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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2차 + 자캐 + 연재

[HunterXHunter]어떤 여단멤버 X의 행복 3

연대 수정의 필요성을 느껴버렸습니다.....

(12세에 살해->13세 입단)




+)후반부_플래그_완전_의미없음.T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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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을 쫓는데에는 꼬박 1년이 걸렸다. 누군가를 쫒아 이동한다는 건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실감하는 날들이었다. 그동안 녀석이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시체도 몇 구나 만났다. 전부 원형을 유지하고있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으로 원형대로의 모습으로 꽤맨 뒤 전부 화장했다. 추적만으로도 바쁠텐데 왜 일일이 그런 일을 했는가 하면, 이런 나를 받아들여준 이 공간과 그곳에 살던 주민에 대한 약간의 성의표시같은거다.




조각난 육체를 조금이라도 긁어모아주고,

조각난 영혼을 미력하게나마 위로해주고,




태연히 이런 짓을 벌인 그 놈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인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표현.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




그러니까, 내가 할 수 밖에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다.



그리고 열한번째 달의 두번째 날이 저물어갈 무렵.

나는 인적이 드문드문한 폐허에 가만히 드러누운 채 암흑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쉬는 호흡이 차가운 바깥공기에 하얗게 엉겨붙었다.

얇은 종이 한장만을 깔고누운 배 위로 냉기가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옷 한 겹과 어깨에 걸친 방한용 겉옷 등을 제외하면 아무런 대비도 하지않은 몸도 싸늘해진 지 오래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암흑 속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하얀 입김에 섞여들었다가 다시금 새까맣게 물드는 어둠.

높이 쌓인 쓰레기산이 달빛을 받고는 기하학적인 그림자를 내뱉었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




나는 어둠 속의 미묘한 움직임을 발견하고 숨을 들이켰다. 구름 한 점 없는 달빛 아래 드러난 움직임은 가벼운 스트레칭을 반복한 뒤 목을 좌우로 꺽고는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쪽에서 이쪽의 기척을 눈치채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필사적으로 연습했던 제츠의 성과에 기뻐할 사이도 없이, 나는 암흑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져가는 녀석의 뒤를 쫓았다. 한 발 한 발 나아갈 때마다 앞으로의 일을 기대하는 것처럼 심장이 거칠게 두근거렸다.




하지만 섣부른 흥분이나 방심은 금물이다.

나는 가슴을 꼭 억누르며 어두운 폐허를 소리없이 달려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녀석의 뒤를 쫓았을까. 갑자기 널찍한 폐허 한가운데에서 우뚝 멈춰선 녀석은 한쪽 발을 발치의 상자에 올린 채 싸늘한 눈으로 전방의 작은 집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불빛도 보이지 않는 집들은 모두들 평온한 수면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육식동물이 바로 뒤까지 와있는데도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 채 곤히 잠들어있는 새끼사슴같은 위태로운 안식.




1년 전 오늘도, 녀석은 저런 식으로 제물을 찾고 있었던 걸까?

그러다 우연히 부모님을 발견한 뒤 우리 가족을 제물로 삼은 걸까?



언제나, 이런 식으로………….




'……………안돼. 진정하자, 나….'




순간 마음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나는 눈을 감고 깊은 심호흡을 반복한 다음 다시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달빛 어린 폐허에 홀로 선 채.


똑바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들켰다, 는 생각이 머릿 속을 치고나왔다. 

원래는 녀석이 방심한 틈을 타 이쪽에서 먼저 공격할 예정이었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나의 어이없는 실책으로 겨우 잡은 기회를 망쳐버렸다.




"거기 있는 녀석, 나와"

"……."

"나오지 않으면 내가 간다."




저벅, 하고 폐잔재들을 짓밟는 소리가 난다. 발소리는 똑바로 이쪽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도망쳐서 다음 기회를 잡는건 어떠냐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장 무시해버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급작스럽게 변하긴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완전히 틀어져버린건 아니다. 여기서 맥없이 물러설 수는 없다. 나는 하얀 숨을 토해내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입고있던 검은 원피스가 밤바람에 흔들린다. 이쪽으로 다가오던 녀석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뱀같은 시선으로 내 몸의 굴곡을 샅샅이 훎어보더니 김이 샌 표정을 지었다.




