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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2차 + 자캐 + 연재

[HunterXHunter]어떤 여단멤버 X의 행복 2

나의 이름은 XIII(사이아이아이)가 되었다.




묘하게 혀를 깨물것 같은 이 이름의 유래는 내가 13번째로 태어난 자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일남이나 이순이 같은 맥락의 작명 센스지만 어감이 나쁘지는 않아서 마음에 든다. 하지만 나 이전에 태어난 12명의 형제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상당히 오싹해진다. 그렇게 유산을 하면서도 자식을 얻을 때까지 계속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한 우리 부모님도 부모님이지만 말이지.




어쨌든, 내가 태어난 여기는 '유성가'라고 하는 장소라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어딘지 귀에 익은 지명인데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지명은 내가 중학교 즈음에 읽었던 '헌터헌터'라는 만화책에 나오는 장소였다.




무엇을 어떻게 버리든지 모조리 수용되는 장소.

그러나 그것을 빼앗아가려고 하면 보복하는 장소.




단순한 현실도피용으로나 사용되는 소재인줄 알았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다니-싶은 마음에 조금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렇게 웃음짓는 한편으로 이 곳이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장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이 곳에서 아무것도 빼앗아 갈 수 없고, 빼앗아가려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보복한다. 물론 이런 모토를 가지고 있는 이 장소는 그리 환경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 그것은 우리 집을 비롯한 다른 집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나는 이 곳이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는 우선 나 자신이라는 존재가 있었고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나를 길러주신 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 사이에는 '가족'이라는 유대감이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애타게 바라고있던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마침내 얻게된 것.

이전의 삶에서는 아무 이유 없이 박탈당한 사소한 행복.




그러니까 나는 이 장소에서 행복을 느낀다.

다른 어디도 아닌 바로 이 장소에서.




"…바보같은 소리로군."

"아- 너무해, 나는 진지하게 말하는건데."

"그걸 진지하게 말하는 시점에서 바보야."

"…페이탄 오빠야는 심술쟁이-"




뺨을 부풀리며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으니 차가운 시선을 받았다. 그럭저럭 말을 트게 된지도 5년쯤 되는데, 페이탄 오빠야는 언제나 늘 이런 식이다. 뭐 이런게 페이탄 오빠야다운 점이지만.




내가 페이탄 오빠야를 처음 만난 것은 집 근처의 폐허 속이었다. (익숙한 얼굴이 있어서 무심코 다가가 버렸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겠다) 처음에 만났을 때에는 '친한 척 오빠야라고 부르지 마' 라던가 뭐라던가 해서 여러가지로 위험해질 뻔 하기도 했지만 여러가지 일이 있은 이후로는 내가 '오빠야'라고 불러도 별다른 제제를 가하지 않는다. 그렇다는건 나는 페이탄 오빠야랑 조금은 친해졌다고 봐도 좋은걸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그냥 신경을 안 쓰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우울해져서 그 생각은 그만두기로했다.




"페이탄 오빠야는 여기가 싫어?"

"그런거 없어."

"그게 뭐야."

"어차피 이제 곧 여기를 떠날테니까."

"떠나?"

"그래."




아, 그러고보니 페이탄 오빠야는 나말고 다른 언니오빠들과도 다녔었지. 그럼 그 사람들이 나중에 나오는 무슨 무슨 여단이 되는걸까. 거기에 나도 넣어달라고 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어차피 거절당할게 뻔한데다 설령 들어간데도 아무 능력없는 나는 짐만 될게 뻔하니 그만두기로 했다.




"그럼 자주 못보겠네?"

"당연하지."

"흐음ㅡ"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굳이 페이탄 오빠야에게 매달려 여기에 남아주길 부탁해야할 이유도 없다. 일단 나에게는 여기에서 함께 지내주는 가족이 있고, 페이탄 오빠야는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하다. 게다가 자기가 스스로 정한 선택일테니 여기서 내가 억지를 부려도 무의미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폐잔재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언제나 탁한 빛의 하늘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쓸쓸해지겠다. 가끔은 돌아와."

"뭐하러. 너 보기 싫어서라도 안 와."

"아- 너무하다. 꿈에 나타나 버릴거야."

"필요없어."




