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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게나조(게게게의 키타로 극장판)

게나조 트위터 조각글 모음 01

※게게게의 키타로 극장판 게게게의 수수께끼 키타로 탄생 (게나조) 기반 조각글입니다
※극장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키타로의 아버지가 ‘게게로’로 언급되는 글이 있습니다.
※날조/퇴고X





01.
미즈키가 꿈을 꾼다
강가에서 돌을 줍는 꿈이다

…음….
아니다.

이건 뼈다. 사람의 뼈다.
미즈키는 알 수 있다
이건 죽은 사람의 뼈다

뼈가 하나 둘 셋 넷….
열심히 모아서 모양을 맞춘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


어느새 머리 뼈만 빼고 전부 모았다
그럼 머리는 어디있지?
찾아 돌아다니다 오니 누군가가 모아놓은 뼈를 다 엉망으로 흩트려버렸다

누구야!
누구냐!

답이 없어서 뼈를 줍는다
검게 탄 뼈를 줍는다
머리만 없다
찾으러 간다
뼈가 다 흩어진다
….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어느 날은 범인을 잡기로 한다

머리뼈를 찾으러 떠나는 척 몰래 몸을 숨긴다
살짝 고개를 내민다
누군가가 다가온다

누구지?
누구지?

긴 머리에 기모노를 입고 머리에 리본을 묶은 소녀다.
소녀는 휘청휘청 다가오더니 괴로운 표정으로 모은 뼈를 걷어찼다

데굴데굴
데굴데굴

소녀는 사라진다
미즈키는….
…….
…….

다시 뼈를 줍는다.
미즈키는 뼈를 줍는 꿈을 꾼다.


02.

미즈키의 회사에서 죽은 사람이 나왔다는 모양이다.

모양, 이 아니라고 그게 맞다고 미즈키는 정정한다. 게게로는 흐음, 하고 반응하고는 팔짱을 꼈다. 작은 눈알에 달라붙은 사지는 미즈키의 새끼손가락과 간신히 비슷할 정도로 짤뚱하고 그럼에도 매끄럽게 기능했다. 미즈키가 방금 꺼낸 말에 대해 자신이 석연찮음을 느낀다는 몸짓 언어가 통했다는 뜻이다.

…….
….
…저기.
음?
죽은 사람이라는 건, 말 그대로 죽은 사람이라는 거고.
뭔가 다른겐가?
그 사람의 유령이 나온 건 아니야.
아.

게게로는 그제야 말을 제대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미즈키의 회사에서 나온 ‘죽은 사람’이란.

사실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이야. 상갓집에도 부조금만 보냈어.
인간들은 고생이 많구먼.
…하하….

애매한 목소리. 게게로는 미즈키를 본다. 구석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이다가 입가를 만지작거리는 미즈키를 본다. 명백한 가책과 고뇌를 숨기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 미즈키라는 인간을 응시한다.

…게게로.
왜 그러는가, 미즈키?
…저기.

키타로는 옆방에서 이불을 덮고 새근새근 잠들어있고 열린 장지문 밖으로는 벌레 우는 소리가 들리고 달은 이렇게나 밝고 둥글고 인간과 요괴 사이의 공기는 이렇게나 평온하고

“그 사람을 죽인 거, 나일지도 몰라….”

누군가의 서늘한 생각이 긴 숨결을 토한다.


03.

요괴가 인간에게 씌이는 경우도 있다네. 그건 미즈키와 게게로가 같이 술을 마시던 때의 일이고 한없이 시시한 잡담이다. 사람을 홀리는게 아니라 그냥 씌여버리는 거야? 마찬가지로 돌아오는 미즈키의 말도 가벼워서 게게로는 작은 얼굴을 끄덕끄덕거렸다 그렇고 말고 자네도 몇 번인가 들은 적이 있을 테지 뭔가에 씌여버리는 바람에 말도 행동도 이상해진 사람을….

“분명 들은 적이 있어. 여우에게 홀렸다느니 뭐라느니.”
“잘 알고있군. 그 말대로 요괴 중에는 호시탐탐 인간의 몸을 노리는 부류가 있네.”
“만약 몸을 뺏긴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야?”

미즈키가 던지는 질문은 그거 큰일이네, 보다는 좀 더 문제를 깊이 응시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래서야 이상하지 애초에 이건 우리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일이고… 게게로는 그런 말을 꺼내는 대신 미즈키를 바라본다. 머리가 하얗고 눈가에 상처가 있고 술에 취하면 자주 웃는 자신의 친구.

