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뮤니티 로그/단간론파 리턴즈(2015)

02. 6분간.

쿠루루의 뒤를 잇는 두 번째 시신이자 료타에 이은 세 번째 죽음이었다. 요 며칠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머리 속에 마구잡이로 부어 넣어진 현기증이 모래처럼 버석거렸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 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같은 학교에 입학한 친구였다. 그랬던 이가 지금, 피범벅이 되어 교실에 쓰러져있다. 요사메는 저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잠들듯 쓰러져있어 죽음을 실감하기 어려웠던 쿠루루와 달리 카시와자키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확연했다. 사방에 튀어있는 피. 바닥으로 튕겨나간 안경. 벌어진 상처 자국과 미처 감기지 못한 눈. 입가를 타고 흘러내린 핏줄기. 교실에 가득 고여 있던 비릿한 냄새. 그건 이전에 있었던 일처럼 우연한 사고나 불운 같은 게 겹쳐진 것이 아니라 명백히 타인의 의사가 개입된 죽음이었다.

무릎 아래쪽에서부터 기운이 쭉 빨려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가기 위한 살인이었을까.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그 곰이 하루마다 2개씩 내보냈던 극장은 이 살인에 어떤 영향을 미친 걸까. 그런 생각보다 더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 것은 그 자신이 취했던 행동이 결국 아무것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모두와 함께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교류한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건만.

어쩌면 처음부터 무모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요사메는 사람을 믿고 싶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시와자키는 이 안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 죽었고 얼마 뒤에는 그들 모두가 재판을 벌여 이번 사건의 범인을 찾아야 한다. 그는 범인을 지목하는 패널이 번뜩이던 순간을 떠올리다 눈을 감아버렸다.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할 거면 확실하게 해.)

(막연해. 흐리멍텅 하다고. 제대로 생각은 하고 있는 거야? 자기 혼자 많은 걸 생각하는 것처럼  입다물고 있어 봤자 소용없어. 난 오빠처럼 바보가 아니니까 훤히 알 수 있다고. 정말이지 오빠는 미련하고 멍청한 바보인데다 자기 주제도 모르는-)

(-인간 쓰레기야.)

과거의 목소리는 잘 벼려진 칼처럼 날카롭게 귓가를 스쳤다. 그 감각이 오히려 수많은 생각으로 어지럽던 머리 속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천천히 눈을 뜬 요사메는 녹슨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내쉰 뒤 죽은 이후로도 멍하니 뜨여있는 카시와자키의 눈을 감겨주었다. 손의 떨림은 조금 가라앉았으나 슬픔은 여전히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고 몸의 한기도 가시지 않았다. 현기증에 이르러선 뒷목이 뻐근할 정도였다.

그래도 지금은 움직여야 했다.

요사메는 작게 사과의 말을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