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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가정교사 히트맨 리본!

[바질츠나]비와 고양이와 민들레 화관

아침에는 분명히 맑았던 하늘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적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늦은 오후무렵이 되자 어디선가 슬금슬금 몰려든 먹구름에 의해 완전히 가려져 버렸다.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듯한 그 모습을 걱정스런 시선으로 올려다보다가, 바질은 등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를 듣고 몸을 뒤쪽으로 돌렸다. 불이 켜지지 않아 어둑어둑한 복도에 검은 사신처럼 서있는 그림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심약한 사람이었더라면 단숨에 공포에 질렸을 법한-그리고 그렇기에 더더욱 '그'에게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등장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대신에, 바질은 침착한 목소리로 그림자의 이름을 불렀다.

 

"ㅡ안녕하세요, 리본씨."
"챠오스, 바질.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던거야?"
리본의 질문에, 바질은 새삼스레 자신이 조금 전까지 계속 올려다보고있던 하늘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하늘을 회색빛으로 메우고있는 짙은 구름이 금방이라도 폭우를 쏟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불길하게 구물거리고 있었다.

 

"...하늘이 어쩐지 심상치않게 느껴져서..."
"아아, 그러고보니 한바탕 쏟아지겠군."
그제서야 깨달은 듯이 말하고, 리본은 '비가 내리면 땅이 젖는다'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평탄한 어조로 또 다른 말을 이었다.

 

"츠나녀석, 아마 오늘 우산없이 나갔을텐데."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ㅡ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창가 너머의 하늘을 향하고 있던 바질의 고개가 복도에 서 있던 리본에게로 되돌려졌다. 그 경이로운 반응속도에 씨익 웃은 다음, 리본은 쓰고있던 중절모의 앞쪽을 약간 내리눌러 자신의 표정을 가리며 말을 계속했다.

 

"이거 큰일인데. 비가 오기 전에 녀석이 돌아오면 상관없지만, 보아하니 비가 내리는 게 녀석이 돌아오는 것보다 빠를거야."
"...사와다님은, 대체 어디에 계신 걸까요...?"
"글쎄, 간만의 휴일이라 경호도 없이 빠져나갔으니 '나'는 잘 모르겠지만ㅡ"
무언가 다른 존재는 알고있다는 듯한 어조의 말꼬리가 길게 늘어져 바질이 의아함을 느낌과 동시에, 리본의 품 속에서 뭔가의 기계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ㅡ'이거'라면 알고있을지도 모르지."
"....?"
납작한 핸드폰처럼 생긴 그것은 등장과 동시에 바질의 손으로 던져졌고, 갑작스런 패스에 당황하며 그것을 받아든 바질은 기계의 외형이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하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기계의 한쪽에 있던 스위치를 연속적으로 두번 눌렀다. 기계 특유의 전원이 들어가는 소리가 2초 정도 이어진 뒤 화면이 푸르게 물들면서 그 위에 무언가의 형태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윽고 어딘가의 지도와 그 한 구석에서 붉게 점멸하고있는 점의 모습으로 변했고, 그 과정을 모두 목격한 바질이 설마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올리자 여전히 중절모로 표정을 가리고있던 리본이 언제나와 같은 -아니, 조금은 즐거워하는것 같기도 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녀석도 명색이 봉골레의 보스니까, 이 정도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기본인거지."
너무나 당당해서 도리어 참견할 수 없는 리본의 말에 쓰게 웃다가, 바질은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고 조금 놀란 표정으로 리본을 바라보았다. 바질의 그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리본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께를 으쓱이며 말했다.

 

"때마침 수호자들이 모두 외국에 나가있는데다 나는 다른 볼일이 있어서 말이지- 마음 같아선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만 보스라는 녀석이 비를 맞고 감기에 걸리기라도 하면 망신스러우니까."
말의 내용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쓰게 웃은 뒤, 바질은 추적용 GPS를 한 쪽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리본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ㅡ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부탁한다. ....정말이지, 아직도 다메인 녀석이야."
그렇게 말하며 리본은 나타났을 때와 똑같이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고, 바질은 마지막으로 한 번 하늘을 올려다 본 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그리고 거리로 나온지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기계에 떠올라있는 지도를 따라 걸음을 옮기고있던 바질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감지하고 어느 골목길 근처에서 발을 멈췄다. GPS의 화면에는 맨 처음 스위치를 켰을 때와 똑같은 지도와 현재 위치에서 그 곳으로 가는 방향이 나타나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한 구석에서 점멸하고있는 붉은 점-츠나의 위치를 나타내는- 또한 맨 처음과 같은 위치에서 깜빡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츠나가 적어도 10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조금의 미동도 없이 같은 자리에 계속 서있다는 의미였고, 화면의 지도가 도시의 외곽에 있는 공터 부근을 표시하고 있음을 알고있는 바질은 츠나가 왜 그런 곳에 멈춰있는가를 의아하게 여기다가ㅡ

