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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형形 이야기]"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당신만을 사랑한다.


=


…그와 그녀가 만난 것은 어느 흐릿한 오후의 일이었다. 거리를 걸어가던 그녀는 앞서 걸어가는 사람이 무언가를 떨어뜨린 것을 보았다. 그것은 3단짜리 우산이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비가 올듯한 하늘 아래에서 그 우산을 주워들고 남자의 뒤를 쫓아갔다. 여자와 남자의 보폭은 기 길이부터가 달랐던데다 여자는 구두를 신고있었던 탓에 금방 그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만약 그때 횡단보도가 아슬아슬하게 붉은 빛으로 변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두 눈 멀뚱히 뜬 채 남자를 보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설령 그를 다시 길가에서 마주쳤더라도 새삼스런 마음에 말도 붙이지 못했겠지. 결과적으로 우산이 그녀의 집 안에서 먼지를 맞지 않게 된 것은 순전히 타이밍 좋게 바뀐 신호등 덕분이었다.


그녀는 횡단보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는 남자를 향해 우산을 내밀었다.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남자는 곧 그것이 그의 물건임을 깨닫고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심기가 불편한 노인처럼 찌뿌드드하게 뭉쳐있던 회색 구름이 빗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굵은 빗방울들은 금새 주변의 모든 것들을 적시기 시작했고, 타이밍 좋게 우산을 돌려받은 덕분에 비를 피할 수 있었던 남자는 곁에서 그녀가 어쩔 줄 몰라하며 들고있던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는 모습을 발견하고 함께 우산을 쓰는게 어떻겠냐고 살며시 말을 걸었다.


그녀는 망설였다. 남자는 그녀의 대답을 듣지않고 그녀의 머리에 검은 우산을 씌워주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3단짜리 우산을 두 사람이 쓰기위해서는 안의 두 사람이 몸을 바짝 붙이지 않으면 안된다. 갑작스런 상황에 뻣뻣하게 굳어있던 그녀는 두 사람의 몸이 부대끼는 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이려 뭄을 움츠려뜨렸다. 남자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슬쩍 웃고는 우산이 그녀의 몸을 가리도록 위치를 바꿔들었다. 그때문에 오른쪽 어깨의 정장이 젖는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으면서.


신호등은 5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파란 불이 되었다. 그것이 두 사람에게 길게 느껴졌는지 짧게 느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횡단보도를 건넌 두 사람은 지하로에서 헤어졌고, 다음 날 우연히도 다시 거리에서 마주쳤다. 이번에는 비가 오지 않았고 누군가가 물건을 흘리지도 않았지만 두 사람은 함께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다음날에도 우연히 만난 그들은 걷는 대신에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함께 차를 마신 뒤 서로의 번호를 교환했다. 그 다음다음 날에는 문자와 전화를 통해 아예 어디에서 만날지 약속을 하고 만났다. 만나는 시간은 지극히 짧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여자에게 주말 데이트를 신청했다. 처음에는 뛸 듯이 기뻐하던 여자는 그 직후 그날이 회사사원들끼리 떠나는 여행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남자는 아쉬운 기색을 보였지만 회사의 선배들이 모두 가는 여행에서 새파란 신입인 그녀가 함부로 빠질 수 없는 입장임을 이해하고는 더 이상 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여행지에 대해 물어보고는 거기의 어느 장소가 좋다는 이야기를 건네주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나 바보같은 자신을 욕했다. 자신이 조금만 당찬 여자였다면 이런 것쯤은 가볍게 걷어차고 그와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럴 용기도 베짱도 없다. 그날 그와 헤어진 그녀는 혼자뿐인 방안에서 목놓아 울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시끄럽다며 방문을 걷어찰 때까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주말이 되었다. 잠을 설친 바람에 비몽사몽하는 상태로 자신의 짐과 여분의 물품을 챙겨 집을 떠난 그녀는 집합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선배들로부터 타박을 받았다. 그녀는 불같이 화를 내는 선배들에게 몇 번이고 사과를 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2시간이 걸린 다음에야 겨우 도착한 여행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예약해둔 민박에 짐을 푼 그녀들은 근처의 강가에 뛰어들어 신나게 물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여자에게만 찾아오는 마법탓에 민박에 멀뚱히 남아 짐을 지키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행복한 웃음소리를 멍하니 듣던 그녀는 갑자기 주머니에서 진동하는 핸드폰을 느끼고 액정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재밌게 놀고있느냐는 남자의 문자가 도착해있었다. 그 문자에 일부러 무척 재밌다는 투의 이모티콘을 넣은 답장을 보낸 뒤, 그녀는 마루에 길게 드러누웠다. 멀리서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선배들이 돌아왔고, 당번이 아닌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정답게 웃어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준비했다. 그들은 무언가가 필요할 때마다 그녀를 불렀고, 그때마다 이런저런 물건을 대주느라 바쁘게 돌아다닌 그녀는 저녁식사가 끝날 때 쯤에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결국 피로가 쌓인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동안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방안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른아른하게 들려오다가 이윽고 잠의 베일에 완전히 가려졌다.


