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이상한 것들을 봤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것들은,
솔직히 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째깍, 하고 벽에 걸려있던 시계가 내는 시침소리를 들으며 타누마는 살짝 기지개를 켰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늦은 오후의 황혼을 잔뜩 머금고있던 교실의 바닥에 드리워져있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가 다시 원래 크기로 되돌아왔다.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글씨를 썼던 탓인지 뻐근하게 결려오는 오른쪽 어께를 왼손으로 몇 번 두드려준 뒤, 타누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적막에 잠긴 교실에 의자가 바닥을 긁는 메마른 소리가 잠시 울려퍼지다가 금새 사라졌다. 주번일지를 쓰느라 다른 때보다 늦어버린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종례가 끝난지 2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확연히 달라진 교실의 분위기에 약간의 경외심을 느끼며, 타누마는 방금 전에 작성을 완료한 주번일지를 한 손에 들고 천천히 교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도 교실과 마찬가지로 오렌지 빛의 정적에 잠겨있었고, 그 정적의 무게에 약간 위축된 타누마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킨 뒤 앞을 향해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학교건물이 미묘하게 낡아있는지 나무로 된 바닥이 타누마의 발 밑에서 목재 특유의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어딘가 오래된 추억을 닮은 그 소리를 들으며 계속 걸어가다가, 타누마는자신이 조금 전에 지나친 다른 반의 뒷문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교실의 창가자리에 누군가가 엎드려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몸을 멈춘 다음 천천히 뒷걸음질 쳐 교실내부를 다시 한번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확실히, 그 곳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 하나가 창문을 바라보는 자세로 가만히 엎드려있었다. 가끔식 가슴께가 아래 위로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잠을 자고있는 모양이었다. 일반적이라면 학생이 텅텅 빈 교실에서 이제껏 자고있다는 사실에 놀라야 할 테지만, 타누마는 그렇게 하는 대신에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잠겨져있는 뒷문을 지나 아직 자물쇠가 걸려있지 않은 앞문을 살짝 열어 교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교실은 학교내의 다른 공간과 마찬가지로 짙은 침묵에 잠겨있어 평소에는 그다지 의식하지 못하는, 실내화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마저 굉장히 크게 들릴 정도였다. 그런 침묵 속에서 마치 성스러운 신전에 함부로 침입한 도둑같은 발걸음으로 잠들어있는 소년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뒤, 타누마는 역시나, 하고 말하는 듯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나츠메."
하고, 조용히 잠들어있는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깊이 잠들었는지 나츠메는 단순히 이름이 불리우는 정도로는 깨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조금 흔들어깨워볼까 생각하던 타누마는 너무나도 곤히 잠들어있는 나츠멘의 옆얼굴을 보고 곧장 마음을 바꿔 나츠메의 앞자리에 있는 의자를 빼내어 거기에 앉았다. 그 도중에 약간의 소음이 생기긴 했지만, 다행히 나츠메를 잠에서 깨울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
ㅡ그런데, 뭐랄까.
'역시'라고 하기에는 좀 뒤늦은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확실히.
나츠메는 굉장한 미인이었다.
만약에 나츠메가 평범한 소년이었거나 혹은 여자아이였다면 신발장이 러브레터로 만원상태를 이루는 일이 매일같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만약의 이야기로, 지금 현재의 나츠메는 '어딘가 꾸민 것 같은 미소를 짓고있어서 가까이 가기 어렵다.'는 평판을 듣고있는 처지였다.
'...그렇지만, 어째서지?'
마음 속에서부터 솔직히 떠오른 의문을 속으로 곱씹으며, 타누마는 고름 숨을 내쉬고있는 나츠메를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나츠메는 웃을 때 어딘지 모르게 꾸며낸 듯한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타누마는 여지껏 단 한번도 그 웃음이 기분나쁘다거나 차갑다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듯한 그 미소가 터무니없이 아름답고- 그리고 몹시 안타깝게 느껴져서, 언제나 언제나 나츠메가 그렇게 웃는 것을 보면 왠지 조금 슬퍼졌던 것이다.
"....좀 더, 진심으로 웃어주면 좋을텐데."
자기도 모르게 새어나온 진심에 서둘러 입을 막았다가, 타누마는 나츠메가 여전히 잠들어있는 것을 보고 슬며시 입에서 손을 떼어낸 뒤 잠시 후 더없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츠메, 나는 네가 좀 더 진심으로 웃어줬으면 좋겠어."
마치 고백과도 같은 말이 텅 빈 교실 안을 울리다 사라졌고, 그 소리의 여운을 쫓듯이 잠시 침묵하던 타누마는 시계의 초침소리를 들으며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의 네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안타까운 느낌이 들어서.... 왠지 슬퍼져."
거기까지 말하고, 타누마는 망설이듯이 말을 멈췄다가-
이윽고 마음을 굳게 다짐한 표정으로.
"네가 진심으로 웃어주는 걸 본다면, 틀림없이 기쁠거야.
왜냐하면,"
잠시 침묵.
"나는, 너를."
어디선가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와,
속삭이듯이 중얼거린 마지막 말을 희미하게나마 덮어버렸다.
=
그로부터 30분정도가 지난 뒤에야 나츠메는 눈을 떴고, 다른 반인 타누마가 자신의 앞에 있는 것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타누마의 전후설명을 듣고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둘은 같이 교실의 문을 잠그고 학교를 나서 얼마간의 거리는 담소와 함께 걷다가 길목의 중간에 있는 '나나츠지야'라는 가게에서 만쥬를 하나씩 사먹은 뒤(중간에 둥글둥글한 고양이가 난입했다.)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던 타누마는,
그 갈림길에서 헤어지기 직전 나츠메가 살짝 중얼거린.
"ㅡ조금쯤은 노력해볼게."
라는 말의 의미를 지나칠 정도로 길게 생각하다가, 자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는가를 깨닫고 길의 중도에서 걸음을 멈춘 채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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