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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로그/제왕의 별 3기(2017)

[19세]이미 알고있는 이야기들이 소용돌이친다



마르, 나다.

지금은 어디에 있냐? ...다우리카의 아르크. 흐음. 그 전에는 락테아라고 했던가. 우연찮게 세계 지도를 구할 일이 생겨서 말이지, 심심풀이로 지금까지 네가 다녔다는 나라를 점으로 찍어서 선으로 연결해보고 있는데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 빚쟁이도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도망다니지는 않을거다. 여행을 다니는 거니까 당연한 거라고? 하여간에 입만 살았구나.

...마르, 그거 아냐? 고등교육기관의 재학기간은 3년이야. 그 기간이 지나면 상급 교육기관으로 진학할지 지금까지 배운 것을 기반으로 사회에서 일할 지를 선택하지. 너도 알겠지만 나는 전자를 선택했다. 처음부터 의사가 되려고 시작한 공부고, 그게 얼마나 험난한 길이던 목표지점까지는 달성하고 말겠다고 결심했으니까. 집에 얼마나 부담이 가던, 내가 얼마나 절망하던 미친듯이 발버둥쳐서 나아가겠다. 그럴 생각으로 왔다.

너는 어떻냐.

그냥 궁금할 뿐이다. 3년 전에 네가 느닷없이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나는 내륙에 있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어. 그마저도 학업에 열중하다보니 어느 순간엔 네가 섬을 떠나 있었지. 그게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날은 더럽게 맑았던 걸로 기억한다.

오늘도 날이 맑다. 바람이 잘 불어. 이런 날이면 너와 아버지가 바닷가에서 연을 날리고 있었지. 언젠가 네가 '아빠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하늘에서 가장 높은 연을 날리고 있으면 그게 나야'라고 말했던 적도 있는데, 기억 나냐? ...모르는 척 하지마. 넌 옛날부터 묘한 부분에서 애늙은이같은 면이 있었어. 까먹었을리가 없지. 게다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아버지와 아예 약속까지 했다며? 어디에 가든 높이 연을 띄워올리겠다고.

빼지 말고 말해봐. 진짜 그렇게 하고있냐? 어디서든? 빼놓지 않고?

그럼 너는 아버지를 위해서 여행을 떠난 셈이군.
자기 가족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에게 기억되기 위해서.

물론 부모를 존경하고 공경하는 마음은 나쁘지 않아. 덕목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자식이 자기 인생을 통째로 부모에게 처박아버리는건 바닥 없는 늪에 머리부터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아니면 너는 그냥 아버지에게만 기억되면 그걸로 족한 거냐? 이제는 이야기만을 남기고 사라진 그 '마법의 종족'들처럼, 아버지에게 '옛 종족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나의 아들'이라고 입력만 된다면 그걸로 상관없는 거야?

자기 자신은 어딘가 구석에 처박아둔 채로?

...

......

그래, 그런 식으로 대답할 줄 알았다. 너는 낙관적인 녀석이야. 하지만 그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지...

분명하게 기억해둬라.
부모란, 대부분의 경우 자식보다 오래 살지 못해.

*

"응, 알고있어."

그렇게 대답하는 맨발에 파도가 하얗게 휘감겼다가, 발 밑을 움푹 꺼뜨리며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