“비참해지지. 요괴는 인간의 몸으로 장난칠 생각만 하지 그 외의 건 안중에도 없으니까.”
“하긴 그렇겠네.”
“마음 짐작 가는 데라도 있나?”
“응? 아니… 그냥, 궁금해서.”

미즈키는 천천히 화제를 바꾼다 이를테면 담벼락에 피어난 나팔꽃이나 창고 구석에 놓아둔 도구들이 녹슬어서 새로 갈아야할 것 같다는 이야기들 그 뒤에는 미즈키가 말해주지 않는 속내가 어렴풋이 보이고 게게로는 미즈키가 언젠가 말해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예상대로 친우는 약 일주일 뒤에 입을 열었다
다만 이어지는 내용만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미즈키.”
“역시 좀 갑작스러운가? 뜬금없기도 하고….”
“자네 진심인가.”
“당연하지. 이래보여도 며칠동안 고민한건데.”
“진심으로 내가 그걸 고려할 거라고 생각했나.”
“…….”
“어찌 그리 잔혹한 말을….”
“하지만 게게로.”

“인간은 어차피 죽어.”

무엇보다 나는 너와 키타로와 이와코씨에게도 너무 큰 빚을 졌어. 이렇게라도 갚고 싶다고 생각해. 지금 바로 답할 필요는 없잖아. 나도 당장 내일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하지 않으니 일단 고려는 해봐도 좋지 않을까? 진지하게 말하는데 나는 정말 그래도 상관없어. 진심이야. 그러니…

“그러니, 내가 죽으면 네가 내 몸을 써주지 않을래.”


04.

미즈키가 아이를 데리고 왔어
무덤에서 태어난 아이야

정말이야? 정말로? 서로에게 묻는 목소리는 소근소근하고 잘 들리지 않지만 자리에 모인 이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하기도 하고 히죽히죽 웃기도 하고

아주 작은 요괴의 아이야 이제 막 태어났어
저 녀석 결혼도 안 했으면서 아이부터 생긴건가

와하하하

이 녀석이 아기를 잘 기를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불안하긴 한데
그렇다고 우리가 도와줄 수도 없잖아
요괴의 아이를 그 녀석이 감당할 수는 있는 건가
할 수 있을거야 왜냐하면
왜냐하면

“너는 살아있잖아.”

누가 옆에서 팔꿈치로 어깨를 꾹 누른다. 그게 누구의 버릇인지는 잊어버렸다. 하지만 분명, 남방 어딘가에서 모두가 둘러앉았을 때 이렇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 있었다.

“살아있으니까 분명 어떻게든 되겠지.”
“이거 부럽구만.”

시선을 들면 가까스로 피운 모닥불 너머에 또 몇몇인가가 앉아있고 낡아빠진 군복을 입고있고 습한 공기가 폐로 스며들고

“애기 잘 키워라.”
“사진도 많이 찍어둬.”
“우리는 이만 가야겠어.”

어디로? 라고 물으려는데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뭔가에 걸린 것처럼.

“잊지 않아줘서 고맙다.”
“잘 지내라.”

우리 몫까지. 덧붙이는 목소리는 한없이 경박하고 주변인들이 그걸 타박한다. 몇몇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탁탁 털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허무한 건 당연했다. 잠깐만, 기다려, 가지 마. 아직 가지 마. 이렇게 가는 게 어디 있어. 언제나 내 옆에 있었으면서….

“미즈키.”

…군의관님.

“그만 일어나라. 애기 울잖아.”

*

말마따나 키타로는 울고 있었다. 허둥지둥 분유를 타오고 젖병을 입에 물린 미즈키는 작은 아이의 볼이 홀쪽해졌다 부풀기를 반복하는 걸 바라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아까 누가 날 깨우는 꿈을 꾼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

바람이 분다. 풍경이 흔들린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조금 쓸쓸한 기분이 스치다, 사라졌다.


04.

나구라 마을에서 돌아온 뒤로 미즈키는 어째 상담을 받게 되는 일이 늘었다. (혹자는 이걸 '인기가 늘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상담을 하는 자들의 말에 의하면 어쩐지 분위기가 달라진데다가 무엇을 말해도 진지하게 들어주어서… 라곤 하는데 미즈키로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냥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얼굴 어딘가가 굳어있거나 어색하게 웃게 마련이니 마음이 쓰여서 거절하지 못할 뿐인데.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미즈키도 알게 모르게 익숙해진다.
혹은 방심을 했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해요.”

