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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나는 어느 마법사와 사제의 말싸움을 본 적이 있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내 말솜씨에 대해 말하고 싶다. 솔직히 말해 나는 누구에게 말을 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만약 자신이 무슨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몇 번이고 '뭐라고?' 하고 되묻다가 끝내 '아, 그래 그래. 나도 알아' 같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 수도 없이 겪어본 사람이 있다면 이 문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내 목을 통해 나오는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타인에게 잘 전달이 되지 않는다. 크기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발음이나 억양이 지나치게 유별나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내 말투는 아버지와 거의 흡사한 편인데. 우리 아버지는 인근에서도 유명한 장사꾼이다. 장사꾼에게 명료한 발음과 억양, 그리고 크기가 필수라는 사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는 그저 평범하게 이야기할 뿐인데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다 내가 말을 끝낸 뒤에 '미안한데, 다시 한번만 말해줄 수 있어?' 라든지 '잘 못들었지만 일단 좋은 것 같아.'(말도 안되는 소릴!)따위의 말을 뱉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지긋지긋한건 학교에 다닐 때의 기억이지만, 지금 여기선 그닥 필요한 부분이 아니니 그만두겠다.

중요한건 내가 이상의 이유로 말 보다는 침묵을 택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하여 남들에게 말을 통해 무언가를 설명하는 기술-언변이라고 하던가. 그런 테크닉이 몹시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재밌는 이야기라 할 지라도 내 입을 통해서 나오면 어디서 웃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시시한 중얼거림같은게 되버린다. 감동적인 이야기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서야 '아, 그게 그거였구나!'하고 깨닫게 된다. 상황이 이런데 남에게 뭘 말할 수 있을리가 없다. 덕분에 나는 남에게 말을 하기보다 남의 말을 묵묵히 듣는 쪽의 인간이 되었다. 적어도 맞장구같은 경우는 말이 잘 안들리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으니 서로 편한 일이었다.

사족이 길어졌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

그날 나는 자주가는 단골 술집에서 안주 몇 가지를 곁들여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불러낼 수 있는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는 것도 귀찮고(그보다 상대가 내 말을 알아들으려나 싶다) 문자도 왠지 번거로웠다. 무엇보다 살다보면 혼자서 느긋하게 마시고 싶어질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반 병 정도의 술을 느긋하게 비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그건 신앙모독입니다!"

돌아보니 있는 것은, 지혜와 평화의 신을 숭배하는 사제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하얀색과 물빛이 보기 좋게 어우러져 있는 복장이 경건했다. 사제임에도 불구하고 술집에 있는 것은, '이 사람은 술집에 출입하더라도 아무 문제 없음'이라는 교단의 인증을 받은 성실한 사람이라는 거겠지. 그리고 그 앞에는, 같은 파란색 계열이긴 하지만 디자인이 공격적으로 느껴지는(그렇게 밖에 말할 길이 없다) 옷차림의 마법사였다. 저 조합을 보아하니 서로 대화를 하는 도중에 아귀가 맞지 않게 된 모양이다. 나는 몸을 약간 비스듬하게 돌린 채 술잔을 홀짝였다. 나 외에도 다수의 손님이 그들을 보고있지만, 그들은 서로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주변 사정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신앙 모독이라니, 너무 앞서나가잖아. 나는 마법사로서, 나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야."
"그러니까 어째서 물을 사용할 필요가 있냐구요! 원소계 마법이라면 불꽃이나 대지, 바람도 있잖습니까!"
"그야 그렇지. 그치만 나는 물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단 말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서 따로 모아 길드도 만들었고, 기술도 발전했어."
"그래요! 그게 문제에요! 왜 하필이면 물을 공격의 수단으로 삼는 건가요? 물은 신의 상징이자 축복.그토록 폭력적으로 다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아아, 그 얘기인가. 

두 사람을 쳐다보던 사람들이 지루한 표정이 되어 시선을 돌린다. 5년 전의 사고로 세계가 패치워크처럼 누덕누덕해진 이래 특정 속성의 신성함과 내포된 마력을 사이에 둔 논쟁은 어찌나 빈번하게 이루어졌는지, 처음에는 호기심에 눈을 빛내던 사람들도 이제는 같은 화제가 나오면 몇 번이고 우려진 차를 뭐하러 또 우려마시냐며 손사래를 친다. 다만 신앙이니 마법이니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다른 모양인지, 이따금 곳곳에서 이렇게 격렬한 논쟁이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루 먹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인 나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지만.  

"폭력적으로 다룬다는 무슨. 물이 너한테 사정이라도 해? '저 사람이 우릴 써서 나쁜 짓을 해요~ 좀 말려주세요~'라고?"
"유치한 말장난은 집어치우세요!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소중하고 고귀한 물을 대하는 당신의 무지함과 폭력성이니까요!"
"폭력? 무지? 웃기시네. 내가 이 마법을 익히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진짜로 머리가 굳은건 잘난듯이 고개나 쳐들고 있는 네놈들이겠지!"

아아, 말다툼은 골치아픈데. 게다가 신성이 어쩌니 마력이 어쩌니 하는건 들어봤자 골치만 아프고. 나는 돌렸던 몸을 그대로 빙글 돌려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을 쳐다보던 가게 주인이 내 앞의 마른 안주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재빨리 견과류를 채워주었다. 여기는 기본적으로 마른 안주는 서비스 제공이다. 나는 땅콩 하나를 씹어먹었다. 음, 딱딱하군. 때마침 내 옆 자리에서 뒤를 보던 어느 손님 하나는 그 소리를 듣고 내 쪽으로 의자를 가까이 붙여 슬쩍 말을 걸어왔다. 여기서는 제법 흔한 일이다.

"세월이 5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저렇게 싸우는 사람이 있군요."
"저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문제겠죠."
"하긴 산불이나 해일같은 것은 신의 의지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와 유사한 행동을 일으켜 사람들에 피해를 입힌다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커다란 문제고, 여태껏 자신의 기술로 갈고 닦아온 마법을 고작 신전의 불평불만때문에 내버려야 한다는 것은 마법사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겠죠. 이것 참, 팽팽한 이야기에요. 어느 쪽도 양보하려 하지 않으니."

등 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가 싶더니 주인이 카운터에서 나가 홀로 다가간다. 아마 가게 내에서 너무 큰 소란은 곤란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거겠지. 나는 남은 술을 대충 마시며 모르는 남자의 이야기에 그럭저럭 장단을 맞춰준 다음 마신 만큼의 돈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왔다. 두 명의 마법사와 사제는 근처 공원 벤치에 앉은 채 격렬하게 논쟁하고 있었다. 사이가 좋은지 나쁜건지 모르겠군. 

연구소로 돌아온 나는 동료들의 인사를 받으며 내 자리에 앉아 실험 결과를 체크했다. 개발은 순조롭다. 이대로만 간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천재지변을 인간의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재현할 수 있게 되겠지. 땅을 가르고 불을 폭발시키고 바람을 일으키며 세상에 파괴의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것이 처음으로 밝혀졌을 때, 신앙을 따르는 이들을 뭐라고 할까. 또 마력을 따르는 이들은 뭐라고 할까. 아마 우리를 두고 희대의 개자식들이라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상관없지만, 일단 나에게 직접 말싸움을 걸어오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런 건 내 특기가 아니니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