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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창작/혐오스런 스팬담의 일생

[혐스일/오장님]장미 가면은 매혹적인가요?

가면을 쓰면 되잖아.


그 생각이 퍼뜩 지나간건 점심 식사 도중 은수저에 비친 내 얼굴에 기겁해서 스푼을 벽에 내던져버린 뒤 쪽팔려서 방에 처박혀있을 때였다.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쓰면 뭔가 반사되는 물건을 볼 때마다 내가 스팬담이고 거기에 더해 여자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같아선 머리카락도 같이 가려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사람이 아니라 은행 강도의 비주얼이 될테니 그만두기로 했다. 


일단 마음을 정한 나는 블라썸을 불러 가면을 하나 주문해야겠다고 말했다. 되도록 장식없이 밋밋하고 단순한 걸로.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한건지 블라썸은 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최고의 가면을 만들어드릴게요! 어쩌고 하며 방을 나갔다. 아니, 나는 보통 가게에서 파는 가면이라도 상관없는데. 샤봉디 제도 유원지나 워터 세븐에서 파는 가면 같은거 있잖아. 하긴 여기서 바로 그런걸 구하기는 힘들려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블라썸이 그날 오후 가면제작가를 데려왔다. 네 행동력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고 싶을 정도의 스피드였다. 일단 내가 만들겠다고 말한 것도 있기에 별 말 않고 가만히 있긴 했지만, 남이 내 얼굴을 하나하나 재고 기록해서 밖으로 나가는 과정은 상당히 창피했다. 교정기 때에는 이미 있는 구조물을 내 얼굴에 맞추기만 하면 되서 편했는데. 하긴 가면은 잘못 만들면 안에 땀이 차니까 만들 때 잘 만들어야 겠지. 나는 묘하게 들떠있는 블라썸에게 대충 장단을 맞춰주곤 가면이 올 때까지 그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게 한 일주일 전 쯤의 일인데....


이게 뭐지.


"이게 뭔데."


생각한게 그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난 분명히 스팬담인 내 얼굴을 보고싶지 않아서 가면을 쓰기로 했고, 이것저것 장식이 붙어서 요란한 건 취향이 아니라서 어디 오페라에 나오는 유령마냥 얼굴 사분의 일만 드러나는 하얀 가면을 주문했다. 틀림없다. 근데 왜 이렇게 화려하지?


"제가 열심히 꾸며봤어요!"


블라썸. 네가 범인이냐.


"그냥 하얀 가면이라니,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아름다운 스팬담 아가씨에게는 너무 밋밋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아가씨의 이미지를 가면에 장식해봤답니다!"


그래서 가면에다가 금색 테두리를 달고 한쪽 뺨에는 보라색 장미를 그려넣은거냐. 정성 쩌네.


마음같아선 왜 쓸데없는 짓을 한거냐고 묻고싶었지만 그러기엔 블라썸의 눈 밑에 생긴 짙은 다크써클이 양심을 찔러서 도저히 추궁할 수 없었다. 넌 스팬담이 뭐나 된다고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구냐. 난 그냥 거울에 비치는 얼굴 일일이 가리기 귀찮아서 쓰고 다니기로 한 것 뿐인데.

 

"부디 착용해주세요!"


블라썸이 저렇게 눈을 빛내고 있는데 그 앞에서 '아.. 난 이건 좀 별로."하고 가면을 밀어내는 싸가지 짓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슬그머니 얼굴에 대보니, 의외로 촉감은 나쁘지 않았다. 거울을 보니 얼굴도 왼쪽 뺨 약간이랑 입술 빼고는 가려져서 안 보여서 좋다. 비록 금빛으로 둘러진 테두리와 오른쪽 뺨에 있는 장미 무늬가 좀 신경쓰이긴 하지만...


"꺄악, 역시 잘 어울리세요!"


...블라썸이 이렇게 기뻐하니까 그냥 차고 다니자.

뭣보다 가면을 다시 만들 동안 반사되는 걸 또 내던지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사람이 밥은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