미즈키의 시선이 그 사람의 왼손 언저리를 헤매인다 아무 것도 장식되지 않은 자리를

“하지만 정말로, 저는, 이제…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어서.”
“…….”

눈물을 머금은 눈이 깜박인다.

“미즈키 씨….”

저는 미혼이에요 보시다시피 약혼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이가 있어요 옛 애인이 남긴 아이에요 저는 그 사람이 아이를 가진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보고 알 수 있었어요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에요 그래서 그래서 다시 한 번 만나려 했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죽어버렸어요 그래서 아이만이라도 제가 키우고 싶었는데 그쪽 집안에서는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아요 제가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양자로 보내주지도 않을 거래요 저는 저는 정말로 그 아이가 소중한데 함께 하고 싶은데 그 아이 곁에서 많은 걸 지켜보고 아름다운 것을 잔뜩 선물해주고 싶은데

“저 좀 도와주세요….”

한 명의 인간이 울고 있다
의지하려는 사람이 어떤 심정인지는 짐작도 하지 못하고.


05.

“미즈키 씨는 가족이랑 얘기가 잘 통해?”

영업직을 하다보면 싫든 좋든 타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게 다른 회사와 얽힌 컨퍼런스니 포럼이니 하는 것이 되면 중간에 은근슬쩍 집으로 돌아올 수도 없으니 빠르게 체념하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그게 모든 일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은 아니므로 미즈키를 포함한 영업부 직원 몇몇이 숙소에서 병맥주를 나눠마시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중 한 명, 아마도 미즈키보다 대여섯살 정도 더 나이가 많을 남자가 맥주를 홀짝이며 묻는다. 지금 한창 마른 오징어를 우물거리고 있는 사람에게 그런 걸 묻나요. 미즈키는 그런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 타박하진 않았다. 남자가 금방 자기 이야기를 쏟아놓았기 때문이다.

“난 잘 모르겠어~. 십대 여자애만 둘이라서 그런가.”
“그 나이대 여자아이들은 섬세하니까요.”
“섬세한건 좋지만 아버지를 돌아봐주지도 않는다니까. 무쇠 망치처럼 단호해.”

저번에는 자기들 빨래를 아버지 빨래랑 같이 세탁하지 말아달라고 했다나. 정말이지 내가 무슨 병균도 아니고…. 투덜투덜거리던 남자는 이내 적당히 뜯어놓은 견과류를 집어먹었다. 미즈키도 그 즈음에는 오징어를 다 씹어넘겨서 입에 여유가 남았다. 그래도 이제 십 년 남짓하게 키우셨으니 감회가 남다르시겠습니다. 남은 맥주를 털어버릴 요량으로 병을 들면 금새 행동을 알아듣고 자기 잔을 들어올린 남자의 입가가 흐늘흐늘 풀어졌다.

“그야 당연히 다르지~ 갓 태어났을 때는 다다미 바닥을 온통 배로 밀면서 다니던 핏덩이였으니까.”
“저도 애를 키우게 되서 그 기분 잘 압니다. 시집 보낼 때가 되면 정말 섭섭하시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러기엔 아직 한참 멀었어.”

맥주가 흘러나간다. 병은 가벼워진다. 적당히 부풀어오른 거품이 넘칠듯 말듯 하다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가끔 그 녀석들이 전부 시집 가서 집이 비어있는 상상을 하면….”

결국 그러게 되는 것이 순리라는 듯이.

“살아도 살아있는 기분이 안 들어.”

술자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
다음날에도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가랑비가 내렸지만 역에 내렸을 무렵에는 말끔하게 그쳐있었다. 뿐만 아니라 걷힌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까지 보였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날씨가 너무 변화무쌍하군. 짐짓 하늘을 염려하는 말을 하면서도 발걸음이 가벼운 건 이후로 곧장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여간 오늘부터 쉴 수 있고, 손에는 특산물 과자를 사두었으니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을 얼른 만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딱 좋게도 날은 살짝 선선하고 길을 걸어도 왠지 피곤하지 않다. 체력이 늘었거나, 뭐, 아니면 이 나이 먹고 설레고 있다는 걸로 하자.

버스에서 내린다. 조금 걷는다. 아이들 몇몇이 깔깔 웃으면서 나무막대기를 들고 장난치며 길가를 달려갔다. 가벼운 기시감이 들지만 특별하진 않다. 아마 이전에도 마주쳤던 아이들이겠지. 나뭇가지는 어딘가에서 주워든 것일테고 그걸 검이나 창으로 여기고 있으리라. 웃음소리는 멀어진다. 바람을 맞으며 걷다보면 어느새 익숙한 지붕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키타로는 자고 있을까.
어머니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윽고 현관이다. 자신의 집이니 굳이 예의 차려 노크를 할 이유가 없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다녀왔어요, 라고 하면.

