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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세포신곡

[츠바X하루]#매일매일_800자_챌린지(1)

-드레퓌스 츠바이크X아토 하루키

-05.03부터 05.12까지 작성한 츠바하루 800자 연성 10편입니다.

!!세포신곡 본편델씨은자막간까지 스포일러 주의!!


 

1.

 

"애인이 인외면 불편하네요."

"호오."

 

드레퓌스 츠바이크라 통용되는 이는 제 표정으로 의견을 표현할 줄 알고 아토 하루키는 상대의 미간 사이에서 백 마디 말 이상의 정보를 읽어낼 줄 안다. 따라서 다소 성의없다고 느낄 법한 반응은 다른 어휘로 손쉽게 치환되었다. ( 당신 지금 제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 그러거나 말거나 아토 하루키는 들고있는 찻잔을 홀짝거린다.

 

"홍차도 모르고 식물도 모르고, 그런 주제에 기억력은 귀신같고."

"전반적으로 인외랑은 상관없는 사항 같습니다만."

"그런가요?"

 

아토 하루키는 미간 사이에서 정보를 드러내는 법을 알고 드레퓌스 츠바이크는 표정으로 드러나는 의견을 짚어내는 방법을 안다. 3대에 가까운 세월동안 제 이름을 갈아치우며 살아온 남자는 데이터 케이블을 넘어 전해지는 그 시선에 어깨를 움츠렸다.

 

"홍차 선물이 맘에 들지 않았나요?"

"아뇨, 하니앤손스 브랜드를 손수 골라보내주는건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다만."

"다만?"

"…난 딱히 홍차가 필요해서 당신이랑 사귀는게 아니거든요."

 

아토 하루키는 그 말만 남기고 찻잔을 내려놓는다. 드레퓌스 츠바이크는 한손으로 제 턱을 꾹 누른 채 생각에 잠겼다가, 뺨을 한 번 쓸고, 천장을 쳐다본 다음 긴 침음을 내며 눈가를 가렸다. 입가를 가리지 않았기에 평소 굳게 다물려있는 입술이 비죽이 올라가 있는게 보인다.

 

"아토 하루키, 당신…."

"뭐요."

"이렇게 어리광 부리는 타입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나는 엄청난 고집불통인 쪽이랍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머리 회전 빠른 탐정이 바닥에 흰 빵 부스러기를 흘리듯이 유도 질문을 던진다. 쌓인 연륜 탓에 그걸 무시하지도 못하는 자칭 흡혈귀가 그 말들을 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받아먹었다.

 

"정말이지, 레이지가 말한대로 성가신 사람이네요."

"슬슬 귀찮아졌다는 생각이 드나요?"

"글쎄요, 그렇다기 보다는."

 

츠바이크가 자세를 고쳐앉는다. 귀에 걸린 장신구가 흔들리고 뺨에 새겨진 무언가의 흔적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미 눈에 익을 대로 익은 모습을 바라보며 아토 하루키가 말해보려면 말해보라는 듯이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린다. 츠바이크의 시선이 아주 잠깐 그 리듬을 훑었다.

 

"재미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하루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츠바이크는 상대에게 한 번 빙긋 웃어주었다.

 

 

02. 

 

이소이 레이지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아토 하루키에게서는 겨울 냄새가 난다. 공항까지 그를 픽업하러 온 세오도아는 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그를 발견하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머플러를 감고 온 하루키가 그 손짓을 따라 캐리어를 끌고 온다. 그대로 차로 이동하는 동안 세오도아는 레이지의 상태를 이야기해주었다.

 

"가벼운 골절과 타박상이었어. 지금은 거의 다 나아서 무리없이 움직일 수 있는 정도."

"잠입 임무라고 했던가요. 제가 못 보는 곳에서 레이지를 혹사시키는 건 아니겠죠?"

 

조수석에 앉는 아토 하루키의 물음은 차라리 안부 인사에 가깝다. 세오도아는 웃음을 한 번 터뜨리곤 어깨를 움츠렸다. 그럴 리가 없다고 잘라 말할 수 없는게 미안하네. 아무래도 신의 사랑을 쫓다보면 이런저런 일이 생기게 마련이거든. 하루키는 그 말에 화를 내지도 않고 옷을 추스린다. 시동이 걸리는 동안 차 안에 살짝 침묵이 서렸다.

 

"직장은 괜찮아?"