…그런 식으로 별다른 주제 없는 이야기를 하고 헤어진 다음 날, 평소와 같은 장소에 가봐도 페이탄 오빠야는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 다음 날에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그 사람들과 같이 어딘가로 가버린 거겠지. 페이탄 오빠야보다는 우리 가족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역시 막상 보이지 않게 되니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번 잡아보기라도 할걸 하는 미련이 떠올랐지만 의미없었으므로 묻어버렸다.




그게 내가 10살때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 페이탄 오빠야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분명 여기가 아닌 바깥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돌아다니고 있겠지. 나는 나름대로 익숙해져있는 여기에서 나갈 생각은 없으니 이제 페이탄 오빠야와 만나는 것은 사막에서 우연히 두 여행자가 마주칠 확률만큼이나 드문 일이 될 것이다. 뭐 페이탄 오빠야가 여기로 돌아오거나 혹은 내가 이 거리 밖으로 나간다면 또 모르는 일이지만, 이 상황조차 발생할 확률이 너무나 낮다.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페이탄 오빠야를 다시 만날 일은 없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3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그동안 친해진 또 다른 오빠야와 헤어져 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집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라서 신경쓰지 않았다. 불을 피우려면 전기나 촛불이 있어야하는데 가난한 우리집은 전기는 고사하고 양초를 구할 형편도 못 되었기 때문이다. 횃불을 피우는 방법이 있긴하지만 그건 안그래도 초라한 천막 수준의 집을 홀라당 태워먹을 가능성이 있었다. 결국 우리 집은 하루 해가 저물면 잠들어서 하루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눈을 뜨는 기묘한 사이클로 생활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12명의 유산에도 불구하고 13명째인 나를 밴 것은 이런 생활 싸이클에 영향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안으로 걸어들어간 그 순간에,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 아빠?"




어떻게 된 건가요. 우리 집이 해가 지면 잠들긴하지만 벌써 잠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 아닌가요. 게다가 어째서 아무것도 깔지않은 맨 바닥에서 주무시고 계신건가요. 자투리 천을 기워서 누덕누덕하고 여기저기 얼룩이 지긴 했어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천이 저기에 있는데. 어째서 두 분 다 바닥에 쓰러져 계신건가요. 왜 두 분 다 아무 말씀이 없으신건가요. 엄마, 아빠. 대답을 해주세요. 내가 그렇게 늦게 온 것도 아니잖아요? 벌써 잠드신건 어째서죠?




어째서ㅡ

두 분 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계신건가요.




나의 생각은 단숨에 이어지고 단숨에 끊어졌다. 부모님에게 다가가기 위해 집안으로 한 걸음을 더 내디디려 한 순간 무언가에 적셔진 천이 단숨에 내 코와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오래된 기억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둬두고있던 서늘한 기억들이 모조리 울타리를 부수고 내 의식 안으로 뛰쳐들어왔다.




할머니. 거짓말을 한건가요. 봉고차의 내부는 불을 켜지 않으면 무서워. 아냐, 낯선 사람이 있어서 무서운거야. 내리게 해주세요.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거야? 엄마, 아빠, 언니, 오빠, 도와줘. 나를 도와줘. 지금 당장 여기로 뛰어내려와서 나를 발견해줘. 하지만 아무도 나를 구해줄 수는 없어. 왜냐하면 나는 이 안에 갖혀있는걸. 여기는 어두워. 어두우면 보이지 않아 아아 그래도 엄마아빠가 쓰러져있는 모습은 저렇게나 선명하게 보여. 그러니까 아무도 구해주지 못해. 오빠는 없어, 언니도 없어. 여기에 있는건 나 하나 뿐. 그럼 어쩌면 좋아?




<네가 할 수 있는것 따위 없어.>




ㅡ그럼 또, 어딘가로 끌려가버리는거야?

ㅡ다른 사람들 좋을대로 이용당하는거야?

ㅡ당연히 누려야 할 그런 것들을 빼앗긴 채로?




…그런건, 이제 지긋지긋해!!