다음날 아침,서서히 정신을 차린 그녀는 바닥에 누워있던 자세 그대로 약간 기지개를 켰다. 그 순간 피부에 끈적하게 눌어붙는 감각에 순간적으로 생리혈이 새어나온 걸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벌떡 제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할말을 잃었다.


거기에는 새어나온 생리혈따위는 문제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참상이 펼쳐져있었다.


그 이후로는 시간이 쏜살처럼 지나갔다. 사상에 유례없는 대참사에 그녀 주변에는 온갖 기자들과 경찰서의 형사, 혹은 호기심 어린 구경꾼들이 복작복작하게 모여들어 그녀는 매일마다 걸어다니는 시장에 둘러싸인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녀의 가족들 또한 마찬가지여서, 주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등쌀에 시달리다 못한 어머니는 그녀의 병실에 앉아 뭐하려 귀찮게 그런 일에 휘말렸냐며 투덜거리곤 했다. 단체여행을 간 회사 여직원들이 한 명을 남기고 모조리 살해당한 탓에 인력이 부족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미지도 안 좋아진 회사가 문을 닫아버려 딸이 실업자가 되었음을 알았을 때에는 차라리 죽어서 위로금이라도 받는 게 나았을거라며 입이 댓발은 튀어나왔을 정도였다. 반대로 아버지는 얼마나 무서웠냐며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주었지만, 그녀는 그런 아버지의 친절에 제대로 감사를 표하지도 못한 채 멍한 눈으로 창밖의 하늘을 응시했다. 


남자가 그녀를 찾아온 것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러고보면 그들은 핸드폰 이외의 연락수단이 없었다. 남자가 여자를 찾는데에 시간이 걸린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딸의 병실에 말끔한 외모의 남자가 들어오자 눈이 휘둥그레해진 그녀의 어머니는 남자가 여자를 걱정하는 동안 남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기력이 없는 여자가 듣기에도 절로 눈을 찌푸리고 말 정도로 세속적인 질문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목적을 어설프게 감추려고 하지만 전부 다 뻔히 보인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속물적이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고 어머니의 질문에 답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남자는 여자의 손을 꼭 잡아주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남자가 쥬스 상자를 놔둔 채 아쉽다는 듯이 병실을 나섬과 동시에,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온갖 추잡한 말을 토해냈다. 그 말을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 뭣하지 않을 정도로 순환해서 재정렬하자면 <저 사람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을 만들어서 결혼해버려라>쯤 되는 말이었고, 그녀의 욕망을 한껏 드러내서 표현하자면 <좋은 돈벌이감이니 이참에 일을 저질러버려라>는 식이었다. 그녀는 두통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구역질이 났지만 무어라 말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발목에 추잡한 족쇄가 채워진 기분이 들어버린 탓이다.


다음 날 남자는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분명 어머니의 그런 속물적인 태도에 질려버린 것이리라. 우울한 마음에 그녀가 눈물을 흘리자 곁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천천히 그녀의 눈물을 닦아내주었다. 그녀는 눈꺼풀을 꽉 닫은 채 남자와의 추억을 모두 지워내려 애썼다. 그것은 피와 고깃덩어리가 되버린 인체 사이에서 자신이 하룻밤을 보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보다 더한 고통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고, 그녀의 아버지는 한시도 쉬지않고 딸의 눈물을 닦아내주었다. 어머니는 어디로 간건지 보이지도 않았다. 어딘가의 삼류 신문사에 딸의 이야기를 팔러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쓰지 않는 눈치였고, 그래서 어머니의 행방은 그저 묘연한 채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녀가 퇴원을 하루 앞둔 때가 되었을 때에는 아버지마저도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분명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딸의 간병에 싫증이 나버린 것이겠지. 그녀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이게 속편했다. 그녀는 그날 밤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 참 편안한 잠을 잤다. 뒤척임도 기묘한 꿈도 없는 수면이었다.


다음날,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로비로 내려온 그녀는 중앙 현관에 서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그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병원 입구에 하얀 차를 세워놓은 채 멍해진 그녀의 손을 잡고 조용히 걸어나갔다. 그녀는 그 따뜻한 손을 의지하면서 그가 마치 '하얀 말을 모는 왕자님'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신이 공주님이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주제넘은 일이므로 그런 상상은 하지 않았다.