…….
…조용하다.

그러고보면 어제 돌아간다고는 얘기했지만 시간을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머니는 낮잠을 주무시거나 장을 보러 나갔을지도 모른다. 이웃집 사람과 담소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르지. 키타로는… 일단 멋대로 집을 나갈 성격은 아니니 툇마루 쪽에서 놀고 있으려나. 가벼운 추리가 이어지면서 거실로 이어지는 길을 만든다. 미즈키는 그걸 밟으면서 나아갔다. 복도를 지난다. 한 번 더 이름을 부르면서, 툇마루로 이어지는 문을 밀어젖힌다.

아무도 없다.

“키타로?”

아무것도 없다.

“…키타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문간에 걸어둔 풍경이 흔들린다. 흔들려서 맑은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무엇에도 삼켜지는 일 없이 넓은 방에 한없이 울려퍼졌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그런데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다.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해서 그림자가 어둑어둑해지고 하늘은 붉어지고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습기가 축축한 땀을 맺히게 하는데

(미즈키여 재밌는 얘기를 해줄까?)

왜 여기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아무 소리도 없는가

(유령족은 말일세)

이래서야 나는

(정말로 유령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네)

마치 방금까지는 살아있는 인간이었던 것 같다는 감각 외에는 아무것도



“미즈키! 너 우두커니 서서 뭐하니?”

느닷없이 어깨가 흔들린다. 괴상쩍은 소리를 낸 미즈키는 제 앞에 서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다리에는 묵직한 감각이 있다. 그게 키타로라는 건 시선을 내릴 것도 없이 알 수 있었다. 네가 저녁 때는 되야 돌아올 줄 알고 키타로랑 같이 느긋하게 장보고 왔는데…. 더위라도 먹었니? 찬 물이라도 한 잔 줄까? 어머니의 걱정은 실로 타당한 것이고 미즈키의 머리에 그제서야 꿀렁꿀렁 현실감이 차올랐다. 그건 약간 미지근하지만 무겁다. 비유하자면 바다 아래에 잠긴 닻과 유사하다.

“사.”
“사?”
“살아있는 줄 알았어.”
“옷 갈아입고 오렴.”

이건 뭐니? 과자? 잘됐네~ 나중에 다같이 먹으면 되겠구나. 어머니가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미즈키는 옷을 갈아입으라는 말을 듣고서도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몸을 낮췄다. 키타로가 그 움직임에 맞춰 살짝 물러났다가 와락 달라붙었다. 그 머리숱 안쪽에는 키타로의 아버지인 둥근 눈알이 있고 미즈키더러 왜 그러냐는 둥 속편한 소리를 해대고.

“키타로.”
“응.”
“과자 먹을까?”
“응!”
“어허! 밥 먹은 다음에!”

등을 맞는다.
미즈키는 그제서야 웃을 수 있었다.


06.  #멘션_온_단어로_짧은_글_연성

1. 바다

바다는 마르지 않는군. 미즈키는 해변가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누르고 앉은 채 중얼거렸다. 바다에서 논다기보다 바닷물을 삼키고 휘젓고 온갖 체험을 하고 돌아온 키타로는 도시락을 먹고 도롱도롱 잠들어있었다. 무모하게도 그 모험에 동참한 탓에 소금기에 절여져 돌아온 눈알 아버지가 동공을 깜박였다. 바다는 원래 마르지 않는다네, 미즈키여. 바다에 도착한 지 약 3시간여만에 떠오른 놀라운 발상에 대한 답변치고는 꽤 교과서스러웠다.

“응. 그렇지. 다만… 전쟁터에 있을 때.”

미즈키가 그걸 스르륵 발음하게 될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가야 했고

“동료랑 그런 얘기를 했어. 바닷물이 전부 말라버리면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냐고.”

키타로의 아버지는 조개 껍질을 찾는 이처럼 그걸 가만히 주워올려 듣는다.

“여기가 어디든 걷고 걷고 걷다 보면 분명히 돌아갈 수 있겠지… 그런 얘기.”
“그대는 이렇게 잘 돌아왔지 않은가.”
“나만 말이지.”

