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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로그/단간론파 리턴즈(2015)

01.잃어버린 균형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라나가타니의 방은 그의 방을 나가 복도를 빙 둘러가면 나왔다. 도면상으로 보면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마주대고 있는 위치였다. 죽은 그녀의 시체가 질질 끌려 방에 감춰지는 동안, 요사메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등 뒤로 오한이 느껴진다던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새벽에 습격당했다던 다이마츠 방문 앞에 얼마 안되는 위문품을 가져다 놓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 뒤로 침대에 누우면 몸이 뒤로 기우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시체, 누군가의 죽음이 등 뒤에 있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뒤로 기울어가는 의식은 이윽고 바다 위의 조각배처럼 완전히 뒤집혀 새까만 의심의 공간에 그를 가두었다.

이 안에.
범인이 있어.

부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들을 제외한 타인의 존재. 혹은 모노쿠마의 직접적인 개입. 하지만 이 공간은 그들을 제외한 다른 누군가가 몸을 숨기고 있기에는 너무 협소했고 그녀의 가느다란 목에 남은 손자국은 명백한 인간의 것이었다. 범인은 이 안에, 그가 신뢰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있었다.

허나 요사메에게는 다들 선한 이였다. 
도저히 그들 안에 타인에게 살의를 품은 이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범인이 누구든지 간에, 분명 모노쿠마가 조작한 영상에 속아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 흔들린 마음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만들었으리라. 결국 모노쿠마의 농간이, 사악한 흉계가 끼어들어 이 비극을 불러일으켰다.  무거운 마음으로 재판에 임하게 된 그 순간까지도 그는 그렇게 믿고있었다.

그리고 재판이 끝났다.

누구도 죽일 생각 따위는 없었던 새벽.
무대에 오른 것은 소년과 소녀.
갈증과 오렌지색 주스. 새하얀 가루.
불운은 겹치고 겹쳐, 화려한 꽃이 피었다.

누가 감히 그 꽃을 기뻐하는가.
누가 감히 그 꽃에 물을 주었는가.

토해낸 말은 속절없이 사라졌다. 눈 앞에서 사라진 생명의 무게는 미치도록 무거웠다. 자백의 순간부터 시작된 두통은 오래된 고문기구처럼 그의 머리를 조여댔다. 그리고 생전과 달리 묘한 기계음이 섞여들리는, 되살아난 죽은 이들의 목소리... 

이제 그는 등을 대고 마주눕던 이와 왼편에서 잠들던 이를 잃었다. 사라진 생명의 무게 때문에 균형을 잃어버린 의식은 침대에 누운 뒤로도 날개 뜯긴 잠자리마냥 휘청였다. 어슴푸레한 어둠은 분명 느릿한 시계초침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지겠지. 

그 어둠을 응시하며, 그는 조용히 결심했다.

앞으로는 누구도 죽어선 안된다. 모노쿠마의 술수에 넘어가는 일도 있어선 안된다. 모두와 함께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교류해야한다. 그렇게 한다면, 이런 무참한 비극은 막을 수 있으리라.

밤은 천천히 깊어진다.
그는 모래알같은 생각을 오랫동안 매만졌다.

조금 가라앉았던 두통이 천천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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