"네, 어차피 이 즈음에 오려고 했으니까요."

"참고로 츠바이크는 사네미츠 네에 있어. 잘됐네."

 

하루키가 세오도아를 바라본다. 검은 장갑을 낀 손이 핸들을 능숙하게 조작했다. 이윽고 헛기침을 한 아토 하루키가 입을 열었다.

 

"세오도아 씨, 분명 저와 츠바이크 씨가 사귀긴 하지만 딱히 그 사람을 만나려는 핑계로 레이지를 이용하는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알아 알아, 농담 좀 해본거야."

"그래도 츠바이크는 좋겠네."

 

차량이 도로로 들어선다. 눈 앞을 지나가는 차량의 행렬에 잠시 눈이 팔려있던 하루키는 세오도아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연인이 만나러 와줘서."

 

 

03.

 

"육식파인가요?"

"어느 쪽인가 하면 인간은 잡식성이라고 하더군요."

"그건 알아요."

 

내가 알고 싶은건 츠바이크 씨가 육식파인가 하는 문제라구요. 아토 하루키는 눈 앞에 놓인 안주 그릇을 살짝 손가락으로 튕긴다. 아토 하루키와 드레퓌스 츠바이크의 식성은 놀라울 정도로 다른 지라 아예 접시를 두 개 따로 쓰고 있는 실정이다. 츠바이크는 제 앞의 맥주캔과 아토 하루키의 와인잔을 번갈아 바라본 다음, 아랑곳하지않는 다는 듯이 캔을 기울인다.

 

"네, 전 고기와 술이 좋습니다. 동양에선 이걸 주지육림이라 하던가요?"

"실제로 있으면 츠바이크 씨는 거기에 눌러살 것 같네요."

"술의 호수에 고기 숲이라니 음주가에게는 최고지요.."

"실제로는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 어휘랍니다."

"상냥한 가르침 삼가 받들도록 하지요."

 

어딜 봐도 장난스런 어조였다. 하루키는 제 접시에 놓인 큐브 치즈의 포장을 돌돌 풀어냈다. 하얀 종이가 슬슬 풀리며 치즈향이 나기 시작한다.

 

"참고로 저는 어느쪽인가 하면 초식파네요."

"그거야 보면 압니다."

"무심하게 말하긴."

 

하루키가 치즈를 쏙 입에 넣는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게 까망베르 치즈라고 해서 고심해서 골라온 거랍니다. 츠바이크는 슬슬 취기가 도는지 옅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꽤 즐겁더군요. 평소에는 관심도 두지 않던 물건을 누군가를 위해서 살펴본다는 감각."

"새로운 경험이 되었죠? 저에게 감사하세요."

"좋네요. 키스라도 해줄까요?"

"이런 부분이 육식파라는 거예요."

 

다만 그 말이 거절을 뜻하지는 않는다. 츠바이크는 웃는 얼굴 그대로 자신에게 오라는 듯이 가볍게 손짓했다. 하루키는 얼마간 저항하는 듯 움직이지 않다가, 마침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04.

 

「그 망할 아버지 아직도 마감 못 했어요?」

 

일본과 이탈리아는 초장거리 연애중인 두 사람은 여건이 내키면 화상통화를 했고 여건이 내키지 않는 경우에는 메일로 소통했다. 마치 옛날 연인들 같네요. 아토 하루키는 언젠가 그런 말을 했고 드레퓌스 츠바이크는 그 문장을 읽고선 피식 웃었다. 그런 로맨틱한 말을 할 줄 알던 하루키도 오늘은 조금 신경질적이다. 아마 아버지인 사네미츠 때문이겠지. 잠시 휴식을 취하러 나온 김에 도착한 메일을 찬찬히 읽어보던 츠바이크의 손가락이 조용히 움직였다.

 

「앞으로 여섯 시간 정도는 더 쥐어짜여야 합니다. 무리하지 말고 일찍 주무세요.」

「느릿느릿 민달팽이 아버지네요」

 

보낸 메일의 내용은 길지 않아서 아토 하루키의 답장도 빠르게 돌아왔다. 아직 잠들지 않은건가. 시계를 보고 일본과의 시차를 계산해보던 츠바이크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계산대로라면 일본은 이미 새벽 2시에 접어들었을 무렵이다. 설마 또 야근이나 철야임무인가요. 츠바이크의 물음에 하루키 답이 돌아온 건 15분 뒤의 일이었다.