나는 필사적으로 숨을 참으며 버둥거렸다. 실수로라도 숨을 들이키지 않도록 입과 코를 완전히 정지시킨 채 있는 힘을 다해 팔다리를 휘둘렀다. 그 끝에 누군가의 팔이 닿아 있는 힘껏 할퀴고 잡아뜯었다. 아직, 아직 늦지 않았어. 엄마아빠는 다만 기절한 것 뿐이야. 여기에서 나가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약간만 쉬시면 분명히 괜찮아지실거야. 그러니까 나를 놔. 이 두껍고 무거운 손을 치워. 이 천을 치워. 당장 치우란말야.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이 장소야? 다른 곳으로 사라져. 가버리란 말이야. 나는  너같은거 필요없어. 내가 여기서 또 빼앗길 것 같아ㅡ?




"-이거 보기보단 끈질긴 계집년이구만. 하지만 네가 아무리 그래봤자 결국 나를 이길 순 없지."

"왜냐하면 나는 너보다 강하니까."

"약자는 강자의 발 아래에서 기어다니기만 하면 되는거야!"




그 말과 함께 허리를 붙잡고있던 손이 목을 꽉 졸랐다. 안그래도 호흡을 하지못헤 산소고갈상태에 빠져있던 머리가 그 공격에 일제히 빨간 신호를 울리며 한시라도 빨리 그 압박에서 벗어나라고 절규했다. 하지만 숨을 쉬지 않으면서 마구 휘둘러진 탓에 이미 진이 빠져있는 나의 몸에게 그 이상의 활동은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온몸의 혈관이 웅성이는 몸으로 상대의 팔을 손톱이 부러져라 긁어대는 것이 최대치의 저항이었다.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아아, 나라는 존재는 어쩜 이렇게나 어리석고 유약한가.

기껏 다시 손에 넣은 것조차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다니ㅡ.




너무나도 무력해서 차라리 혀를 깨물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전에 호흡곤란으로 인한 실신이 먼저 찾아왔다. 주변이 점차점차 어둠으로 물들어가고, 귓가에 기분 나쁜 저음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너무나, 분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각각의 사지가 뒤로 돌려진 채 밧줄같은 것으로 꽁꽁 묶여져있었다. 어찌나 강하게 묶었는지 이리저리 힘을 넣어 마구 발버둥을 쳐봐도 밧줄 아래의 살갗이 쓸렸을 뿐 나를 묶은 줄은 헐거워지지도 않았다. 게다가 내가 앉아있는 철제 의자와 끈을 서로 묶은 모양인지 묶은 팔이나 다리를 따로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한 내가 계속 덜컹거리며 소란을 일으키자 내가 있는 곳의 왼편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아이구, 이제야 깼니 요 잠꾸러기 아가씨?"

"당신… 누구야…."

"음훗훗. 알 필요 없어. 어차피 넌 여기서 죽을테니까 말야-"




기분나쁜 웃음소리와 함게 그가 근처의 테이블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무언가를 싼 살색의 보자기인데, 안의 것이 축축한 물건인 탓인지 아랫부분이 질척질척한 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생리적인 혐오감에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그가 히죽 웃으면서 천천히 보자기를 풀렀다. 부스럭부스럭. 그리고 이윽고 그 안에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눈에는 아주 익숙하지만, 그런데에 있어서는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것.




"…아, 아, 아ㅡ"




그것은ㅡ




"아, 아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줄도 모르고 소리쳤다. 마구 몸을 비틀어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단단히 묶인 몸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계속 발버둥 치는 바람에 밧줄과 계속 마찰한 피부가 쓰라려왔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저 계속 계속 비명을 지르며,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하는 도중에 그 증오스런 남자의 뒤쪽에 떨어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의 발목, 누군가의 손목, 누군가의 몸통, 누군가의 내장등이 거꾸로 뒤집어엎은 퍼즐조각처럼 어지러이 흩어져있었다.




그 옆에도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일단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해서 나의 아빠의 몸보다 나은 상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심하다고 해야했다. 어스름한 불빛 아래에서 언뜻 보이는 그 몸의 피부는 모조리 벗겨져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과학실에서 가끔 눈이 마주치던 인체모형이 떠올랐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인체모형'은 피부가 몽땅 벗겨진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꿈틀거리면서도 그래도 살아있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것이 이제 얼마 남지않은 목숨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 살아있는 인체 모형과 눈이 마주친 나는 아까보다 더욱 경악했다.