남자의 차는 소음도 없이 조용하게 거리를 달려나갔다. 남자는 차를 운전하면서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마냥 여자에게 친근한 말을 건넸다.  여자는 떨떠름한 기분을 느끼며 조심스레 그 질문에 대답했다. 마음같아선 왜 자신을 만나러오지 않았던 것인지를 묻고싶었지만 그걸 지금 섣불리 물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때문에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물어버고 싶은 충동을 상쇄하던 그녀는 긴장으로 목이 마르건 찰나에 남자가 건네는 음료수를 받아마셨다. 시원하게 갈증이 풀리면서 조금은 초조해져 있던 마음이 가라앉았고, 그걸로 긴장이 풀린 것인지 그녀는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못하고 잠들었다.



눈을 떴을 때 그녀는 하얀 방 안의 침대 위에 있었다. 옷은 어느사이엔가 하늘거리는 종류의 옷으로 바뀌어있었다. 어리둥절해하면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발목 근처에서 무언가가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시선을 내렸다. 깨끗한 은색으로 빛나는 체인이 침대 아랫쪽 기둥에서부터 시작해 그녀의 발목으로 이어져있었다. 행여나 그 족쇄에 상처받지 않도록 부드러운 천으로 싸여진 족쇄를 바라보던 그녀가 손을 뻗어 그것을 만지는 것과 동시에 남자가 들어왔다.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그는 우선 여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많이 놀랐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우선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남자를 본 시점에서 마음은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으니까. 그러자 남자는 기쁜 듯이 웃었다. 그리고는 우선 그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사과했다. 그녀는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남자는 고마워하며 그때 자신이 왜 그녀를 만나지 못했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었고, 그 일을 준비하기 위해선 꼭 해둬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고 그때문에 그만 그녀를 소홀히 하고말았다. 하지만 이제 앞으로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ㅡ라고 말하며 남자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당황하며 그런건 용서해줄테니 이제 그만 고개를 들어달라고 말했다. 


그 말에 따라 얼굴을 든 남자는 이번에는 살짝 장난끼가 어린 얼굴로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는 어떤 리모콘을 꺼내들고는 잘 보라는 듯이 주변을 손으로 가리키며 살짝 버튼을 눌렀다. 무미건조한 기계음과 함께 여자의 머리높이쯤에 있는 하얀 방의 벽 일부분이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무언가가 주루륵 나열되어있었고,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려 벽에서 눈을 떼지않던 그녀는 그 안에 있는 것을 보고 숨을 멈췄다.


그 안에는 거대한 포르말린 병에 담긴 사람의 머리가 나열되어있었다.

그녀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남자가 말했다. 처음 본 순간 여자에게 반했고, 그녀에 대한 많은 것을 알고싶어졌다고. 그래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걸로는 부족했고, 그녀의 번호와 이야기를 하면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그녀에 대한 정보를 있는대로 얻어냈다고. 그런데 그 도중에 그녀의 주변에 쓸데없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질투심이 일었고 그 질투심은 날이 갈수록 강해져 도저히 감출 수 없는 것이 되고말았다. 그리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그녀가 자신의 데이트 대신 사내 여행에 따라갔을 때였다. 자신이 없는 곳에서 다른 이들과 지내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던 그는 결국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하나의 결심을 굳혔다.


그 결과가 눈 앞의 풍경이었다.

그녀는 할 말을 잊은 채 그들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회사의 여선배들을 보았다.

회사의 상사를 보았다.

어머니를 보았다.

아버지를 보았다.


여자는 이걸 정말로 당신이 한 일이냐고 물었다. 남자는 모조리 자신이 한 짓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기분을 맛보며 투명한 유리 너머를 응시했다.

 

거기에는.


자신을 괴롭히던 회사의 여선배들이 있었다.

자신에게 자꾸만 추근대던 상사가 있었다.

자신을 돈벌어오는 기계로 보던 저속한 어머니가 있었다.

자신의 몸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눈물마저 혓바닥으로 빨아먹던 아버지가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슬픔의 눈물은 결코 아니었다.

그 너머에는, 자신이 죽길 바랬던 인물들이 모조리 있다.

…슬퍼할 이유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은 너무 기뻐도 눈물을 흘리는 법이니까.


명백한 자신의 적이었지만 그녀 홀로는 어떻게 할 수 조차 없었던 자들이 이리도 무력하게 머리를 빼앗긴 채 한데 나열되어있다. 그 사실에 희열과 기쁨과 감동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벅참을  느끼며, 그녀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눈가에 맺힌 눈물 때문에 그가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마음조차 방해받을 순 없었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당신만을 사랑할게요."

"당신도 나만을 사랑해줄거죠?"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울었다. 울면서 웃음지었다. 자신이 하려던 말을 먼저 빼앗기고 말았다며 웃었다. 웃으면서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에게 안긴 그녀도 웃었다. 눈물을 채 닦아내지도 못한 채 그저 자신을 안아주는 남자에게 매달렸다. 자신의 적을 모두 없애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그녀의 아군을 향해 무한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윽고 그녀를 껴안고있던 남자가 그녀의 귓가에 살며시 속삭였다.


"그거 알아요?"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알아요.

여자는 그렇게 대답하며 그에게 키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