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차 창작/마비노기

[루에밀레]짧은 꿈, 긴 어둠

꿈을 꿨다. 당신과 내가 평범한 연인처럼 사귀는 꿈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그토록 서로를 미워하는 대신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안아주며 애정 어린 말을 속삭였다. 서점에서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는 로맨스 소설 같은 모습이었다. 이윽고 당신의 입술이 내 입술에 부드럽게 와닿는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고 어두운 동굴 안에 쇠사슬로 묶여있는 자신을 자각했다. 몸 여기저기가 묘하게 따끔거리는걸로 보아하니 내가 깜빡 정신을 잃은 사이 당신이 또 내 몸에 흔적을 남긴 모양이다. 


불사의 몸을 지닌 밀레시안인데도 불구하고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건 거기에 당신의 집착이 서려있기 때문일까. 몸을 살짝 뒤척이자 허리를 감싸안고 있는 팔이 나를 단단히 조여온다. 한번은 사슬을 부수고 도망쳤던 탓에 이렇게 나를 안고 잠드는 것이 당신의 습관이 되었지. 나는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당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조심스레 뺨을 쓰다듬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잠들어있는 당신은 쉬이 깨어날 것 같지 않다. 혹 당신도 나와 같이 부드러운 연인의 꿈을 꾸고 있을까.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보다 더 어둡고 질척거리고 날카롭고 뒤엉킨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니 이만 잠에서 깨어나 나에게로 돌아와, 루에리.

나는 가만히 속삭이며 그의 곁에 마주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