왜냐하면 그 눈동자가ㅡ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눈물 고인 그 눈동자가ㅡ




"…어, 엄마…?"




온몸의 피가 식었다. 그녀는 핏덩어리가 뭉친 입술을 움직여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아마도 도망쳐, 라던가 미안해, 라던가 아니면 나의 이름을 불렀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셋 전부 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작아서 시신경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내 귀까지는 닿지 못했다. 나는 그때 엄마의 눈동자에서 스며나온 눈물이 곧장 피색으로 물들어 사라지는 모습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그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아빠의 머리를 쳐다보았다. 살색 보자기라고 생각한 것은 내부가 붉었다. (마치 무언가에게서 벗겨낸 가죽처럼?) 그 안에 담겨있던 아빠의 얼굴 또한 군데군데 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 얼굴의 눈꺼풀이 천천히 들어올려지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빠… …엄마…."

"음후후, 가족들과 다시 만나서 기쁘지-? 이제 너도 똑같이 만들어줄게."

"똑, 같이…?"

"음, 그래도 나는 다양성을 추구하니까ㅡ"


"ㅡ그래, 이번에는 잘라볼까?"




그때, 나를 바라보던 두 분의 눈동자가 생생한 공포로 차올랐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암전.)






"후, 아, 우… 아, 우우우우우…."




나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호흡을 할 때마다 부풀어 오르는 폐에 바깥 공기가 닿아서 쓰라렸다. 매초마다 박동하는 심장의 표면에 닿는 소리의 파문이 욱신거렸다. 나는 울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입에서 역류해오는 핏방울이 이리저리 튀어올랐지만 내 주위는 이미 엄청난 피바다라서 조금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미치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1초 1초를 견뎠다.




일류 도구를 가지고 삼류 재단사처럼 내 가슴께부터 배에 이르는 부분을 [자른] 남자는 그 작업을 끝내고 내 몸 안을 이리저리 휘저어보더니 흥미를 잃었다며 훌쩍 나가버렸다. 물론 내 몸은 의자에 꽁꽁 묶여진 그대로다. 흥미를 잃었다고 그대로 나가버린 놈의 태도에는 분노가 치밀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있다. 부모님도 저런 상태지만 아직은 살아계신다. 그러니까 그걸로 어떻게든 된다. 나는 피를 튀기는 호흡을 거듭하며 천천히 의자를 앞으로 끌었다. 의자는 기긱기긱거리며 가까스로 앞으로 움직였다. 몸을 움직일때마다 잘린 몸의 틈새로 뭔가가 울컥이며 삐져나왔다.




"아, 아으윽, 후웃, 크으…… ……앗!"




바닥에 뭔가의 요철이 있었던 걸까. 그때까지는 느리긴해도 잘 움직이던 의자가 갑자기 어느 지점에서부터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아주 조금만, 앞으로 아주 조금만 더 나아가면 부모님에게 닿을 수 있는 위치인데. 나는 분한 마음에 이빨을 앙다물었다. 테이블 위의 아빠는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테이블 아래의 엄마도 슬픈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울지 않고 버텼다. 부들부들 심호흡을 하고 몸에 억지로 힘을 넣어 의자를 뒤흔들었다.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의자는 크게 앞으로 기울어져ㅡ




"……!!"




나는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비스듬한 정면 얼굴을 바닥에 부딪친 것보다 뱃속에서 뭔가가 쿨렁이는 것이 훨씬 아팠다. 이것만큼은 나도 참을 수가 없어서 살짝 우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서, 또 여기서 움직였다간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어서 몸을 모로 눕힐 수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갑자기 내 손발을 묶고있는 밧줄을 자르는 손길이 느껴졌다. 톱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남자의 것과는 달리 무척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손길.




"…엄…마…?"




피부가 벗겨져 피맺힌 근육만이 보이는 두 발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대답하는 목소리 대신에 단단히 묶여있던 팔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살짝 근육을 움직이니 손가락 끝이 삐걱이며 움직였다. 아, 다행이다. 완전히 맛이 간건 아니구나.