"뭐야, 손님을 찾는거야? 그런 것 치고는 몸매가 안 좋은걸."

"………."

"농담이야. 어린 매춘부가 그렇게나 완벽히 기척을 감출 리 없지."




아냐, 어린 매춘부니까 그런 실수를 저지르는건가? 라는 말을 덧붙이며 히죽히죽 웃는 녀석은 명백하게 이쪽을 놀리려고 하고있었다. 상대가 누구든지간에 자신은 결코 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하다. 왜냐하면 녀석은 그동안 쭉 죽이는 쪽의 입장이었으니까, 누군가가 자신을 죽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고있지 않은 것이다.




…어리석은 자.




"자, 그럼 너는 누굴까?"

"…누구라고 생각해?"

"이런, 되려 역질문인가? 그런 식으로 묻는 사람은 대개 나랑 과거에 연관되있던 사람인 경우가 많던데…

 미안하지만 나는 여자에게 얽메이는 타입이 아니야. 게다가 미동(美童) 취향은 더더욱 아니었고."

"……."




녀석은 나의 정체를 이미 알고있다.

알고있으면서도 일부러 저런 언사를 내뱉는 것이다.

나의 의지와, 분노와, 슬픔과, 좌절, 같은 걸 전부 짓밟으려고 하는거다.




…어차피 그의 손에 죽을 목숨이니까.




"…있지, 이때까지 죽인 사람을 기억해?"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지?"

"응, 역시 그렇구나. 뭐 됐어."




어치피 처음부터 기대하고 있지도 않았다.

나는 한손에 쥐고있던 지팡이를 다른 한손으로 고쳐잡았다.




"나는 오빠를 죽일 생각이니까."

"불쌍하게도 실성한 모양이군."

"정말이야, 정말로 죽일거야."

"…그럼, 어디 죽기 전에 죽여봐라!!"




그는 큰 소리로 외치며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달려들려고 했었다.




만약 그가 몸에 힘을 넣고 막 달려나오려는 순간 뒤쪽에서부터 가해진 모종의 충격만 아니었더라면 그는 당초의 목적대로 내 허리에 자신의 주먹을 있는 힘껏 꽂아넣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양 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내 발 아래에서 뒹굴고 있으니까. 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고마워, 핑크스 오빠야."

"뭘 이 정도로."




내가 핑크스 오빠야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자, 그때까지 벙한 표정으로 땅을 뒹굴고 있던 녀석이 퍼뜩 정신을 차린 것처럼 큰 소리로 비명과 욕설을 퍼부으며 양팔로 땅을 짚고 상체를 일으키려고 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걸 두 손 놓고 지켜볼 리가 없다. 녀석은 곧장 핑크스 오빠야의 발에 머리가 짓밟혔고, 오빠야는 그 녀석이 입을 놀리려고 때마다 머리를 지근지근 밟아대며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어떻게 할래?




"…일단은 여기서 멀어지자. 자는 사람들을 깨우는 건 실례야."

"오케이."




오빠야는 내가 근처에서 찾아냈던 낡은 노끈으로 녀석의 손발을 뒤로 돌려 묶은 뒤 마지막으로 아직도 질리지 않고 꿈틀거리는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녀석은 모든 힘을 다해 오빠야와 나의 작업을 방해하려고 했지만 그래봤자 땅을 기어다니는 애벌래가 꿈틀거리는 정도다. 모든 속박을 끝낸 우리는 녀석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장소까지 되돌아가기로 했다. 거기라면 인적이 드무니 아무리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라도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나는 그곳으로 되돌아가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곧 엄마와 아빠의 원한을 갚을 수 있다.

그 날 이후로 계속 이어졌던 악몽을 끝낼 수 있다.

마음 속에 응어리져있던 감정들을 토해낼 수 있다.

녀석들에게 당했던 무수한 사람들을 달래줄 수 있다.



…그러니까, 기뻤다.





"…응, 분명 여기였지."