바다에 누가 망각을 요구하는가 누가 감히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고 자유로이 떠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무도 바다의 마음을 가늠할 수도 닿을 수도 어루만질 수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깊은 심해 어딘가에 있을 어떤 굴곡은 존재 여부조차 인식되지 못한다 누군가가 제 아무리 강하게 원하더라도 바라더라도 

결국 바다는 스스로 말라붙을 수 없으므로….

“슬픈가?”
“슬퍼. 죽은 이들에게는 이것조차 기만이겠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네."
“…응. 죽은 사람의 마음 같은 건, 나도 알 수 없으니까.”

바닷물이 짜다. 입술에 남은 소금기가 조금은 따끔거릴 정도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눈물의 농도를 알고 있던 거대한 흐름의 편린들.

“세상은 정말 불합리해.”
“음.”
“하지만 그걸 어떻게든 정산하는 게 어른의 할 일이겠지.”
“허면 그대는 무얼 정산하고 싶은가?”

키타로가 하품을 하고 입을 우물거린다. 아마도 곧 깨어날 것이다. 미즈키는 손을 들어 아이의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닦아냈지만 당연히 역부족이었다) 조금 걷어주고는 뺨에 붙은 모래알갱이를 떼어냈다. 과거에서 밀려온 무자비한 비극이 거기에 달라붙어있다는 것 마냥 상냥하게.

“무의미한 죽음들.”

모래가 모래사장으로 돌아간다.
작은 아이가 눈을 떴다.

2. 메론 소다

녹색. 녹색이라. 메론 소다는 왜 하필 녹색인걸까?

“녹차에서 따와서?”
“방향성이 전혀 다르거든?”

공교롭게도 여름이다. 비가 잔뜩 내린 뒤라서 후덥지근하다. 집안에서 문을 열어놓고 지내도 반가이 다가오는 건 습기와 더위 뿐이므로 미즈키와 키타로와 키타로의 아버지는 나란히 가게로 피신했다. 긴자 어드메처럼 세련되지는 않지만 시원한 음료와 바람을 만끽할 수 있는 적당한 곳이다. 아무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많은지 가게는 꽤 붐볐고 그게 요괴 둘과 사람 하나에게는 딱 좋은 배경음악이 되어주었다. 온갖 실없는 소리가 맥락없이 노닐기 좋았다는 뜻이다.

“애초에 메론 소다는 차갑잖아. 녹차는 뜨겁고.”
“얼음을 넣으면 시원해진다네.”
“그렇다 해도 위에 아이스크림은 못 얹지.”

키타로는 메론 소다, 미즈키는 커피. 키타로의 아버지는 크기도 크기지만 애초에 보통 인간 기준의 음료를 전부 마신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서 미즈키가 덤으로 주문한 쿠키 끄트머리를 미즈키의 커피에 적셔먹고 있었다. 요괴의 일일 커피허용량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기준이 있기는 한가?) 적어도 현기증이나 복통을 호소하지 않는 걸 보면 괜찮은 모양이다. 적어도 지금은.

“모나카가 있잖나. 아니면 찹쌀떡.”
“이거 꽤나 고루하신 취향이구만.”
“나참. 지금 고루한 게 대체 누구인가?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져보게.”

키타로의 아버지가 미즈키의 티스푼을 가져가선 휘휘 휘두른다. 키타로는 그게 웃긴 모양인지 키득키득 웃으면서 제 팔을 붕붕 휘둘렀다. 그 손에 뭔가가 쥐여져있다. 이미 반절 이상 마신 마셔버린 메론 소다에서 뽑혀나온 빨대에서 자비 없는 물방울이 튀었다.

“이 녀석, 마시던 빨대를 마구 휘두르면 안 돼.”
“메론~ 메론~.”
“신났구만. 자, 체리가 남았으니까 냠 하고 먹어버리렴.”

잔 끄트머리에 걸린 붉은 열매를 줄기만 집어서 내밀면 키타로가 그걸 얼른 먹어치운다. 낚시라도 하는 기분이라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미즈키는 제 뱃속 안쪽 어딘가에서 억누르기 힘든 슬픔이나 갈 곳 없는 분노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단지 텅 비어버린 줄기 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왜 이런 것들은 쏜살같이 달려와 심장의 중앙을 꿰뚫고 사라지는 걸까.

그건 분명 떨쳐낼 수 없기 때문이겠지. 
많은 것을, 많은 것을.

…어쩌면 단 하나를.

“미즈키여, 이제 파르페를 시켜보세나.”

“진심이냐? 잘 생각해. 이 테이블에 파르페를 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저요!”

창문 너머의 햇살은 아직 쨍쨍하다.
어찌 되었건 세상은 계속 계속 이어질거라고 증거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