이윽고 두 발도 속박에서 풀려났다. 나는 한 손으로는 갈라진 상처를 누르고 한손으로는 땅을 짚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완전히 일어서는 것은 무리여서 우선 상체만 일으켜앉았다. 무리를 해버리신 탓에 온몸에 핏방울이 맺혀 흘러내리고있는 엄마가 내 옆에 앉았다. 그 무릎에는 머리만 남은 아빠가 놓여져있었다. 두 분 다 이렇게까지 되었는데도 살아있었다. 나는 결국 울었다. 이렇게 된게 슬퍼서 울었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이 기뻐서 울었다. 온통 붉은 엄마의 손이 나의 눈물을 닦아주려는듯이 나에게로 다가오고ㅡ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어?"




엄마의 몸이 털썩 쓰러졌다. 온 몸에 맺혀있던 핏방울들이 마치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바닥으로 일제히 퍼져나갔다. 그때문에 엄마의 무릎에 놓여있던 아빠의 머리도 바닥을 굴렀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머리를 붙잡아 아빠와 눈을 마주쳤다. 아빠의 눈은 촛점이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마주보았다. 엄마는 너무나 희미한 호흡을 하고 계셨다. 마치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것처럼.




"아냐!!"




나는 아빠를 안은 채 엄마에게로 기어갔다. 엄마는 나를 바라보며 눈꺼풀을 한번 파르르 떤 뒤 그대로 정지했다. 이제는 온몸에서 구물구물 새어나오는 피들만이 엄마의 몸에서 움직이는 유일한 것이었다.




"아냐!!"




나는 아빠의 얼굴을 보았다. 아빠의 얼굴에서도 살아있는 그 무언가의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아빠의 얼굴을 힘껏 붙잡았다. 그걸로 아빠의 변화를 막으려고했다. 하지만 아빠는 무언가를 말하듯이 입술을 움직이시고는 천천히 눈을 감으셨다. 이제 목의 단면에서 흐르는 피만이 아빠의 몸에서 움직이는 유일한 것이었다.




"아냐!!"




나는 순간 아빠의 얼굴을 놓쳤다. 복부에서 이제까지의 고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이 몰려왔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손톱을 세우자 한계에 다다른 손톱 하나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손가락에서 벗어났다. 나는 그래도 바닥을 손톱으로 긁어대며 오열했다. 부정하고 슬퍼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혐오하고 단장의 고통을 느끼며 절규했다.




"아니야!!"




내가 원한 것은 이런게 아니야. 어째서 나는 매번 이렇게 소중한 것을 빼앗긴 뒤 죽는거야? 내가 그렇게나 나쁜 짓을 한거야? 나는 그저 가족들과 함께 평온하게 살면 그걸로 충분한데 어째서 언제나 나를 방해하는거야? 어째서? 어째서? 무슨 이유로? 내가 나도 모르는 전생에 어떤 업보를 짊어져서? 아니면 원래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는 거야? 나는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거야?




…웃기지 마!!!!!




누가 그런 걸 인정할 것 같냐. 나는 죽고싶지 않아. 그런데 왜 항상 나만을 괴롭히는 걸까? 이해할 수 없어. 알고싶지도 않아. 하지만 분해. 너무너무 분해. 나에게만 오는 불행이 미워!! 불행해진 나를 진흙땅에 처박으면서 즐기는 자들이 미워!! 나의 가족을 부수려는 사람들이 미워!!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미워!! 그런 사람들에게 무력한 내가 미워!! 그럼 어쩌면 좋아? 이대로 혀를 깨물어서 자살? 하하, 그럴 것 까지도 없지. 왜냐면 나는 이대로라면 곧장 죽을 테니까!!




하지만 죽고싶지 않아. 죽을 수 없어. 나를, 나의 가족을 이렇게 만든 그 자식을 죽이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어. 나의 고통을 내장과 뼛 속까지 절절히 느끼게 하지 않고서는 죽일 수 없어. 하지만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단순한 강함만으로는 부족해. 그런게 아니라 좀 더 효과적인 뭔가가 필요해. 나의 이 미움을 아무런 여과없이 전해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 나를 뭉개려는, 나의 가족을 해하려는 자들에게 내려칠 철퇴가 있어야 해. 오만방자한 그들을 머릿 속에서부터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단말이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세계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나는 상처를 잡아뜯었다. 피가 울컥울컥 새어나오던 상처의 안쪽에서 내 외침과 분노와 필요에 답하듯이 무언가가 새롭게 형태를 얻어 고동치고 있었다. 그것에 비하면 다른 장기들은 심장조차 그저 부속품에 불과하다. 나는 상처를 벌렸다. 피로 물든 상처 사이로 갈비뼈가 삐걱이고 허파가 짓눌리고 심장이 잠시 경련을 일으키고 혈관이 비틀린 뒤ㅡ





…마치 검은 꽃다발같은 가시들이 핏방울을 떨치며 힘차게 뻗어나왔다.