녀석을 처음으로 발견한 장소에서 멈춰선다. 그때까지 손발이 뒤로 돌려 묶여진 채 끌려오며 바닥에 얼굴과 온 몸을 있는대로 갈아대던 녀석이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그 아랫턱을 강하게 걷어차 뇌가 충분히 흔들릴 정도의 데미지를 준 뒤, 나는 허리 벨트에 꽂아두었던 나이프를 꺼내들어 녀석을 묶고있는 끈을 풀었다. 기어서라도 도망갈 수 있는 최고의 도주 찬스였지만 녀석은 아랫텃을 너무 강하게 걷어차인 여파로 코와 입에서 피만을 뚝뚝 떨어뜨리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 는, 뭐야…?"

"몰라도 괜찮아. 나, 당신을 죽일거니까."




나는 가슴께의 지퍼를 잡아당겼다. 원피스의 앞섶이 좌우로 갈라지며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하게 뜨였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어린 소녀의 노출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길쭉한 상처를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두 손을 밀어넣어 상처를 벌리자 안에서 검은 가시구체가 빠끔히 얼굴을 내밀었고, 뚫어져라 상처를 바라보던 녀석이 우악스레 입을 움직였다. 피와 뒤섞인 거품이 주변에 튀어 붉은 자국을 남겼다.




"그래… 생각났다!! 너!! 1년전 이맘때에 '잘랐던' 계집이구나!"

"……."

"하하! 그래, 생각났다! 그때 네년의 살결을 죽죽 자르는게 어찌나 흥분되던지…!!"

"닥쳐. 자신의 상황을 이해 못하는 모양이네."




지팡이로 있는 힘껏 옆얼굴을 후려치자 녀석의 얼굴이 반대편으로 휘릭 돌아갔다. 핑크스 오빠야는 약간 떨어진 장소에서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녀석을 잡으면 그 다음의 취급은 내 마음대로'라는 나와의 약속을 충실히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킨 뒤 녀석의 가슴팍을 강하게 밟았다. 숨이 막히는지 녀석의 호흡이 금새 불규칙해졌다.




"나는 이제 너를 죽일거야. 땅바닥을 기는 애벌래를 밟아죽이는 것처럼."

"하! 어디… 한번, 해, 봐하! 다른 새끼…, 한, 테 빌… 붙은, 년…."




나는 손끝에 들고있던 바늘을 녀석의 피부에 찔러넣었다.

바늘은 피부 안으로 침투해들어가며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





"그, 그뷰아아갸우히아우크와으아카아아아(베*다)아아갸우아아아아아아아(찔린*)아아아(잘*다)아아아캬아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차가워)아아아아키유아아아아아(탄다)아아아(얼어붙는다)아아아아하크아아아아(벗겨진다)아아아(달궈진다)아아아아아아(뜨거워)아아아아아아(짓눌린*)아아아(긁*진다)아아아(감전된다)아아아아아아아아(터져나간다)아아아아(녹는다)아아아아아아(바스라진다)아아아아(**다)아아아(**한다)아아아아(***다)아아크리아아아아(내장이)아아아아아아(살려줘)아아아아아아아아(**줘)아아아(살려*)아아아아아아(괴*워)아아(고통스*다)아아아아(누가나*죽여*)아아아아아(차라리나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밤공기 속에 울려퍼지는 처절한 비명. 

나는 그에게서 두 걸음 정도 물러선 채 그 광기어린 임종을 바라보았다.

원수의 처참한 최후를 감상하는 것은 실로 가슴 벅차고 즐거운 구경거리였다.




그동안 눈꺼풀은 감지도 깜박이지도 않았다.

내가 원했던 일이 비로소 이루어지고 있는데, 어찌 그런 낭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시간생략)



…녀석은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발광과 자해를 선보인 뒤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피부가 벗겨지고 손톱이 빠진데다 머리카락이 온통 하얗게 새어버린 녀석의 일그러진 얼굴을 발로 굴려보았다. 고통에 못 이기고 스스로 뽑아낸 눈알 하나가 덜렁거렸다. 그것을 구두로 짓눌러 서서히 힘을 주자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은 소리와 함께 질펀한 액체 같은것이 터져나와 녀석의 너절한 옷을 밟아 문지르며 닦아냈다.



