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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기타

[나츠메 우인장/타누나츠]여름과 가을의 틈새, 차가운 노을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곳에 꽉 차있는 거은 옅은 오렌지빛의 노을.
따스할 것 같은 빛깔에 무심코 손을 내밀어봐도 내민 손바닥에는 슬플 정도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덧없이, 손을 거두었다.

 

 

=

 

 

"나츠메말야? 오늘은 학교 안 왔어."
점심시간. 다음교시에 있을 영어수업에 필요한 사전을 빌리기 위해 나츠메의 반을 찾아왔던 타누마는, 나츠메와 자주 어울려 돌아다니던 2인조 중 한 명-이름이 키타모토였던가-으로부터 나온 의외의 사실에 눈을 깜박였다.

 

"안 왔다....니, 어째서?"
"감기에 걸렸다는 모양이야. 요즘은 한창 환절기니까 말이지."
그러고보니 요즘 부쩍 주변 학생들중에서 코를 훌쩍이거나 재채기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던 것을 기억해내고, 타누마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뒤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는 키타모토에게 짧은 감사의 말을 전하며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떼어냈다.

 

 

 

 


기분탓인가,
왠지 모르게 가슴 한 켠이 싸늘하게 아려왔다.

 

 

 


=

 

결국 나츠메가 아닌 다른 아이에게서 빌린 영어사전을 책상 오른켠에 올려둔 채 영어담당의 오카무라에게 지목당한 불우한 희생양이 교과서의 본문을 읽는 것을 멍하니 흘려듣고만 있다가, 타누마는 오카무라가 자신을 유심히 지켜보고있음을 깨닫고 황급히 허공을 더듬던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려 교실 전체에 BGM으로 깔려있는 목소리가 읽고있는 문장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간의 헤메임 끝에 마침내 타누마가 소년이 읽고있던 문장의 끝부분을 발견했을 때 오카무라가 실로 절묘한 타이밍으로 소년의 낭독을 끊고 타누마를 지목하며 그 다음 문장을 읽을 것을 명했고, 그 아슬아슬한 지목에 타누마는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음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Leichel, Mike는 왜 보이지 않는거지?」"
"「오, 너는 몰랐던 모양이구나, 그는 감기에 걸렸어.」"
교과서에서도 감기가 유행인 모양이다.

 

"「이런,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구나.」"
"「그래, 난 그가 빨리 낫길 바래.」"
다음 문장을 읽기 위해 시선을 움직이다가, 타누마는 방금 자신이 읽은 대화문 아래 쪽에 그려져있는 삽화를 발견하고 무심코 시선을 멈췄다. 교과서 특유의 그림체로 그려져있는 그 삽화에는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있는 2명의 소년소녀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과 한 명의 소년이 침대에 누워 끙끙대는 장면이 그려져있었다. 평소같았으면 아무렇지도않게 지나쳤을 그 삽화가 왠지 모르게 시선을 잡아끄는 듯한 느낌이 들어 타누마가 좀체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 오카무라가 몇 번인가의 헛기침 소리를 냈고, 그 소리를 들은 타누마는 거기에 섞여있는 약간의 언짢음을 읽어내고 서둘러 다음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5분정도의 시간이 지난 다음 Mike가 두 사람을 병문안을 받은 다음 날 완전히 쾌차되었다는 문장을 읽음으로써 모든 본문을 읽은 뒤, 타누마는 가벼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어께를 늘어뜨렸다가 문득,

 

 

'...나츠메, 문병이라도 가볼까...'
그런 생각을 했다.

 


=

 


"...타카시, 저길 보렴."
"봐, 하늘이 예쁜 색이 되어있지?"
"저건 '노을'이라고 하는 거란다."
"그래, 엄마의 이름이랑 똑같지?"

(*노을은 일본어로 '유우히'라고 읽습니다.)

 

"노을처럼 따스한 빛을 지닌 사람이 되라고, 엄마의 엄마가 정성껏 지어준 이름이란다."
"엄마는 이 이름이 정말 좋아...."

응, 엄마.
나도 엄마의 이름을 좋아해.
엄마의 이름은, 굉장히 부드러운 느낌인걸.


...하지만 엄마, 한 가지 틀린 것이 있어.

노을은, 전혀 따스하지 않아.