=




그 장소에서 물어물어 집까지 돌아오는 데에는 꼬박 삼일이 걸렸다. 혼자서 왔더라면 좀 더 빨리 돌아왔겠지만 그렇다고 그 장소에 피부가 벗겨진 엄마와 토막난 아빠를 내버려두고 올 수는 없었다. 덕분에 온몸은 피갑칠에 피냄새가 진동하고 한눈에 보기에도 비명을 지를 만한 수상쩍은 짐이 한가득인 상태가 되버렸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은 완전히 무너져있었다. 안그래도 허름했는데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무너질 수 밖에 없겠지. 당연한 일이지만 역시 조금 우울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틈은 없다. 나는 우선 엄마와 아빠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무너짐 집을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집에 엄마가 바늘쌈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사이아이?"  

"어……."




그림자가 져서 뒤를 돌아보니 내 뒤에는 조금 놀란 표정의 핑크스 오빠야가 서있었다. 하긴 지금의 내 모습은 누가 봐도 놀랄 수밖에 없을거다. 나는 오빠야를 쳐다보다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아무 말 없이 서있던 오빠야가 무릎을 굽혀 내 옆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었어?"

"……."

"……."

"……."

"…도와줄까?"

"응. 바늘쌈지 찾아야 돼."

"찾은 다음에는?"

"꿰멜거야."




오빠야는 뭐를? 이라고 묻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끄덕인 뒤 나를 도와 폐허를 이리저리 뒤져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도운 덕분에 바늘 쌈지는 금방 찾았고, 나는 그걸 이용해 아빠를 꽤메고 엄마를 이어붙여 두 분을 온전한 상태에 가깝게 되돌렸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폐허가 된 집을 한데 그러모아 불을 붙였다. 유성가에는 이렇다 할 장례의식이 없어서 가족의 시체를 처리할 때 화장 말고는 좋은 방법이 없었다. 사람의 살을 태우는 냄새가 회색 연기와 함께 피어올랐다. 언뜻언뜻 보이는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다가 사라졌다.




"…저기, 핑크스 오빠야."

"왜 그래?"

"나, 사람 하나를 죽여야 해."

"원인?"

"응. 그러니까 도와줘."

"귀여운 동생의 부탁인데 들어줘야지."

"고마워."

"…그런데,"

"응?"


"그 상처는 내버려둬도 괜찮아?"

"아, 이거?"




나는 손을 내려 가슴께에 새겨져있는 상처를 더듬었다. 조악하기 짝이 없는 상처는 쇄골의 중간 에서부터 배꼽의 윗부분까지 나있었고, 맨 처음의 상태에 비하면 비교적 얌전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결코 아물 일은 없겠지. 나는 가위질당한 흔적이 선명한 피부를 살짝 쓰다듬었다.




"괜찮아. 이건 나의 힘이니까."




매캐한 연기를 내뿜던 불꽃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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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 정리>




[5살]페이탄과 처음으로 만난다.

[10살]페이탄이 환영여단이 되어 유성가를 떠난다. 이후 핑크스를 만났다.

[13살]미친 살인마에게 납치되서 부모님이 살해당했다. XIII나 부모님이 그 지경이 되어서도 살아있었던 것은 그 살인마가 지닌 특수한 넨 능력 덕분. 원래라면 XIII도 죽었어야 했지만 넨 능력을 각성하면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이후 핑크스와 함께 그 살인마를 추적한다.

[15세]살인마를 발견해서 능력으로 살해. 클로로의 눈에 뜨여 여단으로 들어오게 된다. 페이탄과 재회.




-사이아이아이의 외모는 대략 '바케모노가타리'의 센고쿠 나데코와 비슷합니다. 

 다만 색깔이 한색 계열(머리는 짙은 남색, 눈은 보라색)이라는게 다른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