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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영원한 7일의 도시

[세츠+여휘]잔존율 0. 0034576%

-밤의 수호자 엔딩 약스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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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츠세츠 비상사태야! 

 

뭔데 그래? 

 

전세계에 미지의 바이러스가 퍼졌어! 한 번 걸리면 죽는 병이야! 

 

엥? 

 

하지만 면역자를 연구하면 백신을 얻을 수 있어! 그리고 그 면역자는 바로 나야! 

 

잠깐만, 이 설정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데... 분명 백신을 만들려면 면역자가 죽어야 하던가?

 

그래, 내가 희생하면 많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있지만 반대로 거부하면 수많은 희생자가 나와. 이런 상황에서 내가 살고싶다고 말한다면 세츠는 어떻게 할거야? 

 

느닷없이 너무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거 아냐? 

 

어떻게 할거냐니까?

 

네이네이. 그럼 묻겠는데, 지휘사는 어떻게 해서든 살고싶어? 그 선택으로 인해 모든 이가 죽음을 맞이하고 홀로 남겨진다해도? 

 

...그래. 

 

그렇다면 이뤄줄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망치게 하고, 숨게 하고, 비참한 꼴을 당하더라도 살아가게 할게. 그게 지휘사의 각오라면.

 

그럼 만약 세츠의 가까운 사람이 나를 죽여서라도 낫고 싶다는 소원을 빈다면 어떻게 할거야? 

 

...상황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데... 

 

아냐, 사실 간단해. 나를 죽이면 모두가 행복해지는걸. 모두 나 같은건 금방 잊을거야. 한 사람의 소원쯤이야 무시해도 되잖아. 

 

소원에 경중은 없어. 다 같은 소원이지. 그런 식으로 차이를 두려고 하는 건 안 좋은 버릇이야, 지휘사.

 

흐음... 알았어. 그럼 어떻게 할거야? 

 

응? 

 

응? 이 아니잖아. 어딜 얼버무리려고 들어. 

 

아하하... 실제의 일도 아닌걸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해봤자 손해야. 

 

손해볼래~ 

 

아이고, 이것 참.

 

게다가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뭐... 그건 그렇지만.

 

그럼 단순하게 정리해보자. 한 사람을 죽이는 대신 많은 사람을 살리는 소원과 한 사람을 살리는 대신 많은 사람을 죽이는 소원. 둘 중 하나만 택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래?

 

잔혹한 질문이네.

 

알아.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응.

 

난 죽일 각오보단 살아갈 각오를 고르고 싶어.

 

...그 선택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해도?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잖아. 좀 더 연구를 하다보면 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백신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지도 몰라. 뭣보다...

 

뭣보다?

 

다수를 위해 한 명을 죽인다는 건, 어쩐지 뒷맛이 안 좋잖아.

 

...홀로 죽어도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

 

전~혀.

 

순 제멋대로네.

 

나는 늘 이랬어.

 

그래, 하긴 세츠는 그런 사람이지.

 

그렇지? 그러고보면, 원래는 어떻게 됐었더라?

 

원래?

 

응.

 

원래는 "네가 죽어."

 

째각, 초침이 한 칸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세츠가 눈을 깜빡이곤 눈 앞의 지휘사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래."

 

"어쩌다가?"

"나를 대신해서."

"그렇구나."

 

주위에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다. 빗줄기가 쉼없이 지휘사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꼭 그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츠는 제가 걸친 코트 한쪽을 들어올려 지휘사의 머리 위를 가렸다. 축 젖은 머리카락 아래, 빗물이 빰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유난히도 검었다.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살고 싶었지?"

"용서 못해."

"미안."

"차라리 나와 함께 도망갔더라면."

"하지만 넌 중요한 사람이잖아."

"너는?"

"나야 그냥 신관이고."

 

주먹이 배에 꽂혔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겐 그렇게나 상냥한 주제에 어째서."

"글쎄, 왜일까."

 

비는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너를 살릴 수 있어서 기뻤어."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아직 살 날은 길잖아."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아."

"지휘사?"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아.

 

토막난 말이 파리한 입술 사이로 기어나온다. 세츠는 무심코 손을 뻗어 지휘사를 만지려 했으나 손끝은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일 수 있었는데. 어째서? 굳어버린 세츠 앞에서 지휘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쪽이 아닌, 어딘가 다른 방향을 향해서. 

 

"이제 가봐야 해."

잠깐만.

 

"이번엔 이런 일 없을거야."

기다려.

 

"너도 금방 잊어버릴거고."

가지마.

 

"잘 있어, 세츠."

돌아와!

 

지휘사는 돌아보지 않았다.

빗소리만이 점점 거세지더니.

 

*

 

아.

 

잠깐 정신을 팔고 있었던 모양이다. 세츠는 멍해진 머리를 한 번 털어내고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이번에 새로 중앙청에 왔다는 신입 지휘사가 서있었다. 갈색의 긴 머리에 앳된 얼굴, 교복 차림새를 보면 아직 미성년자이거나 갓 성인이 되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헌데 꽤 묘하게도,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해서 시가지는 세츠가 안내를…. 세츠? 듣고있나?"

"응? 어어, 듣고있어, 완전 잘 듣고 있어."

"…너, 설마 여기 오기 전에 술을 마신 건 아니겠지."

"안 마셨어! 나에 대한 신뢰가 그 정도 밖에 안돼?"

 

그런 말이 오가는 동안 지휘사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유달리 검은 눈동자가 이쪽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디선가 이미 한 번 만난 듯한 익숙한 분위기. 하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자니 옆에서 바라보는 안화가 헛소리 말라며 보너스를 깎아버릴 것 같아, 세츠는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기분 탓일까.

어디서 비냄새가 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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