 

봐, 이렇게나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도ㅡ


ㅡ이 손바닥은 그저 차가울 뿐이잖아.

 

 

 

 


"........."
터무니없이 멀게 느껴지는 과거의 심연에서부터 현실의 수면으로 떠오르는 의식을 느끼며, 나츠메는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시각은 이미 늦은 오후에 이르렀는지 창문으로 스며들어온 노을이 온 방을 꽉 물들이고 있었다. 그 빛을 마치 방에 새로 바른 벽지를 바라보는 듯한 어색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나츠메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머, 타카시군. 몸은 좀 괜찮니?"
"아, 네. 덕분에 많이 나아졌어요."
"다행이구나~   아참, 친구가 문병을 왔단다."
"친구.....?"
토코 씨의 말에 섞여있는, 아직까지는 조금 덜 익숙한 단어를 나츠메가 의아하게 반복하며 몸 상체를 일으키는 사이, 열려있던 문과 토코 씨의 몸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타누마...."
나츠메의 목소리에, 타누마가 조금 쑥쓰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가벼운 인사를 하듯이 한쪽 손을 들어올렸다.

 

 

 

=

 

"...미안, 혹시 폐가 됐어?"
"아니, 전혀."
'그럼 나는 잠깐 시장에 다녀올테니까, 천천히 이야기 나누렴.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라는 말을 남기고 토코씨가 방을 나간 직후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타누마에게 싱긋 웃으며 그렇게 대답해준 뒤, 나츠메는 뒷말을 덧붙였다.

 

"마침 열도 깨끗하게 내린 참이니까 말야."
그리고 뭣보다 매일같이 민폐를 끼치고있는 것은 자칭 경호원 타칭 뚱보고양이라고 불리우고 있는 야옹선생뿐이다.

 

"그래....? 다행이다."
진심으로 안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뒤, 타누마는 여전히 이부자리에서 상체만 일으킨 자세로 앉아있는 나츠메를 향해 오늘 하루동안 있었던 신변잡기적인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얼룩고양이가 잠을 자고있는 것을 보았다. 길 모퉁이의 한 구석에서 뭔가의 옷자락을 발견했다. 뭐였을까. 오전에 감기가 너무 심해져서 조퇴한 학생이 있다. 점심시간에 네가 학교에 오지않은 것을 알고 깜짝 놀랏다. 5교시에 영어의 오카무라에게 지목당해서 조금 긴장했다. 청소시간에 교실로 벌 한 마리가 날아들어와서 모두들 기겁했다-까지의 일을 말하다가, 타누마는 문득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감지하고 이야기를 멈춘 채 나츠메를 빤히 바라보다가 갑작스런 타누마의 침묵과 응시에 나츠메가 의문을 드러내려던 순간 입을 열어

 

 

"....나츠메, 어째서 감기에 걸렸으면서 반팔을 입고있어?"
ㅡ라고 질문했다.

 

 

".....응?"
그리고 나츠메는, 갑작스럽다고 해도 좋을 타누마의 질문에 커다랗게 뜨인 눈을 몇 번 깜박거리다가 이윽고 작게 키득거리며 웃은 뒤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타누마의 질문에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타누마. 아직 여름이니까 당연하잖아?"
"아니... 지금은 9월 말인데다, 며칠 전에 내린 비 때문에 기온도 완전히 떨어졌어. 엄연한 가을이라고?"
"그럴 리가....."
아직 여름이잖아.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나츠메는 팔에서 느껴지는 어떤 오한을 느끼고 희미하게 떨리고 있는 양손으로 팔뚝을 붙잡았다. 자그마한 소름이 잔뜩 돋아나있는 피부의 감촉이 무서울 정도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소름은, 어떤 '오한'을 느꼈을 때에 생기는 것.
그것이 돋은 이유는, 뒤늦게서야 차가운 기온을 감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이외의 다른 오싹한 무언가를 무의식중에 깨달아버리고 말았기 때문일까ㅡ?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한 순간, 나츠메는 싸늘한 오한이 몸 전체를 뒤덮음과 동시에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 격렬한 것이 거세게 휘몰아치는듯한 기이한 감각을 느끼고 발작적으로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나츠메? 어이, 나츠메!! 왜 그래?!"
분명 바로 옆에 앉아있을 타누마의 목소리가, 마치 천리는 떨어져있는 것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
"타카시, 이번 가을에는 다 같이 단풍놀이를 가자."
"온 산이 울긋불긋하게 물들어 있어서, 정말 아름다울거야."
"예쁜 낙엽을 발견하면 주워와서 책갈피로 만들자꾸나."

