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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크로스 오버

[쓰르라미x리본]쓰르라미 울적에~復活~

다메.

그것은 소년의 별명이었다.

공부도 못하고, 체육은 완전히 잼병이고, 사교성이라고는 완전히 제로. 불량아들은 물론 일반아이들에게서도 조소를 사는 소년에게 붙여진 비참한 별명.


그래도 다메라는 별명뒤에 이름이 붙어있었던 중학교 1학년때에는 그나마 나은 형편이었다. 시간이 지나 소년이 2학년으로 진급했을 때에는 소년이 몰래 짝사랑하던 소녀에게 멋진 남자친구가 생겼고 -소년도 잘 알고있는 야구부 학생이었다- 소년이 그에 좌절하고있는 사이 아이들은 서서히 소년을 '다메'라고만 부르기 시작했다.


"이 학교에 '다메'라고 불릴 만한 녀석은 한명밖에 없잖아?"

그것이 이유였고, 누구나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그 소년조차도 납득했다.


그리고 소년은 다른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그저 '다메'로만 기억된다. 


ㅡ즉 불량아들의 심부름꾼.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 학생들의 비웃음거리. 싸구려 동정을 받는 어릿광대. 골치아픈 문제를 떠맡길 수 있는 쓰레기통. 선생들의 고민거리. 아무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왕따. 보충수업기간의 단골. 공기와도 같은 존재. 교실 구석에 기대어놓은 청소용 마대자루 같은 존재ㅡ.


…아아,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아니. 하지만, 어쩌면, 아직 늦지않았을런지도 몰라….


후회와 자기혐오, 어두운 충동이 두꺼운 이끼처럼 촘촘히 쌓이고 쌓여 마침내 보잘것없는 미련과 미래에의 작은 희망을 완전히 압도해버렸을 무렵, 소년은ㅡ


….

…….

………….

……………….



"…츠나, 시골로 이사갈까?"

어머니의 말을 듣고, 소년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붕대가 감긴 팔뚝 아래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


어머니가 고르고 고른 마을은, 나미모리에서부터 차를 타고 꼬박 몇시간을 달린 다음에야 겨우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 시골에 있는 마을이었다.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거대한 산의 형태를 바라보며, 소년은 멍하니 어머니의 말을 흘려들었다.


"…거기가 말야, 엄청 시골이긴해도 사람들이 마음씨가 엄청 좋다는구나-."

"헤에……."

"게다가 츠나와 비슷한 또래도 세 명이나 있대!! 분명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거야!!"

"……."


친구.

친구?


싫은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몸 안에 드라이 아이스가 통째로 부어넣어진 듯한 싸늘함과 경직감이 동시에 전해져, 소년은 느슨하게 풀어져있던 주먹을 꽉 쥐었다. 친구라니, 그런거 필요없어. 생기지도 않을 텐데 뭘. 난 아무하고도 얘기 안 할거야. 얘기 안 할거라고. 어차피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을테니까.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내뱉을 수는 없었기에, 소년은 그저 음료수를 들이키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야에 마을 이름이 적힌 팻말이 들어왔다.


[히나미자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말없이 마시던 캔을 던진다.

캔은 팻말에 부딪치기는 커녕 근처의 풀숲에 떨어지지도 못했다.


'…응, 나는 어차피 이 정도밖에 안되니까."

울 것 같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소년은 창 밖으로 캔을 버리면 안 됀다는 잔소리를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차의 진동과 어머니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졸음은 의외로 빨리 몰려왔다.


……….

…………….



"…츠나."

"츠나, 일어나. 도착했어."

"우웅……."

언제 어느때든지간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참 고역이다. 그것도 억지로 깨어나는 경우라면 더더욱. 

간신히 들어올리긴 했지만 마치 강철같은 무게로 다시 감기려드는 눈꺼풀을 거칠게 비비며, 소년은 자동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내려섰다. 차의 내부에 비해선 차가운 공기가 단숨에 뺨에 달라붙어 몸에 들러붙어있던 수마가 단숨에 떨어져나갔다. 덕분에 어느정도 제정신을 차리고 오랫동안 차에 갇혀있느라 뻐근해진 몸으로 길게 기지개를 펴고, 소년은 자신이 앞으로 살게 될 마을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히나미자와…."