 

「둘 다 땡. 잠이 안와서 조금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잠이 줄어들기엔 아직 젊지 않나요?」

「츠바이크 씨에 비하면요.」

 

그 문장을 읽은 츠바이크의 입술이 슬쩍 올라간다. 동시에 사네미츠를 훑어보던 시선에 제동이 걸렸다. 모니터 너머로 자신을 흘끔흘끔 바라보는 시선은 좋게 봐줘도 원고를 전부 완성했다는 질감은 아니다. 츠바이크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왜 그러시죠?"

"아니, 음."

 

키보드를 달칵대는 소리.

 

"너, 그런 표정도 짓는구나 싶어서."

"그야 당연하죠. 연인의 연락이니까."

 

슬쩍 커피를 마시던 사네미츠가 거하게 기침했다. 츠바이크는 아까와는 다른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05.

 

같이 영화를 볼까요. 

 

어느 추운 날에 아토 하루키는 그렇게 제안하고 드레퓌스 츠바이크는 거절할 이유를 찾지 않는다. 아토 하루키의 새로운 집에는 두 세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소파가 있고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몸을 붙여 앉았다. 이윽고 하루키가 리모콘을 조작하여 영화를 재생한다.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일을 재현한 드라마 장르다.

 

이런 걸 좋아하나요?

전 인간관찰이 취미거든요.

 

그건 압니다. 츠바이크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에 자신이 타온 홍차를 홀짝인다. 본래라면 팝콘이나 콜라가 제격일테지만 옆자리의 연인은 대체로 필요 이상의 당분을 섭취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카페인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두 사람의 음료는 각기 다른 형태를 취하거나 오늘 처럼 하루키의 취향에 맞게 조절되기 마련이었다.

 

저도 당신을 참 좋아하나 봅니다.

 

화면 속에서는 앞으로 역사에 위대한 흔적을 남길 이의 어린 시절이 흘러갔다. 하루키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방은 살짝 어두운데 적갈색 눈동자가 마치 보석처럼 빛난다. 츠바이크는 자기가 참 주책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있으니까 영화에 집중하세요.

 

그래서 츠바이크는 영화에 집중했다. 그동안 아토 하루키는 츠바이크의 한 손을 잡은 채 이따금 손가락 끝을 만지작거렸다. 일부러 이러는 건가, 아니면 원래 영화를 볼 때 이러는 타입인건가. 츠바이크는 조금 고민해보다가 이런 생각 자체를 그만두기로 했다. 말마따나 이런걸 물어볼 시간은 영화를 다 본 뒤에도 충분할 테니까.

 

그래서 연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손바닥이 너무 따뜻해져서 살짝 땀이 배일 때까지.

 

 

06. 

 

새벽 2시에서 3시가 넘어갈 무렵, 아토 하루키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오리진이 되었다고 해도 꿈은 꾸는구나, 싶을 뿐이었다. 그게 신경을 긁는 내용이었더는 것은 유감이지만 말이다. 내용을 깔끔하게 잊어버린 것이 오히려 기분을 나쁘게 만들어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 전등을 킨다. 눈부신 빛이 시야를 꽉 메웠다.

 

"연락 온 거 있나…."

 

성가신 꿈자리로부터의 도피가 일거리 확인이라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아무튼 아토 하루키는 침대맡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을 확인한다. 그렇지만 오토와 사무소는 야근을 권장하지도 않거니와 지금은 야근을 하는 것이 사원 학대인 시점이다. 비어있는 메신저와 메일함을 몇 번 둘러보던 아토 하루키는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메일이 츠바이크와 나눈 잡담 메일임을 확인했다.

 

이 사람도 악몽을 꿀까. 아토 하루키는 문득 궁금해한다. 물론 희노애락의 표현이 꽤나 편중되어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일단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으니 꿈 정도는 꾸겠지. 어쩌면 그 꿈이 사나울 때도 있을테지.  그럼 그 사람은 무엇을 생각할까. 그저 꿈자리가 사나웠다고만 생각하고 털어버릴까, 아니면 기분 나빠할까. 

 

상상하는 입꼬리가 조금 풀어진다. 아토 하루키는 날이 밝고 잠이 완전히 깨면 다시 제대로 물어보자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껐다. 파고든 침대는 아까보다는 좀 더 따스하게 느껴지고, 새어나오는 숨결도 조금은 부드럽다. 

