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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세포신곡

[논커플링]「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세포신곡_전력_60분 『빈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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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츠기 노리유키는 앉아있다. 앉아있다고는 해도 그리 편안한 자세는 아니다. 그럼에도 익숙한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하던 그는 옛 기억을 떠올린다. 카미토모 대학 캠퍼스에서 지내던 시절,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에 앉아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딱히 손에 꼽을 만한 친구도 없었던 그는 강의실에서도 늘 외따로 떨어진 기분이었고….

 

주변은 새까맣다. 창문도 문도 칠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패닉을 일으키며 주변을 마구잡이로 더듬어보지 않는 것은 이 새까만 암흑도 매우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편안한 것은 아니지만. 

 

손은 비어있는 것 같았지만, 이내 알아차린다. 뭔가가 쥐어져 있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그 촉감으로 손에 있는 것을 눈치챘다. 카미토모 대학에 다니던 시절 주로 쓰던 필기구의 감각이다. 그대로 시선을 내린다.

 

문제가 있다.

 

사방이 새까만데도 문제가 보인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이제와서 의문을 제기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빛의 반사와 안구 시신경의 상호작용 대신 보다 불명확하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인식한다. 간결한 문장이 그에게 덤덤히 얼굴을 보였다.

 

Q. 다음 문장에서 제시된 빈 칸을 적절하게 채우시오.

하츠토리 하지메는 「     」(이)다.

 

신이

있다면

 

이렇게 악취미일 수는 없을 거야

 

그러나 우츠기 노리유키는 울지도 화내지도 않는다. 다만 습관처럼 펜을 돌린다. 그 버릇이 너무나도 생경한 것이어서 무의식적으로 옅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러고보면 옛날에는 이렇게 펜을 돌리는 것을 유일한 소일거리로 삼았던 적이 있었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문제를 응시한다. 일그러지지도 번지지도 않는 정갈한 문자들. 

 

하츠토리 하지메는 「     」(이)다.

 

눈을 깜박여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비워둔 채로 도망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꿈인지도 몰랐다. 현세에서 떨어져나가, 허무의 끝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의식이 최후에 자아낸 환상. 그걸 바라보는 동안 어둑한 침묵 속에서 여러가지 것들이 섞여 꿈틀거리다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살아있었던 때의 감정, 추억, 행동, 말, 그리고….

 

펜을 움직인다. 문장이 완성된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그 한 줄을 천천히 쓸어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대한 빈 칸 같은 암흑이 그를 감쌌다.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