때마침 석양이 내려 마을은 주홍빛으로 물들어있었다. 분명 나미모리에서도 숱하게 봐왔던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감정들로 가슴 속이 꽉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소년은 산의 능선을 타고 마을로 흘러내리는 따스한 빛깔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얼마나 빠져있었는가 하면 분명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을 어머니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을 정도로. 그렇게 한창 노을을 바라보던 소년의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닿았고, 다른 누군가의 접근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년은 흠칫 몸을 떨며 순식간에 몸을 뒤로 돌렸다.


등 뒤에 서있던 것은 소년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또다른 소년이었다. …이상하게도 얼굴에는 기묘한 낙서가 되어있다. 누군가에게 강제로 당하기라도 할걸까. 하지만 그런것치고는 표정이 밝았다. 그리고 목소리도.


"안녕! 이번에 이사왔지?"

"아…."

소년이 뭐라고 대답할 사이도 없이 말이 폭포수처럼 이어졌다.


"여긴 엄청 시골이라 아마 처음에는 불편할거야. 나도 처음에는 그랬거든. 하지만 금방 익숙해질거야. 무엇보다 여기에는 학원이라던가 하는 것도 없으니까 엄청 편하다고? 게다가 공기도 맑고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 인심도 좋아! 시간이 지나면 도시보다 여기가 훨씬 마음에 들게 될거라고 이 내가 보장하지!!"

"………아, 응………."

떨떠름한 반응에 자신이 너무 일방적으로 떠들었다고 느낀 것인지, 소년이 쑥쓰러운 표정을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미안해. 나 이후의 새로운 전학생은 처음이라서 말야…."

"그, 그래…."

아무래도 좋으니까 이제 슬슬 가주면 좋을텐데. 나랑 얘기해봤자 재미없다고.

사교성이라고는 조금도 배어있지 않은 생각을 하며 소년이 손을 꼼지락거리는 사이, 갑자기 그 눈앞에 손이 하나 내밀어졌다.


"서두르다 보니 통성명도 안했네. 내 이름은 마에바라 케이이치. 케이이치라고 불러도 좋아!!"

말을 듣고 그 손의 용도를 깨닫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아… 나는 다- 가 아니라!!!"

다메. 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뻔 했다.

갑작스런 고함에 눈앞의 소년 -마에바라 케이이치가 놀란 표정을 짓고, 소년은 이름과 별명조차 구분치 못하는 자기자신을 저주하며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사, 사와다 츠나요시…라고 해."

"그래? 멋진 이름이네."

그렇게 말하며, 케이이치는 츠나요시의 손을 붙잡아 아래위로 흔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갑작스런 악수에 당황한 소년은 케이이치의 칭찬에도 별다른 감사의 반응을 보이지 못한 채 그저 뜨듯미지근하게 고개만을 끄덕였고, 잠시 후 손을 놓은 케이이치는 집이 근처니까 내일 아침 같이 등교하자는 말을 하며 소년의 어깨를 다시 한 번 몇번 두드린 다음 아마도 집이 그쪽에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방향을 향해 뛰어갔다. 케이이치와 악수를 하던 자세 그대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소년은 길 위를 달려가던 케이이치가 갑자기 멈춰서서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리는 것을 보고, 혹시 뭔가를 떨어뜨렸나 싶어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케이이치가 멈춰선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츠나요시!!

                  히나미자와에 온 걸 환영해!"


…….

………….

……………….

……………………아, 아.



츠나요시를 향해 몇번 크게 손을 흔들어주고, 케이이치는 이번에야말로 집을 향해 사라졌다. 멍하니 서있던 츠나요시의 등 뒤로 걸어온 나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친구가 생겼구나."

츠나는 악수를 나누었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응."

손에 남아있는 온기만큼의 목소리로 말하고, 츠나는 손을 그러쥐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