 

잠의 물결에 몸이 잠식당하기 전, 아토 하루키는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다. 아마도 지금쯤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 그 무뚝뚝한 남자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르고 있겠지.

 

그럼, 어떻게 메일을 써볼까.

즐거운 상상은 금새 무의식으로 미끄러진다.

 

이번에는 악몽을 꾸지 않았다.

 

 

07.

 

"여름 휴가는 어디가 좋은가요?"

 

때는 연초였고 머그컵을 옆에 두고 있던 아토 하루키는 조금 멍해졌다. 화면 너머에서 츠바이크가 노골적으로 손가락 튕기는 소리를 냈다. 

 

"듣고 있나요? 여름 휴가 말입니다. 일본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탈리아는 빨리 예매해두지 않으면 손해에요."

"제가 이탈리아로 가는게 정해진 건가요?"

"당연하죠. 당신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일본이요."

"어디서 살았어요?"

"일본이요."

"지금 어디서 화상채팅중이죠?"

"…일본 나고야요."

 

츠바이크는 거보라는 얼굴이다. 아토 하루키는 어쩐지 이 남자의 술수에 그대로 굴러떨어지고 싶지 않아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기로 했다.

 

"츠바이크 씨는 어디 출신인데요?"

"독일입니다."

"어디서 살았어요?"

"근 몇 십년간은 이탈리아입니다."

"지금 어디서 화상채팅 중이죠?"

"사정이 있어서 영국입니다."

 

망할! 국제적 오컬트 현상 조사집단의 애인을 사귄 게 잘못이었어! 아토 하루키는 욕설을 숨기지도 않고 일본어 까막눈이지도 않은 츠바이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니까 애인은 신중하게 골랐어야죠. 내가 고백했다지만 열받네. 그런 대화가 오갔다. 

 

"일단 장소만이라도 정해두세요. 바다와 산, 고른다면 어느 쪽인가요?"

"그럼 바다로 할까요."

"이유는?"

"산은 등산이 힘들거든요."

"연약한 연인이군요."

 

이럴 때는 농담으로라도 업고 올라가겠다 정도는 말해주는게 어때요? 하루키의 말에 츠바이크는 보란듯이 못 들은 척을 한다. 이 밉상같으니. 하루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제 심장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것을 느낀다. 아직 여름은 멀었고, 밖에는 쌓인 눈이 남아있는데도.

 

"여름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물어볼 건가요?"

"산타를 믿는다면 고려해보죠."

"진짜 치사해."

 

아직 겨울이다. 여름이 오기까지의 남은 시간이 서서히 담소로 채워지고 있었다.

 

 

08.

 

"입맛이 없어요."

 

어느 정도 반응이 예상된 대답이었고 역시나 츠바이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문제의 발언을 한 장본인인 아토 하루키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당신 어제도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요."

"어제는 정말 피곤했다구요. 오늘은 소화가 좀 느린 것 뿐이에요."

"지금 일본은 저녁이고, 오늘 점심으로 샌드위치만 먹었다고 들었습니다."

"서맥이라서 그래요."

"변명도 좀 성의있게 해주세요."

 

지금 저는 택시를 잡아타고 일본으로 날아갈 수도 없는 처지란 말입니다. 대다수 무채색으로 이루어져있는 남자가 하는 말은 뜻밖에도 조금 걱정이 담겨있는 듯하고 아토 하루키는 저도 모르게 입가를 문지른다. 미묘한 변화를 보이지 않으려는 탐정의 손버릇 같은 것이다. 하지만 화면 너머의 남자는 그런 소소한 속임수에 속아넘어가줄만한 위인이 아니다.

 

"기뻐보이네요."

"눈의 착각 아닐까요?"

"제가 보고싶진 않나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는 얼굴로 아토 하루키가 상대방을 응시한다. 두 사람은 화상채팅에 쓰이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서로의 얼굴을 보고있고 그 화질은 모공까지는 아니더라도 표정까지는 섬세하게 잡아낼 수 있을 정도다. 음질도 마찬가지여서 츠바이크가 뱉는 한숨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눈치가 없는건지 자신에게 박정한 건지."

"또 혼자만 아는 얘기 하지 말아주시겠어요?"

"그럼 달리 말해드리죠."

 

츠바이크가 손을 가볍게 깍지낀다. 크고 거친 손가락이 마주닿는 모습이 어쩐지 눈을 사로잡았다. 아토 하루키가 속에서 일렁대는 감정을 꾹 눌러담는 것과 동시에 그가 입을 열었다.