 

'...간만의 휴일이라 경호도 없이 빠져나갔으니...'

 

...갑자기 세상의 온도가 3도정도 하락한듯한 오한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경호도 없이'

 

ㅡ지나친 걱정이다. 사와다님은 예전에도 몇 번인가 호위없이 거리로 나가신 적이 있으시고, 한 두번정도 길거리의 트러블에 휘말리신 적도 있지만 그때마다 요령을 발휘해 무사히 빠져나오셨으니까. 바질이 그렇게 되뇌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질의 머리 한 쪽에서는 '부정적인 상황'이 멋대로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예를들면,


「분명 여태까지는 잘 돌아오셨지만,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라던가,


「우연찮게 적대조직의 조직원과 마주치신 것은 아닐까?」라든지,


혹은 「이미 너무 많은 부상을 입어서, 구조조차 요청할 수 없는 상태이신 건 아닐까」같은ㅡ

 

실로 공포스럽기까지한 상황이 머릿 속에서 만들어졌을 때, 바질은 이미 자신이 있던 그 자리에서 지도에 표시되어져있는 공터를 향해 전심전력으로 뛰어가고있었다. 손안에 꽉 쥐어져있는 GPS의 화면에서 여전히 똑같은 자리에 있는 붉은 점이 무심하게 깜빡거리는 가운데, 하늘에서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무겁게 울려퍼졌다.

 

 

=

하늘에서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져, 츠나는 멍하니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다. 어느사이엔가 완전히 흐려져있는 하늘이 보였다. 
이런, 비가 오면 곤란한데.
그런 생각을 하며, 츠나는 다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양팔로 감싸여있는 복부 근처가 온통 얼룩져있었다. 
어쩌지. 이거 쉽게 질 것 같지가 않은데. 리본한테 혼나겠다. 혼나는 건 싫은데.
입술만을 움직여 투명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린 뒤, 츠나는 맥이 빠진 것처럼 눈을 감았다. 암흑 속에서 뭔가 차가운 것이 피부로 떨어지는게 느껴졌다.

 

 

=

달려오던 도중에 두세명을 밀쳐내고 한 명과 부딪칠 뻔한 바질이 간신히 GPS가 가리키는 지점에 도착했을 무렵 하늘은 굵은 빗방울을 제법 쏟아내고 있었고,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며 들고있던 1단짜리 우산을 펼친 뒤 눈 앞의 공터로 뛰어든 바질은 공터의 중앙 부근에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주저앉은 채 내리는 비를 죄다 맞고있는 츠나를 발견하고 안도감과 불안함이 서로 뒤섞인 기이한 감각을 느끼며 츠나를 향해 달려갔다.

 

"ㅡ사와다님!!"
바질의 외침에 츠나가 느릿한 속도로 고개를 돌렸고, 무사해보이는 모습에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고 했던 바질은 둘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숨을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츠나의 바로 앞에 다다랐을 때, 바질은 자신이 느꼈던 이상함의 근원을 발견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자신을 말없이 올려다보고있는 츠나의 복부 근처가, 그곳을 감싸고있는 양팔이 무색할 정도로 피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참상에 잠시 넋을 잃었다가, 바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닫고 서둘러 츠나를 향해 무릎을 꿇어 몸을 숙이며 말했다.

