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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로그/트라우메라이 2기(2017)

꿈, 두 발짝.


"aufflamme."

발음은 짧고 명료했다. 허공에 나타난 세 덩어리의 불꽃은 이내 날개 셋의 형태를 갖추고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적의를 닮은 일렁거림이 어둑한 방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Schießen."

처음 한 마리는 빠른 소리로 날아와 근처에 있던 꽃병을 산산조각냈다. 저건 어머니가 예전에 지나가던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걸 샀다며 두고두고 자랑했었던 물건일텐데. 생각하는 사이 병에 꽂혀있던 보랏빛 꽃이 마탄의 불꽃에 순식간에 휘감겨 그을음만을 남겼다.

두번째는 머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벽에 날아들었다. 벽지가 타들어가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으나 그 이상 불꽃이 번져나가는 기색은 없었다. 표적은 이 집이나 꽃병 따위가 아니라는 것일테지. 거기서 시선을 앞으로 향하자 아직 허공에 남아있는 한 마리가 세 개의 날개를 날카롭게 빛내며 날아들었다.

셋.

마음 속으로 세는 것과 동시에 오른쪽 눈이.


=

눈을 떴을 때는 시야가 묘하게 좁아져있었다. 멍하니 손을 뻗어 한쪽 얼굴을 더듬자 묘하게 둔한 느낌과 함께 거친 감촉이 전해져왔다. 아마 불에 짓무르는게 아니라 아예 타올라 버렸을테지. 상처가 보기에도 끔찍한 형태가 되어있으리란건 손끝에 묻어난 티끌들을 보고도 알 수 있었다.

탄내 나는 기침 한 번.

"...금기, 걸려있는거 아니었어?"

쏜 상대는 시야의 비스듬한 맞은편, 계단 언저리에 아무렇게나 앉아있다. 보기에는 침착해 보이지만 아무래도 의자에 앉을 생각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살갗을 더듬던 와중에 틈이 느껴져 손가락을 집어넣어보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닿는다. 그곳이 안와라는 걸 깨닫고 슬그머니 손을 빼는 사이 질문 하나가 들렸다.

"자신이 슈메터링가의 인간이라 생각해?"

메말라 갈라진 사이에서 헛웃음이 맴도는 듯한 목소리. 그러고보면 자신은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만들어지진 않았다. 조금은 감탄하는 사이 목소리가 고장난 자전거 바퀴살 돌아가듯 이어졌다. 

"그럴 리가 없지. 나조차 나를 그렇게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네가 가능할 리가 없어. 가능하다고 하면 그것만큼 웃기는 일도 없을걸."

마른 눈꺼풀을 깜박이고 있자니 수그러져있는 것 같던 통증이 서서히 피부를 타고 기어오른다. 의식을 잃기 직전에 고통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던 모양인지 왼쪽 눈꼬리와 뺨이 조금 당겼다. 

"너는 그 무엇도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눈가는 다시 볼 것도 없이 퀭하게 가라앉아있을 것이다. 자신과 같으며, 다만 나잇대만이 더 어려보일 그 얼굴은 계단살 사이에 촘촘히 가려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내가 만들었을 뿐이지."

허공에 퍼지는 말을 들으며 바닥에 눌어붙듯 쓰러진 몸을 천천히 일으킨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오른쪽 얼굴에서 시큰하고 따끔거리는 감각이 전해져왔다. 아마 무슨 치료를 받아도 쉬이 지워지지 않겠지. 그 생각은 그리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겁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무엇이 즐겁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은 없었지만.

"그렇다면 아버지라고 불러도 되겠지?"

건너편의 인물이 계단 손잡이를 붙잡고 일어선다. 무슨 정신나간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얼굴이었다.

"인간도 아닌 주제에."
"아버지도 그렇잖아."

말은 꽤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전부터 이렇게 부르고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매끄러운 발음이었다. 아버지라고 불린 쪽은 입을 꾹 다문 채, 잠시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사람이라면 부모라고 불러도 되는거지?"
"다시 말하지만 인간처럼 굴지마. 네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어. 나는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면서 너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거야?"

한탄이 들린다. 죽어버리고 싶어도 스스로 죽을 수가 없는 자의 탄식이다. 거짓을 믿고 진실에 짓눌려,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잃은 자.

"그냥 그렇게 하고 싶을 뿐이야."

한때 사라진 슈메터링이라 불리며 살았던 이의 눈에 서서히 분노가 쌓인다.
그가 만든 호문쿨루스는 반만 남은 얼굴로 그저 가볍게 웃었다.

"아버지, 꽃병은 내가 치울까?"

그리하여 저주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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