 

"곁에서 보고싶다는 한 마디만 하면 바로 가겠습니다."

 

바보같은 소리에도 정도가 있지. 아토 하루키는 피식 웃고는 그럴 필요 없다고 대답하려다가, 잠시 입을 다물고, 시선을 빙글 돌리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듯 입을 연다.

 

충분한 대답이었다.

 

 

09. 

 

인터넷이 고장났다. 집에 돌아와서야 네트워크 상태를 확인한 아토 하루키는 약 두 시간 정도 씨름을 거듭하다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늘어졌다. 드레퓌스 츠바이크와 매일같이 화상통화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오늘 당장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폰의 데이터를 사용해서 드레퓌스의 메일로 상황 설명을 보내둔다. 츠바이크가 언제쯤 확인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여간에 네트워크가 복구되기 전까지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하루키는 의자에 늘어진 채 천장을 바라보다 긴 한숨을 쉬었다.

 

본래, 츠바이크와 영상통화를 하지는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지만 두 사람에게 그리 깊은 접점이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민달팽이의 비즈니스 파트너. 처음 박힌 인상은 그리 오랜 시간동안 바뀌지 않았다.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게 된 것은 츠바이크 쪽에서 하루키를 사네미츠 협박의 패로 쓰면서부터 였던가.

 

"그러고보면 시작부터 이용당한 셈인가."

 

영 응답이 없는 네트워크 환경 설정창을 앞에 두고 쓰게 웃는다. 다만 그 교류 안에서 하루키가 먼저 츠바이크에게 연락한 적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레이지와 사네미츠의 상황이 알고 싶어서, 이탈리아는 어떤지 궁금해서, 아버지가 또 일을 친건 아닌지 궁금해서. 

 

작은 계기들이 쌓이다보니 어느새 두 사람은 서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메일함의 알람을 반갑게 열어보게 되었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약 10년 정도. 고백은 서로 간격만 재고 있다가 하루키 쪽에서 먼저. 화상통화를 제안한 것은 츠바이크 쪽에서 먼저.

 

무슨 주고받기냐고 쓰게 웃다가 그만 쉴 준비를 한다. 다음날 아침에 확인한 메일에는 「빨리 고쳐주세요」 라는 짧은 문장이 남아있었다.

 

"솔직하지 못하긴."

 

 

10.

 

"그것 뿐인가요?"

"그것 뿐이냐뇨."

 

간신히 인터넷을 복구해서 화상채팅에 접속했더니 이런 말이다. 그동안 느낀 바를 솔직히 말한 보람도 없게 만드는 남자로군. 아토 하루키는 냉정하게 생각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츠바이크 씨는 무슨 생각했는데요? 설마하니 일도 없어서 편했다고 하진 않겠죠?"

"일이 없어서 편했습니다."

"절교할거에요."

"이별이 아니라 절교?"

"당신은 친구 없어지는 게 더 뼈 아플 것 같으니까."

 

상대는 말이 없었다.

정곡이었나.

 

"그나저나."

"눈에 보일 듯한 화제 돌리기."

"언제 결혼할건지 묻더군요."

"누가요?"

"사네미츠 씨가."

 

이번엔 하루키가 침묵한다. 화면 너머에서 츠바이크가 가볍게 자세를 고쳐 앉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어느 때이던지간에 감정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일전에 사네미츠 씨에게 사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넋이 나가버려서 웃겼는데."

"그러더니 며칠 전에 심각한 얼굴로 저를 부르더니, 결혼 생각은 있는 거냐고."

"…흐음. 그 민달팽이가요."

"물론 전 예스라고 했습니다."

"묻지도 않고?"

"싫어요?"

"그건 아니지만."

 

반지도 못 받았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츠바이크가 낮게 웃었다. 망할, 진짜 목소리만 더럽게 좋다니까. 하루키의 투덜거림은 거의 새침데기의 불평 수준이다.

 

"프로포즈는 어디서 받는게 좋아요?"

"혼자서 얘기 진전시키지 말라고요."

"신혼여행지는 역시 이탈리아로?"

"장난하냐고요. 그리고 난 프랑스가 좋아."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뱉는다. 어딘가에서 본 파리의 풍경에 자신과 츠바이크의 모습을 상상한 것만으로 가슴이 크게 두근거린 건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자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