 

"사와다님, 괜찮으십니까? 어디서 이런 상처를....."
"상처....?"
다급한 바질에 비하면 느긋하게 느껴지는 속도로 중얼거리고, 츠나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틀려, 바질. 이건 내 상처가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츠나는 혼란스런 표정을 짓고있는 바질을 향해 아랫쪽으로 보라는 눈짓을 해보인 뒤 복부를 감싸고있던 양팔중 위쪽에 있던 오른팔을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반쯤 눈을 뜬 채 죽어버린 새끼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산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

"여기, 가끔 내가 놀러오는 곳이야. 조용한데다가 사람도 별로 오지 않거든."
바질의 도움을 받아 공터 한 쪽에 버려진 나무상자에 걸터앉은 츠나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늘도 왔는데, 어째서인지 이 고양이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고 있었어."
뭔가를 잘못 먹은 것일까, 아니면 철모르는 아이들이 장난삼아 위험한 무언가를 먹인 것일까ㅡ 어느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양이는 많이 괴로워하고 있었고, 그 모습에 고양이를 빨리 병원에 데려가야한다는 생각을 한 츠나가 피를 토하던 고양이를 조심스레 안아올린 순간.

구엑, 하고 고양이가 이때까지와는 비교도 되지않을 정도의 피를 가득 토해내고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떤 다음, 그대로 힘없이 축 늘어져버렸다.


죽어버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고양이가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져서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주저앉았더니 이번에는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어. 그래서..."
이때까지 이러고 있었어. 바보같지.
그것으로 츠나는 모든 설명을 마쳤고, 옆에서 츠나에게 우산을 받쳐주며 그 설명을 듣고있던 바질은 무언가를 말하려 몇 번이나 입을 뻐끔거린 뒤에야 겨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럼, 그 고양이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여기 어딘가에 묻어주려고. 비가 그치면."
결코 멈추지 않을 듯한 빗줄기 속에서 츠나가 말했고, 그 옆모습을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던 바질은 문득 나무상자 근처의 땅에 노란 민들레가 피어있음을 발견하고 허리를 굽혀 그중의 몇 송이를 꺾어냈다. 츠나가 의아한듯이 눈을 깜박였고, 바질은 우산대를 팔꿈치에 끼운 채 꺾은 민들레를 엮어내기 시작하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 묻어주기에는, 너무 쓸쓸하니까요."
"....."
빗소리로 가득 찬 정적 속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민들레로 엮어진 꽃의 고리가 완성되었고, 그것을 조심스레 죽어있는 고양이의 머리에 씌운 다음 그때까지 반쯤 뜨여져있던 고양이의 눈을 감겨준 바질이 자신의 상체를 원래 위치로 되돌리는 동안, 그 모습을 쭉 지켜보던 츠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바질은, 그런거 잘 만드는구나."
"아, 아뇨.... 아직 서툽니다. 다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응, 괜찮아. 평화스러워 보이는걸."
화관을 쓴 채 눈을 감고있는 (그리고 입가에는 피얼룩이 져있는) 새끼고양이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한 뒤, 츠나는 고개를 들어 빗줄기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공터의 건너편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저기, 바질."
"네?"
"만약에, 만약에 말야...."
츠나가 뒷말을 이으려 한 순간 갑자기 주위가 새하얗게 물듬과 동시에 폭죽을 마구 터뜨리는 듯한 굉음이 주변을 뒤덮었고, 그 때문에 바질은 굉음에 가려져버린 츠나의 말을 듣지 못했다.

 

=
비는 한두시간정도가 지난 뒤 말끔히 그쳤고, 츠나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진해서 땅을 파는 역할을 맡은 바질이 빗물을 머금어 많이 부드러워진 흙을 파내어 조그만 구멍을 만들었다. 화관 쓴 새끼고양이의 시신은 구멍에 알맞게 들어갔고, 짧은 기도를 거친 후 그 위에 다시 흙을 꼼꼼하게 덮는 작업을 모두 끝낸 츠나는 조금은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몸을 일으킨 바질을 향해 둘 다 옷을 더럽혔으니 큰일이라고 말하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그 어린 아이같은 표정에 미소짓던 바질은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배로 혼날거라는 츠나의 말을 들으며 츠나의 뒤를 따르다가ㅡ

 

"저, 사와다님. 천둥이 쳤을 때, 소인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셨던 건가요?"
"......아,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 습니까..."
잠시 말꼬리를 흐렸다가, 바질은 츠나가 홀로 저 만큼이나 멀리 가버렸음을 깨닫고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예를 들자면,
「왠지 가까운 시일내로 오늘 있었던 일이 반복될 듯 한」그런ㅡ

 

 

 

'...만약에 내가 죽으면, 나에게도 화관을 만들어 줄래?'

 

 

ㅡ불길한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