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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로그/EOE(2016)

어디까지 내려가 봤습니까? 어디까지 발을 뻗어 봤습니까?

"스나이퍼가 가져야 할 필수 능력은 뭘까. 빠른 손놀림? 정확한 눈썰미?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제일 중요한 건 매복능력이야. 주위에 녹아들어 숨을 죽이다 타겟이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방아쇠를 당긴 뒤 빠르게 빠져나오는 능력."

"이게 없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헛거야. 정면에서 맞붙지않고 멀리서 총 쏘고 사라지는 스나이퍼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만큼 다른 놈들보다 심한 원망을 받거든. 총알이 맞았다고 우쭐해서 어줍잖은 흔적이라도 남겼다간 땅끝까지 추적당해서 산채로 해부돼."

"적국에 잡힌 여자 스나이퍼의 시신에서 군장 2개 분량의 물건이 나왔다는 얘기는 술자리 농담이 아니라고. 아무튼,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그 녀석은 뛰어나지. 누구와 어울려 무엇을 하든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인상을 남기지 않고 냄새조차 묻혀오지 않아."

"그 이름도 보나마나 가명이겠지. 웃기는건 방아쇠 당겨서 사람 팔다리는 물론 머리통도 쏴날리는 자식이 거리에선 노래나 만드는 작곡가 지망생으로 통한다는 거야. 전에 왜 그런 짓을 하냐고 물어봤다니 뭐라는 줄 알아? 그냥 그렇게 지내는게 좋대. 미쳤지."

"...뭐, 잡담은 이쯤하고, 물건이나 볼까. 말한대로 잘 준비해왔지? 좋아, 우선 이쪽부터 먼저 확인하지. ...흠, 확실하군. 대금은 안에 들어있다. 비밀번호는 1731..."

시계가 일곱시 오분을 가리켰다. 코소테는 조준경 너머로 보이는 상대의 입술을 읽는 것을 멈추고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콤마 몇초의 시간이 지난 뒤 남자의 얼굴이 날아갔다. 그대로 각도를 움직여 상대방의 가슴을 저격하자 붉은 구멍이 선명하게 뚫렸다. 

머리에 비해 면적이 큰 몸통은 비교적 노리기가 쉬운 편이다. 버둥거리며 쓰러지는 몸에 세번째 탄환을 박아넣고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자리에 깔고있던 천을 걷어올리고 입고 있던 우비를 벗었다. 부분별로 분해한 총을 가방 안에 넣었을 무렵에는 너른 옥상에 빗줄기가 하나 둘씩 떨어졌다. 코소테는 잠깐 하늘을 쳐다보고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중간에 마주친 노파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벌써 내려와?" 
"비가 내리네요. 죄송해요! 노래는 오늘 안에 완성해서 드리고 싶었는데." 
"됐어. 영감이란건 원래 잘 안오는거야. 비 그칠 때까지 따뜻한거나 마실래?"
"앗, 그럼 전 코코아로."
"넉살좋긴."

노파는 한숨을 폭 내쉬었으나 그리 기분 나빠보이진 않았다. 그 사이 주머니 속의 핸드폰으로 빠르게 메세지를 쳐보낸 코소테는 아무 일 없었다는 것 마냥 등에 맨 기타 케이스를 추스리곤 웃었다.

비는 잘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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