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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FATE

[fate/zero]달밤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

-우류 중심이므로 고어, 유혈에 익숙지 않은 분은 물러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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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바깥으로 네온사인이 반짝반짝 빛난다. 이 맨션에서는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보인다는 말이 과연 허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집세 제법 비쌌겠네요, 그죠? 가벼운 농담조의 말을 던지며 우아하게 몸을 돌린 뒷쪽에는 녹색 박스테이프로 온 몸이 꽁꽁 묶인 채 씨근거리는 숨을 간신히 토해내는 묘령의 여성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크게 뜨여진 눈이 금방이라도 툭 튀어나와 구를 것만 같아, 우류는 비실비실 스미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짧게 키득거렸다. 거기에 항의하듯 검은 미니스커트 아래로 뻗어나온 갈색 스타킹이 발작적으로 마룻바닥을 찧어댔다. 어쩌면 제발 살려달라는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우류의 이상성과 맞물려 상황을 악화시켰을 뿐이었다.

 

"와아, 누나 엄청 기운 좋네요-. 그 기세라면 꽤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도 되죠?"

 

억눌린 비명이 청테이프를 뚫지 못한 채 숨결과 뒤엉킨다. 더불어 발버둥은 커녕 발작이라는 표현으로 모자를 정도로 발광하던 여자가 손목이 뒤엉킨 의자와 함께 요란하게 몸을 넘어뜨리고는 실로 꼴사나운 자세로 바닥 위에서 꿈틀거렸다. 아마도 걸을 수 없는 대신에 기어서라도 도망치려고 한 모양이지만, 류노스케가 아무리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따뜻하게 지켜보아도 그녀의 몸은 배후의 의자를 중심점 잡아 일그러진 궤적을 그리기만 할 뿐 원래 있던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째각이는 초침소리에 맞춰 마룻바닥에 맴도는 신음소리가 필사적인 비명으로 점철되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변화였다.

 

절망적인 쳇바퀴질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초조함과 공포가 쌓이고 쌓여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녀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한쪽으로 풀썩 떨궈버렸다. 혹시나 싶어 집어본 맥박은 미약하게나마 뛰고있어, 다행히도 -그녀는 차라리 죽고싶었겠지만- 아직 숨이 붙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일단 다시 정신을 차릴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볼까…라며 남은 의자에 풀썩 앉은 류노스케의 발치에서 언뜻 향냄새가 풍겼다. 그러고보면 오늘 자기 불륜상대가 죽어서 장례식장은 가지 못했지만 무덤에 향을 피우고 왔다고 했던가. 우류는 의자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는 기지개를 피듯이 양 팔을 쭉 앞으로 뻗었다.

 

우류 류노스케는 장례식에 참가해본 적이 없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지 그 이후에 이루어지는 허례허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몇 명인가의 목숨을 빼앗은 뒤에도 류노스케는 장례식에 대해 관 안에 들어있는 시체나 검은색 복장, 그리고 침울한 분위기 등의 기본적인 구성요소 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이번 대화에서 그 빈곤한 상상력이 죽음을 추구하는 살인귀의 매정함이 아니라 죽음을 기피하는 -혹은 인식하려 하지 않는- 사회일반인들의 사고방식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뭐 상관없겠지."

 

아무런 가치없는 시간 죽이기용 생각은 흐지부지한 결말을 맞이했다. 어차피 자신은 앞으로도 장례식장에 갈 일 따윈 없다. 그런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 자아낸 결과였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머리 속에서 하나 둘 씩 떠오르는 살인방법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류노스케는 가볍게 의자를 앞뒤로 기울이기 시작했다. 창문 바깥의 야경이 박자에 맞춰 한들한들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자신의 움직임이 우주 자체를 움직이고 있는 듯한 묘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우류의 머릿 속에 뭔가가 번뜩였다.

 

그것은 우류에게는 작은 아이디어였지만, 그녀에게는 거대한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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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침대로 그녀를 옮긴 뒤, 집안에 있던 끈이나 여러 코드들을 적당하게 모아 사지를 한껏 벌린 자세로 고정한다. 행여나 풀리지 않도록 테이프로 한번 고정한 다음 세찬 비명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잘게 찢은 수건으로 단단히 재갈을 물린 우류는 불을 켜지 않은 덕분에 방안을 은은하게 채우는 달빛을 받으며 여자의 몸에 올라탔다. 의식을 잃은 채 규칙적인 호흡을 뱉고있는 육체에서 은은한 향기가 풍겨오고 있었다. 브랜드는 모르지만 아마도 고급일 것이다. 양장을 한꺼풀씩 벗겨낼 수록 조금씩 강해지던 향기는 마침내 맨가슴이 드러났을 무렵 절정에 달했고, 그 향기에 이끌리듯 부드러운 살결을 한번 손가락으로 훑어내리던 우류는 이윽고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이프를 집어들었다. 머리맡에 얌전히 놓여있던 나이프의 날카로운 표면으로 달빛이 미끄러져내렸다.