이윽고 아침해가 서서히 떠올랐다.



나는 녀석의 시체에게서 떨어진 뒤 무릎에 얼굴을 반쯤 파묻은 채 일출을 배경 삼아 눈 앞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시체 냄새를 맡은 모양인지, 큼직한 부리를 가진 새가 몇 마리나 날아와서는 그 녀석의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수없이 부대끼는 깃털과 소란스러운 부리 사이에서 인간이었던 것이 단순한 살점으로 분해되는 모습이 언뜻언뜻 엿보였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녀석은 뼈만 남을테고, 그 뼈는 인근 주민들의 손에 들어가 단순한 도구로 변하던가 혹은 그대로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잊혀질 것이다. 녀석에게 어울리는 결말이다.




"…핑크스 오빠야."

"왜 그래?"

"복수라는건, 굉장히 **하구나!"


나는 그때, 분명히 웃고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다.




"헤에, 너 재밌는 능력을 가지고 있군?"

"…………!!!"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돌리니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던 곳에 거짓말처럼 한 명의 남자가 서있었다. 오랫동안 별렸던 일을 끝낸 뒤라 약간 긴장을 늦추고 있었던건 인정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저기까지 올 때까지 눈치 못 챌 정도로 안심하고 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핑크스 오빠야도 눈치채지 못했던 모양이고… 이쯤되면 우리가 미숙한게 아니라 저 남자가 비정상적으로 뛰어나단 거겠지.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어?"

"음- 굳이 말하자면 어젯밤부터, 일까?"

"어젯밤…?"

"말도 안돼, 그랬다면 우리들이 발견 못했을 리가…."

"…………핑크스 오빠야, 잠깐만……."




한 팔을 들어 핑크스 오빠야의 말을 가로막고,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며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시종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어젯밤부터 계속 우리의 뒤에 있었던 거야?"

"눈치가 빠른 아이로군."

"……………."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눈만 깜박였다. 

핑크스 오빠야도 나와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실력 차이도 정도껏 나야지 갑자기 이런 괴물이 어슬렁 어슬렁 튀어나오면 무슨 반응을 해야하는지 알 수 없다. 시간이 흘러만가는 가운데 우리 두 사람이 그 남자를 바라보고만 있자 그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면서 입을 열었다.




"뭐, 아무튼 너희들에게 한 가지 제안이 있는데."

"…그게 뭔데?"




핑크스 오빠야의 질문에, 남자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너희들, 환영여단에 들어오지 않겠나?"


……………어?


"능력도 재밌어 보이고- 마침 자리에 공석이 생긴 참이기도 하거든."

"허어, 하지만 어젯밤부터 따라다녔다면 내 능력까지는 모를텐데?"

"아, 너의 능력도 알고있어. 어젯밤에만 따라다닌게 아니거든."

"………."




핑크스 오빠야는 약간 기분이 상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 방금 남자가 말했던 한 단어에 온통 신경이 쏠려있었다. 저 남자는 분명히 방금 환영여단,이라고 말했다. 거기는 분명 페이탄 오빠야가 있는 그 곳을 말하는 거겠지. 만약 남자의 제의에 따른다면 나는 페이탄 오빠야를 다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원래라면 그 멤버에 없었을 이레귤러다. 핑크스 오빠야라면 몰라도, 원래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내가 덥썩 여단에 들어가버려도 되는걸까?




나의 침묵을 불안함으로 받아들였는지 남자가 무릎을 굽혀 나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돼, 여단은 전부 유성가 출신이니까 아는 얼굴이 있을지도 모르고."

"…………응……하지만…."

"-게다가, 너는 이제 갈 데가 없잖아?"

"!!"




고개가 번쩍 들렸다. 남자는 내 말이 맞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1년 여의 기간에 걸쳐 그토록 바라던 복수를 끝냈지만 이후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집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 혼자서 생활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피를 토할 정도로 슬프고도 외로운 일이다.




