넣어! 선배가 속삭인 말은 진심인지 농담인지. 아무튼 하라다 미노루는 오컬트 기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단단히 갖추고 건물로 들어가, 방을 안내받았다. 그리고….

 

친구가 생겼다.

사랑하는 이가 생겼다.

가족을 이루었다.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라다 미노루는, 여전히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이전의 고민처럼 어둡거나 눈물에 젖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이토록 서로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젠가 들은 말은 부드러운 솜사탕처럼 부풀어오른다. 

 

「이 순간을 위해서 나는 살아온거구나.」

 

그리고 아들이 양성임이 밝혀진다. 분명 자신의 피를 이은 자신의 아들일텐데도 잡은 손이 미친듯이 멀어져서 결국 떨어진다. 걸어가다 뭔가 바스락거리는 듯 해서 손을 살펴보면 갈라진 곁살들이 너덜거렸다. 그런데도 웃을 수는 있었다. 말할 수도 있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잠드는 것도. 인간의 최소기능이란 건 이런 것일까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행복했던 시절은 있었음에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뒤틀려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하라다 미노루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제 방에서 소리친 적도 있었다. 「이제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는 끝난거냐!」 하루키는 검진을 위해 어머니인 라이와 함께 연구소에 있었고 레이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던 때의 일이었다. 텅 빈 집에서는 뭉게진 반향이 들려오고 미노루는 한 번 더 외쳤다.

 

「아니면 고작 이딴 일을 겪기 위해서 우리는 행복했던거냐!」

 

어떤 일이든 경험하면 다음에는 나아질 거라던가, 시간이 흐르다보면 어찌어찌 극복할 수 있다거나 하는 말은 무르다. 그런 말로는 하라다 미노루의 가슴 깊이 파묻힌 탄식과 슬픔을 걷어내어 본심을 드러내게 할 수 없다. 따라서 그의 진짜 마음은 매몰된다. 슬픔과 절망, 몰려오는 과거의 파도가 그 위를 충실히 뒤덮는다. 답이 어디에서도 돌아오지 않는 사실 따위는 깨닫지도 말라는 듯이.

 

그리고 1999년의 사건이 일어난다.

하라다 미노루는 죽었다.

대신 이소이 사네미츠가 화물칸에서 고개를 들었다.

 

*

 

한적한 오후다. 사네미츠는 멍한 시선으로 벽을 바라보다가 문득 맛있는 냄새의 향을 맡는다. 눈 앞에는 세오도아가 느긋한 자세로 음식을 뒤적이고 있다. 그 일상적인 모습이 사네미츠의 마음에 남은 낡은 의문 하나의 먼지를 털어낸다. 두 가지 행동의 인과관계를 추론하기도 전에 새어나온 질문은 다분히 낡아있었다.

 

"어렸을 때는 말이지."

"응."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어."

"다들 생각하지~."

"정말이지 전혀 감이 오지 않더라. 하기사 살아가는 이유를 한순간에 알아차리게 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만."

"이해해."

"운명이라던가 필연이라던가 우연이라던가… 그런 말들을 실컷 읽은 적도 있고."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구운 빵에 계란을 얹고 소스를 뿌린다. 그대로 한입 크게 베어무는 모습은 이전에 본 그의 모습과 다르지 않고.

 

"운명은. 결국 나의 궤적…. 실패하든 성공하든, 내가 살아있다는 그 자체로 내가 그린 궤적인거야."

"사람이 한평생을 바쳐서 그려내는 일생의 역작처럼 말이지?"

"그래. 그러니까, 살아가는 이유라는 것은 하나의 목표점일 뿐이지 그게 모든 것인건 아냐. 그림에 구도와 색채, 명암 등이 합쳐져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처럼. 그러니까 비장하게 생각할 것 없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여 나아가면 됐던 거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의지로."

 

좋은 말이라고 세오도아 리들은 웃는다. 이소이 사네미츠는 문득 옛 단칸방의 추억을 떠올린다. 마스크를 썼지만 먼지가 쌓여 조금 텁텁한 호흡, 손끝에 달라붙는 먼지의 감촉, 창문을 열었지만 날이 흐려 그리 밝지 않았던 방의 채광…. 

 

우리네 인생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었다.

 

이제는, 이제는 헤매지 않는다. 헤매이지 않을 것이며 그럴 여유도 없으니까. 목표는 세워졌다. 의지는 굳건하다. 만약 일이 잘못된다 하더라도 이를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니 인간은 유약하다고 하는 걸까.

 

"괜찮아?"

"뭐가?"

"뭔가 해답을 바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사네미츠는 고개를 들어 세오도아 리들의 얼굴을 본다. 담담한 것인지 웃음을 머금은 것인지 애매한 얼굴. 음식을 한두입 베어먹어 더러워진 입가. 연분홍빛과 붉은 빛을 머금은 이목구비. 멀리서 불어들어오는 여름 바람의 냄새.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안 해, 세오도아."

 

그러나 사네미츠는 그에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다.

어차피, 돌아올 수 없는 답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