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포신곡 전력 60분 「다정한 거짓말」
다정한 거짓말은 다른 거짓말과 마찬가지로 치밀해야 한다. 다정하다는 형용사는 다만 형용사일 뿐, 그 자체로는 거짓말이 진실을 덮어씌울 정도의 위력을 주진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남을 위로해주려거나 평온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이라 해도 결국 거짓은 거짓. 그에 맞는 내구도를 갖추지 않으면 진실의 단서에 간단히 찢겨 실체를 드러내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제 친우는 정말 지독한 거짓말쟁이다. 아토 하루키는 낮은 텐션의 음악이 깔리는 카페에서 홍차를 마시며,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오토와 루이를 바라본다. 녹차잔이 있어야 마땅할 것 같은 앞자리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잘 우러난 홍차가 한 잔.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 맞다면 다즐링, 이라는 종류다.
“차는 입에 맞나?”
“앗, 응. 따뜻하고… 좋은 향이 나네.”
“다행이군.”
그렇게 말하고, 오토와 루이도 찻잔을 기울인다. 아토 하루키는 탁자 아래에서 발을 까딱이다가 슬쩍 주변을 둘러본다. 꽤 그즈넉한 분위기, 나무 가구로 꾸며진 실내에는 몇 개의 테이블이 정연하게 놓여있게 거기 둘러앉은 사람들이 각자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어딜 봐고 여성의 비율이 높고, 남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기보다 지금 아토 하루키와 오토와 루이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 하루키는 입꼬리를 꾹 닫고는 고개를 돌렸다. 옅은 수색 위로 좁혀진 미간이 보였다.
“그렇게 긴장되나?”
“긴장한 건 아니야. 그냥….”
“그냥?”
“…신기해서.”
우물거리는 입술로 뱉은 말의 결은 사실 동일하다. 뒤늦게 그걸 알아챈 하루키가 헛기침을 하는 동안 루이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마치 몇 년 전부터 이 가게에 다녀본 것 마냥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런가. 고맙다 하루키.”
이어진 말은 너무 말끔해서, 하루키는 대번에 이해하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단순히 홍차 뿐만 아니라 간단한 다과도 놓여있었다. 하루키는 뇌를 움직이는 대신 손을 움직여 비스킷 하나를 입에 밀어넣는다. 밀가루로 굳어진 미미한 단맛이 혀를 살짝 자극을 준다. 그걸 녹이듯이 먹은 뒤에야 답할 말이 생각났다.
“왜… 나한테 고마워 하는거야?”
“네 덕분에 이런 가게에 올 수 있었지 않나.”
아니, 그렇지 않다. 이 가게를 알아온 것은 루이다. 가게의 위치부터 시작해 하루키의 컨디션, 두 사람이 이동할 수 있는 거리 등등을 고려해 동선을 짜준 것도 루이였다. 아토 하루키는 그저, ‘홍차라니, 신기하네.’라고 말해봤을 뿐이다. 그래서 하루키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진다. 자신의 친우는 분명 매사에 똑 부러지고 명석한 부분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이런 부분에서만큼은 자신을 신경써주려고 한다. 다정하게 거짓말을 해주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는데도.
“아니잖아. 오히려 루이 덕분에 내가 여기 올 수 있었다고 해야지.”
“하루키.”
“나도 알아. 루이가 날 신경 써주고 있다는 거.”
“너는 그게 문제다.”
갑자기 지적당한다. 고개를 들고 앞을 보면, 살짝 한숨을 쉬는 오토와 루이의 얼굴이 보인다. 뭔가 화날만한 짓을 해버렸나? 괜시리 몰려오는 불안감에 마른침을 삼키고 있자니 루이가 입을 열었다.
“너는 왜 네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아야할 것처럼 굴지?”
“어.”
“네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 보고싶은 것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
“아니, 그게… 그건, 루이가 나를 도와줘서….”
“바보로군, 하루키. 확실히 나는 너를 도왔지만, 네가 여기까지 올 마음까지 내가 주진 않았을텐데?”
“그야, 여기로 온건 나의 의지…긴 하지만.”
찻잔을 매만진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다기질의 하얀색.
온도가 남았을까. 아마 눈으로도 보기 힘든 손자국은 남았으리라.
“나는 본래라면 이런 데 올 자격도 없으니까.”
사람을 죽이려 했다. 죽이고자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실행했다. 거의 성공할 뻔 했다. 찰나에 든 생각으로 그걸 멈추려 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한 생각이나 행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사람을 죽이려 했다. 죽이려 한 인간이, 무언가를 원하거나 바라거나 보고싶어해서 이루는 것은 과연 올바른 일일까?
“분명, 나 혼자라면 오지 못했을 거야.”
스윽, 하고 바람처럼 흘러 지나가는 마음. 그 감각을 하루키는 잘 알고 있다. 가끔은 이상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아무렴 어떻겠는가. 주어진 인생이 그렇다면, 스쳐지나가는 바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도 퍽 사치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넌 여기에 있군.”
“…오토와 군 덕분에.”
“루이다.”
이제는 하나의 약속처럼 굳어진 대화를 나누며, 아토 하루키는 어쩐지 먼 미래를 관망하는 듯한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자신의 말처럼 아토 하루키라는 존재에게는 결국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아서, 홀로 남아 옛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만이 허락된다. 그렇다면 그때에 이 시절의 대화는 우스운 것으로 느껴질까, 슬픈 것으로 느껴질까, 아니면.
“하루키.”
또 이름을 불려서 고개를 든다.
“반성하는 건 좋지만 폐쇄적인 사고는 좋지 않다. 아무래도 이 버릇은 고치는데 시간이 들겠군.”
“고치다니… 내가 고장난 라디오도 아니고.”
“각오해두도록. 나는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니까.”
루이가 설핏 웃어보인다. 하루키는 그걸 또 반박하려다가 그만두고 아직 찻잔에 남아있는 찻물을 마셨다. 따뜻하던 홍차는 어느샌가 조금 식어서 미지근하다. 세상 일이 이런 식이니, 지금은 자신 곁에서 이렇게 든든하게 있어주는 친구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오토와 루이는 자신이 줄곧 곁에 있으리라는 말을 한다. 어떤 말로도 그 주장을 퇴색시킬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짜인 의지.
“고생을 사서 하네, 루이.”
“다행히 동생이 있어서 말야. 누굴 돌보는건 익숙하다.”
언젠가, 이 추억들은 상냥한 거짓말이 되겠지.
아토 하루키는 찻물과 함께 생각을 삼켜버리곤 웃었다.
*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사무소에 들어온 홍차 메이커에 대한 감상은 그것 뿐인가요? 아토 사원.”
“소장님의 하혜와 같은 은혜에 그저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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