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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로그/트라우메라이 2기(2017)

꿈, 한 발짝.


몸이 찢겼다.
착각이었으므로, 눈을 뜰 수 있었다.

시곗바늘이 3시 조금 지난 시간을 가리키며 째깍인다.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아하니 아침의 먹구름이 더 짙어진 모양이었다. 한쪽만 남은 눈은 습기가 날아간 탓인지 조금 뻑뻑하다. 쓰러진 자세 그대로 바닥에 짚어 힘을 준 오른팔에서는 상처가 벌어지는 듯한 환통이 치솟아올랐다. 온몸의 틈새에서 피어오르는 신음을 딱히 참지도 않고 토해낸다. 비틀비틀 일어서던 와중에 한쪽 다리의 힘이 풀려 기껏 일어선 몸이 바닥으로 요란하게 넘어졌다. 습한 공기 속에서 마른 웃음이 터져나왔다.

벽을 긁고 바닥을 밀치다시피 하며 겨우 일어났다. 속에서 꿈틀거리는 구역질을 잠재우기 위해 벽에 한쪽 어깨를 기댄 채 숨을 고른다. 안개 끼인 듯 부옇던 머리가 조금씩 맑아지는 동안 살이 조각나던 고통은 천천히 현실성을 잃어갔다. 저주라는 것은 으레 그런 법이지. 이미 사라져버린 환상을 향해 중얼거리고 걸음을 옮긴다. 아직 다 물러가지 않은 저주가 발 아래에서 깨진 유리조각처럼 바작거렸다.


아버지는 공방에 있었다.

하지만 뭔가를 작업하는 기색은 없다. 오히려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내리고 있어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 모습을 향해 말을 걸어도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번에야말로 몸이 찢겨 죽는 줄 알았다고 농을 건네도 돌아보는 기색조차 없었다. 멀리서 자잘한 빗줄기가 땅으로 흩뿌려지는 소리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공방으로 한 발짝 내딛은 순간 한쪽 발이 뒤엉켜 넘어졌다. 순식간에 뒤집힌 시야 속, 플래시가 터진 것처럼 창문이 환하게 반짝였다. 천둥이 치려는 모양인데.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창문이 또 한 번 빛난다. 분명 앉아있었던 아버지의 그림자는 어느새 곧게 일어나있었다.

천둥소리가 울려퍼지는 방 안은 줄곧 암흑이다. 그리고 아까보다는 거세진 빗줄기가 창가와 지붕을 때릴 무렵, 아버지는 이미 지척에 다가와 가만히 시선을 아래로 던지고 있었다.

웃음이 새어나온다. 아버지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하지 않겠다?"

질문은 몇 번이고 들었던 것이므로 대답 또한 동일했다.

"아티펙트보다 못하네."

적어도 아티펙트는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명치께에 꽂힌 쐐기도 그러했다. 

"누누히, 계속, 질려서 죽어버릴 정도로 말하는 사실이지만."

긴 손가락이 자신의 미간을 똑바로 겨냥한다. 
명치에선 살점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너는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거야."

그러니까 그게 싫은걸.
투정을 닮은 말은 고통 속에서 서서히 짓뭉개졌다.

=

꿈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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