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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세포신곡

[루이X하루]한밤중에 숨을 죽이고 당신을 찾아

트친 실버님(@ silver01125)과 '한밤중의 통화' 소재로 연성교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이 한밤중에 눈을 뜨는 일은 특별하지 않다. 그 이유가 소음이나 악몽, 생리현상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토 하루키가 그 한밤중에 눈을 뜬 것은 그러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물리적이고 확실한 무언가가 아토 하루키의 귓가를 때리고 있었다.

 

목구멍에서 제대로 발성되지 않은 한숨이 멋대로 꿈틀꿈틀 기어나온다. 혼몽한 의식을 헤치며 겨우겨우 눈을 뜨면 협탁 옆 작은 테이블에서 핸드폰이 반짝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알람 맞춰뒀던가. 근데 알람이라기엔 평소보다 몸이 무거운데. 몇 번의 헛손질 끝에 핸드폰을 잡고 가까스로 눈앞까지 가져와 발신인을 확인한다. 심플한 배경화면에 간결한 글자가 떠올라있었다.

 

「오토와 루이」

 

루이? 발신인을 확인한 순간에 잠기운이 달아난다. 화면에 같이 표시된 시계는 새벽 3시를 조금 지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루키는 그 이상 생각하거나 판단하기를 멈추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약간의 정적이 지나고 화면이 전환되더니 액정 상단에 작은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00:01

 

“여보세요, 루이?”

“…하루키?”

 

자기가 전화를 걸어놓고 의외라는 이 어투는 뭐람. 한 마디 건네려던 하루키가 몇 번 기침을 한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목이 말라있었던 탓이다. 몇 번 기침을 거듭하다 핸드폰을 다시 귀에 가져다대면 다소 당황한 기색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루키, 괜찮은가?”

“어, 괜찮아. 그냥 코가 간지러워서.”

“정말인가?”

“정말이야. 그보다 무슨 일이야? 이런 시간에 전화를 다하고.”

 

본래 오토와 루이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그런 사람이 새벽 3시에 전화를 거는 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기이한 일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오토와 루이는 하루키에게 굳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렇다면 그에 준하는 어떤 이유가 있으리란 것이 그의 연인인 아토 하루키의 판단이었다.

 

“혹시, 연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졌어?”

“…….”

 

어라, 혹시 정답인가? 아토 하루키의 뇌에 스며있던 잠기운이 그 생각 하나에 싹 달아난다. 평소에 그리 감정표현을 크게 하지 않는 오토와 루이가 굳게 입을 다무는 때가 있다면 그건 불시에 제 감정을 습격당했을 때뿐이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오토와 루이가 아토 하루키에게 기습을 당했다. (적어도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의외의 타이밍이었지만 이걸 놓칠 수는 없었다.

 

“혹시 진짜야?”

“아니… 아니다. 그 정도로 너에게 폭거를 행하지는 않아.”

“폭거라니.”

 

말이 거창하네.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아무래도 이 갑작스런 연락에는 루이 나름의 이유와 해명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무슨 일인데. 혹시 내가 나오는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거야? 이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상황을 적당히 골라보면 전화기 너머에서 살짝 앓는 소리가 들렸다.

 

“실은, 네가 죽었다는 꿈을 꿨다.”

“우와, 엄청 뒷맛 안 좋은 꿈이네.”

“…….”

“루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네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멀쩡해. 건강하다고. 오늘, 아니지. 어제도 만났잖아.”

“………….”

“루이?”

“…미안하다.”

 

목소리는 무겁고, 찢어질 것 같고,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다. 아토 하루키는 아까와는 다른 벡터로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을 느끼며 급하게 옷을 찾기 시작했다. 루이, 왜 그래? 괜찮아? 무슨 일 있어? 내가 지금 그쪽으로 갈 테니까….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말이 핸드폰으로 흘러들어간다. 통화시간은 이제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니, 오지 않아도 된다. 그러지 않아도 돼. 그냥 네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정말 괜찮은거야? 루이는 이상한 데에서 무리하니까 걱정이라고.”

