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로그/탐정의 속삭임(2014)
2017. 12. 11.
전갈의 독백03.
피아노를 누르는 손을 본다. 하얗고 까만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은 부드러운 살구색이다. 그 네번째 손가락에, 조금만 힘을 주면 금방 부러뜨릴 수 있을 것 같은 가느다란 반지가 있다. 햇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것, 바람이 불 때 머리카락을 넘기는 손가락에서 은은히 빛나는 것. 약혼반지야, 하고 당신은 웃는다.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저런 것을 가지고 저렇게 웃을 수도 있는건가.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른다. 얼마 되지도 않아보이는 건반은 이상할 정도로 넓어서 자주 길을 잃는다. 내 손가락 아래에서 엉망진창이 된 음악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당신이 말한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박자에 맞춰서. 조금씩 해보자. 피아노 위에 올려진 메트로놈이 천천히 흔들린다. 조금 숨을 들이쉬고, 건반을 누른다. 툭. 아무 소리도 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