엄마가 그해 여름, 몇번이고 반복해서 말했던 그 약속은, 집 앞의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물들 무렵 깊고 푸른 물 속에 끝없이 가라앉아서 결국은 이루지 못할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진 것은,
너무나도 차가운 것들의 연속.

 

 

"대체 넌 왜 '뭔가가 보인다'고 말하는 거니?"
차갑다.

 

"이 거짓말쟁이!!"
"저리 가! 기분 나빠!!"

차갑다.

 

"이봐, 어째서 나야? 다른 녀석들도 있잖아!"
"난 벌써 저번에 한번 맡았어!!"

차갑다.

 

"좀 봐줘, 벌써 1년째라고....? 더 이상은 못 견디겠어!!"
차갑다.

 

"가을까지다, 이번 가을까지만 버티면 저런 녀석과는...."
차갑다.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소름끼쳐."
너무, 차갑다.

 

"빨리 헤어지고 싶어, 저런 음침한 녀석."
차갑고 차가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견딜 수가 없어서, 언젠가의 노을에 손을 뻗었다.


그 손바닥에 느껴졌던 것은,

최후의 최후에 간신히 딱 한 번 붙잡을 수 있었던 엄마아빠의 손에서 느껴졌던 것과 똑같은, 메마른 차가움 뿐.

 


.....싫다.
정말로 싫다.

 

차가운건 싫다.
혼자가 되어버리는 것도 싫다.

 

가을같은 건 정말이지 너무 싫다.
가을따위는 차라리, 오지 않는 편이 좋았을 텐데.

 


아아- 엄마, 아빠.
어째서 그런 차가운 곳에서, 그렇게나 차갑게 죽어버린거야?

 

 

ㅡ나는, 엄마아빠랑 좀 더 좀 더 계속해서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 싶었어.....!!!

 

 

 

 

 

 

"흐, 윽."
"......."
문득 정신을 차리고보니 누군가가 자신을 껴안은 채로 느리게 등을 쓰다듬어주고 있어서, 나츠메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구 흘러넘친 눈물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으며 조금 가라앉아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타누마."
"아니,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느정도 의지가 되는 타누마의 말에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희미하게 웃은 뒤, 나츠메는 자신을 껴안고있는 타누마의 몸에 슬며시 머리를 기댔다. 사람이 지니고있는 온기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 온기를 붙잡듯이 타누마에게 매달리며, 나츠메는 입

을 열었다.

 

"내 부모님은, 가을에 돌아가셨어."
움찔, 하고 타누마의 몸이 경련하는 것이 느껴졌다.

 

"교통사고였지. ....그 이후로 난 계속 가을 무렵에 사는 곳을 옮겨야 했어."
가끔 예외도 있었지만.
덧붙이고, 나츠메는 메마른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서 언제나 가을 무렵이 되면 억지로라도 여름옷만으로 버티려 하다가 감기에 걸려버리곤 했지.  ....바보같지. 그런다고 해서 가을이 오지않는 것도 아니고- 그런다고해서 친척들이 나를 계속 데리고 있어주는 것도 아닌데-"
말하다가, 나츠메는 목이 메이는 느낌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입을 다문 채 묵묵히 나츠메의 말을 듣고있던 타누마는, 나츠메에게 뭔가를 말하려는 듯이 입을 몇 번인가 뻐끔거리다가 이윽고 어떤 확신을 가지고있는 뚜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츠메, 토코씨들은 분명히 좋은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헤어진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츠메가 자신의 품안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느끼며, 타누마는 자신의 팔에 조금 더 힘을 준 뒤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만약-정말로 만약의 경우에, 네가 여기를 네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떠나야하는 상황이 오면, 내가 반드시 너를 도와줄게."


나도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으니까.


마지막,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채 타누마가 나츠메를 위로해주는 사이, 타누마의 말을 듣고있던 나츠메는 어느사이엔가 자신이 온 방에 들어차있는 노을의 빛에서 약간의 따스함을 느끼게 되었음을 깨닫고ㅡ

 

 

 

 

ㅡ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