“남말하긴.”

“남말하긴!”

 

똑같은 말로 반박하면 저 너머에서 짧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토 하루키는 그 웃음소리가 어쩐지 아득할 정도로 멀다고 감각했다. 마치 물결 너머의 누군가를 바라보는 듯한, 끊어진 다리 너머의 그리운 사람을 보는 듯한.

 

“루이, 괜찮은거 맞지?”

“네가 무사하다면 나는 그걸로도 충분하다.”

 

묘하게 말이 이어지지 않는 기분이 든다. 아토 하루키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에 머리를 헝클어 뜨린다. 그 잠깐의 침묵 사이에서 다시 전화기 너머의 상대방이 말을 이었다.

 

“가끔 악몽을 꾼다.”

“가끔?”

“네가 이미 죽어서 없고, 나는 어찌할 바도 없이 남은 삶을 살아야 하는 꿈.”

“이상한 꿈이네. 잊어버려.”

“그렇지. 잊어버려야지. 그런데 잊을 수가 없다. 직장에 가면 네 자리는 언제나 비어있고 네게 전화를 걸어도 걸리지 않고 네 집으로 가봐도 아무도 나오지 않고.”

“그건.”

 

꿈 이야기지? 라고 묻고싶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이 너머는 어디로 이어져 있는 걸까.

 

“하루키.”

“응.”

“내 마음을 받아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행복하게, 무사히 지내다오.”

“…뭘 그렇게.”

 

남 일처럼 말하고 있는거야. 너는 내 연인이잖아. 왜 그렇게 먼 타인을 보듯이 얘기하는 거야. 그렇게 이야기하려는 입술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전화기 너머에서 빗소리가 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 이곳에는 비 한 줄기 내리지 않는데. 하늘이 너무 맑아서 달빛에 그림자가 질 지경인데.

 

“루이, 나도 한 마디만 할게.”

“뭐지?”

“내가 죽은 건 네 탓 아냐. 자책하지 마.”

 

짧은 웃음소리. 그러나 행복한 기색은 아니다. 하루키는 이를 조금 악물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한다.

 

“알겠어?”

“눈치챈건가.”

“폼으로 탐정 하는게 아니거든.”

“그래…. 도시 괴담도 한번쯤은 해볼 가치가 있군.”

“…….”

 

차마, 그쪽의 나는 정말 죽은거냐고 캐물을 마음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이건 루이가 공들여 짠 장난이고 아침에 다시 눈을 뜨고 보면 트릭이 훤히 보이는 류의 속임수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설령 그렇다해도 지금 자신과 이야기하는 사람은.

 

오토와 루이다.

 

“잠을 깨워서 미안하다. 쉬어라, 하루키.”

“잠시만, 루이.”

“왜 그러지?”

“……사랑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제대로 잠은 자는 거야? 끼니는 챙기고 있어? 하고픈 말은 많은데 어째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뻔하디 뻔한 말이다. 헌데 그걸로도 충분했던 건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오토와 루이는 짧게 웃었다. 멀고 아득한 소리. 그래도 어딘가, 중심을 잡은 듯한 울림.

 

“나도 사랑한다.”

 

그게 한도라는 것 마냥 전화가 끊어진다. 다시 쳐다본 액정에는 통화 종료 알림마저 떠있지 않았다.

 

*

 

다음 날, 아토 하루키는 고집을 부려서 오토와 루이의 핸드폰을 가져가 통화기록을 확인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혹은 너무나 기이하게도) 지난 새벽 루이가 자신과 통화를 나눈 내역은 없었다. 하루키는 간밤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말해줄까 하다가, 가끔은 비밀을 품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에 입을 다문다.

 

그 이후로 한밤중에 루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