가족이 없으니까 쓸쓸하다.

가족이 있다면 쓸쓸하지 않다.




…쓸쓸한 것도, 가족이 없는 것도 싫다.




그렇다면 새로운 가족을 만들면 된다.

가족으로 여기고 여겨질 수 있는 장소를 찾으면 된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그 [가족]에게로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뭐야, 간단하잖아.





"알았어, 여단에 들어갈게. 핑크스 오빠야도 같이 갈거지?"

"…뭐, 네가 그렇다면야."

"그럼 거래 성립이로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클로로 루실후르. 여단의 단장이다. 너희들은?"

"핑크스다."

"나는 사이아이아이. 부를 때는 사이아이정도면 돼."



우리 두 사람의 이름을 들은 남자 -클로로 오빠가 내쪽을 바라보며 약간 웃음을 머금었다.




"사이아이아이라… 특이한 이름이군."

"응. 나, 열세번째라서 XIII라고 써서 사이아이아이라고 읽으니까."

"그래? 그거 신기하군."




뭐가? 라고 물을 사이도 없이 클로로 오빠는 빙글 몸을 돌려 어딘가로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걸음은 분명 여단과 연결되어 있겠지.


나는 핑크스 오빠야와 함께 그 뒤를 따라 걸어갔다.







[Interlude:페이탄]




대개의 경우, 그는 남에게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단의 멤버를 제외하고 그가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인간이 존재치 않는다는 것이 좋은 예다.

(사실 아주 나누지 않는건 아니지만 그것은 대부분 고문중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대화라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딱 한 명, 

그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곤했던 소녀가 있었다.




발음을 잘못 했다간 혀를 깨물 것 같은 이름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오빠야'라는 호칭을 붙이던 어이없는 성격이었다.

질리지도 않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던 소녀였다.

묘하게 자신의 가족에게 집착하던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흥미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환영여단의 일원이 되는 것과 동시에 그 아이와 헤어졌다.

그 아이는 아무 능력도 없으니, 분명 유성가에서 부모님과 살아가고 있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했었고, 그렇게 생각할 예정이었다.




…그랬었는데.




"ㅡ여단의 새로운 단원이다."

"……!!"




드물게 동요하면서,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당황한 손에서 읽고있던 책이 바닥으로 풀썩 떨어졌다. 어디선가 들어온 바람에 미약하게 촛불의 불꽃이 일렁이며 단장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새로운 인물들의 얼굴을 비췄다. 하나는 누군지 모를 청년, 그리고 또 한명은 무척이나 익숙한 누군가의 얼굴. 설마.




"ㅡ아, 페이탄 오빠야다!!"




소녀가 아지트 안쪽에 있던 그를 발견하고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그 순간 아지트에 있던 전원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와 소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나같이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뿐이었지만 그 중에 딱 하나, 소녀와 같이 들어온 남자만은 자신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가 있던 자리까지 다가왔다.




"오랫만이네, 오빠야!"

"…너, 어떻게 여기로 온거야?"




의미없는 물음이다. 단장은 아무 능력없는 사람을 여단에 데리고 올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하지만 소녀는 분명 아무런 능력도 없는 아이였다. 즉 이 소녀는 그와 헤어진 3년 사이에 어떤 힘을 각성했다는 얘기가 된다. …고작 3년, 혹은 3년이나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혼란에 빠진 그를 대신해주듯 소녀가 밝은 어조로 말했다.




"여기말고는 갈 데가 없었어!"




의미심장한 말.

그는 그녀의 말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사이아이."

"응?"

"부모님은?"

"………………죽었어."

"그래서 복수했지. 그치?"




또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방금 전 단장을 따라 들어온 남자가 소녀의 뒤에 서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신에게 경계심을 드러내보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려는 듯한 눈빛. 그 순간 모든 상황을 파악한 그는 가느다란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과연, 알 것 같군."




많은 의미를 담은 한 마디.

그는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워올려 다시 읽기 시작했다.



소녀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 다른 여단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남자는 여전히 그에게 경계가 담긴 시선을 던지며 소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날,

 사이아이아이(XIII)는 환영여단의 일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