나이프를 집어들어 가볍게 푹, 하고 찌르자 붉은 핏방울이 샘솟듯 흘러나왔다. 그대로 좀 더 깊이 찔러넣어 나이프의 머리 부분이 거의 안으로 잠겨들게 한 다음, 우류는 나이프를 두 손으로 고쳐쥐고 서서히 칼날을 아래로 움직였다. 사각이는 소리와 함께 조금 질긴 천을 가위로 잘라내는 듯한 감촉이 전해져왔다. 생가죽을 자른다는건 이런 느낌이구나-하고 홀로 감탄하던 우류는 상처에서 흐른 피 한 줄기가 침대시트를 제법 적셨을 무렵 퍼뜩 눈을 뜬 여자를 발견하고 슬쩍 웃었다.


"깼어요?"


여자는 자신의 위에 올라탄 우류와, 그 손에 들려 자신의 배를 찌르고 있는 나이프를 본 순간 필사적으로 울부짖었다. 그 난동에 팔을 묶고있는 코드가 흔들리고, 발을 묶어둔 붉은 끝과 테이프가 버석거리는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곤란한 것은 그녀가 몸을 마구 뒤틀어대는 바람에 우류가 원하는 대로 작업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었다. 기절해있는 동안 맨 처음에 의도했던 직선을 긋는 데는 성공했어도 그녀가 이렇게 몸을 뒤틀어대며 날뛰면 그 다음 작업을 실행하는 데 차질이 생긴다. 우류는 별 수 없이 양 다리로 그녀의 몸을 단단히 틀어쥔 채 작업을 재개했다.


피가 사방으로 튀어오르고, 여자의 사지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다가 축 늘어지기를 반복하며 끈질기게 반항을 계속했다. 커다랗게 뜨인 두 눈에서는 고통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이 쉼없이 흘러내렸다. 우류는 이따금 피투성이 손가락을 들어 그 눈가를 닦아주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그것이 그녀에게 위안이 되었을 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류는 정말 진심으로 그녀가 조금 더 힘내주길 바랬다. 아예 처음부터 죽이지 않고 굳이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고 있는 이유도 거기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거의 끝났어요!"


시트가 검붉게 물들고 코드에 쓸린 여자의 피부가 거의 너덜너덜해질 지경에 이르러 처음의 향기는 간데없고 오직 피비린내만이 가득 차오른 방 안에서, 홀로 보람찬 표정을 지으며 피가 달라붙은 나이프를 닦아내던 우류는 좀 전부터 들려오던 여자의 숨소리가 눈에 띄게 미약해졌다는 것을 알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흰자위가 검은 자위를 거의 위로 몰아붙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까딱했다간 금방이라도 이승의 끈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순간 자신의 작업이 먼저 끝날지, 아니면 그녀의 목숨이 끝나는게 먼저일지 불안해진 우류는 서둘로 살가죽 안쪽으로 나이프를 밀어넣었다. 수건에 말려든 입 안에서 컥컥이는 숨소리가 단말마처럼 울려퍼졌다.


마침내 우류가 모든 작업을 끝냈을 때 한쪽으로 쓰러진 그녀는 건전지가 다한 기계인형처럼 눈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볼 위에 달라붙어 도자기에 새겨진 잔금을 연상시켰다. 그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그녀의 활기를 확인하는 대신, 우류는 작업을 끝낸 나이프를 침대에 박아두고 자신이 잘라낸 여자의 살가죽을 잡고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피부를 찢고, 근육을 잘라내며 뼈를 더듬어댄 작업이 결실을 맺느냐, 아니면 단순한 헛수고가 되느냐가 걸린 순간이었다.


이윽고 새하얀 갈비뼈와 그 너머에 숨죽이며 지내고있던 장기들이 드러났다. 하지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으로는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고, 잠시 고민하던 우류는 밖에 꺼내놓았던 휴대폰을 꺼내 그 액정의 빛으로 인간의 내부를 비췄다. 하얀 갈비뼈 너머, 어지럽게 얽혀있는 혈관 사이로 피부 아래로만 느껴지던 맥박이 현실에 가감없이 드러나고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허파가 서서히 움츠러드는게 보였다. 뼈라는 창을 통해 인간의 장기가 담긴 풍경을 들여다보려던 시도는 일단 성공한 셈이었다.


한 가지 문제만 제외한다면.


"…누나, 제법 피웠었던 모양이네."


우류는 금새 사그라들어버린 액정을 다시 킬 생각도 하지 않으며 김 샜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그 얼굴은 쓴 약을 먹은 아이마냥 일그러져있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뼈의 너머로 보인 허파는 니코틴같은 것이 잔뜩 들러붙은 채 시커멓게 쪼그라들어있어 그야말로 형편없는 몰골이었던 것이다. 시골 밤하늘같은 청정함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의 야경같은 반짝임을 원했던 우류에게는 그야말로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는 심장박동 조차 완전히 희미해져가는 여자에게서 떠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뒤, 우류는 피투성이의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세면실로 걸어갔다. 앞으로 자신은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 먹으며.


"세면실 좀 쓸게요-."


집주인의 허락을 기다리지도 않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려던 우류의 눈에 근처 옷장위에 나뒹굴고 있는 담배곽과 라이터가 들어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몸을 뒤로 기울여 흡연의 필수요소를 노려보던 우류는 이윽고 그것을 벌레 집듯 집어들어 그대로 쓰레기통 안에 던져넣었다.


플라스틱 재질 특유의 텅 빈 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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