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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로그/탐정의 속삭임(2014)

전갈의 독백01

샤워기의 물은 언제나 찬물로 튼다. 오랜 습관이다. 온수는 차라리 없다고 생각하는게 더 나은 곳에서 살다보면 그렇게 되는 법이다. 오히려 번잡스레 수도꼭지를 돌릴 일이 없는데다 주위에 증기가 끼지 않으니 몸의 상처를 확인하기 편하다. 굳이 온수를 틀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몸을 대충 씻어낸 뒤 거울을 보며 몸의 상태를 확인한다. 어제와 오늘. 둘 다 별다른 사건이 없었기에 특별한 상처나 부상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목에 달라붙은 검은 선이 거슬렸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은 사이 부착된 목걸이는 마치 하나의 절취선 같다. 이대로 누군가가 머리를 쥐고 뜯어낸다면 그대로 목과 몸이 분리되어 떨어져나갈 듯한 기이한 기분마저 든다. 물론 상식적으로 그렇게 될 리는 없다.

샤워를 그만두고 밖으로 나와 벗어둔 옷을 입은 뒤 담배에 불을 붙인다. 방 안에는 변변한 환기 장치도 없고(욕실에 엇비슷한게 보이긴 했지만 터무니없다.) 창문도 열리지 않는 탓에 천장에는 내가 피운 담배연기가 고여있다. 비흡연자가 저걸 보면 까무라치겠지. 불을 붙인 담배를 빨아들여 훅 뱉어내자 탁한 연기 한 줄기가 슬금슬금 천장에 달라붙었다.

생각해본다. 

여기의 주인새끼는 나름의 정보력이 있다. 자료실의 자료들과 내게로 보낸 초대장의 "문장"을 보면 명확하다. 사정은 아마 다른 탐정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저택에서 벌어질 "사건"을 두고 보상과 제한을 내걸었다. 보상은 10억의 돈. 제한은 터지는 폭탄 목걸이. 플러스, 인질같지도 않은 인질. 기한을 자신이 질리기 전까지로 못박은 것은 저지를 놈은 눈치보지 말고 빨리 저지르라는 독촉이다. 분명 그걸 위한 물밑 준비도 어느 정도 해놨겠지. 이런 정보력을 가져놓고도 그렇게 하지 않는 쪽이 이상하다. 사건은 일어날 것이다. 늘 그렇듯이.

그러나 이대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희박한 확률이다. 동시에 높은 확률의 죽음이기도 했다.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코에 피냄새가 확 감긴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런 인생이었다. 범죄를 위해 몰아넣어진 우리에서 아무 범죄도 일어나지 않아 맞이하는 폭사라면 오히려...

.......

그만두자. 이루어질 리 없는 가정이거니와 내가 여기 온 것은 그런 멍청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담배를 마저 다 피워 없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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