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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글쓰기 연습 모임]소녀의 믿음

2009년 12월 9일 작


*


소녀는 교회에서 성경을 읽고있었다.

매일매일 그곳에서 하루종일 성경을 읽고있었다.


'천사가 되고싶다'는 소원을 안은 채.


소녀는 어릴 적부터 세상의 더러운 모습을 너무나 많이 목격했다. 음주와 폭행, 욕설과 마약중독, 창부와 강도와 고리대금업자와 깡패들, 시궁창 쥐와 곰팡이 슨 빵과 핏물과 담배연기와 길바닥에 들러붙어있는 각종 오물 같은 것들. 뒷골목의 한 구석에서 그런 것을 바라보고 자라난 소녀가 용케도 그 중의 일부를 구축하는 여자가 되지 않은 것은 아주 어렸을 적 길거리에서 만난 한 사람의 수도사가 해준 말과 그가 건네준 성경 덕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새하얀 날개를 지니고 있단다.

그 사람이 세속의 더러움에 더럽혀져 사악한 인물이 되면 그 날개도 점점 까맣게 변하지.

그렇게 되면 나중에 그 사람에 죽었을 때 하늘로 올라가 천사가 되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져 평생 고통받게 되지.


그렇게 되고싶지 않다고? 그렇다면 열심히 신을 믿으렴.

자비로운 신이 네 날개에 묻은 얼룩들을 조금씩 벗겨주실 테니까.」


소녀는 그 말을 믿었다. 맹목적으로 믿었다. 그렇기에 이 허름한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바라보며 매일매일 성경구절을 낭독했다. 신이 이 땅에 남기신 말을 눈으로 쫓고 입으로 외고 귀로 들으며 자신의 믿음을 강고히 하려 노력했다. 매일매일 주위에서 온갖 범죄가 일어나고 때로는 그 파편에 소녀에게로 튀어올라 상처를 남기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성경을 읽는 것에만 열중했다.


믿는다 믿는다 믿는다 믿는다 믿는다.

그 행위만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저 믿는다.


소녀는 자신의 믿음이 확연한 이상(abnormal)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강박적으로 성경을 읽었다. 오랜 시간 아무것도 입에 대지않아 눈이 침침해지거나 가끔씩 의식이 흐릿해졌지만 그래도 맹목적인 믿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교회의 자신을 향해 미소짓는 천사를 보았다.

구원을 갈구하며 절박한 믿음에 시달리던 소녀에게 그것은 마치 목마른 자 앞에 바다가 나타난 것과 같았다.


소녀는 오랫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해 딱딱하게 굳어있는 몸을 간신히 일으키며 천사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무지개색의 후광을 등에 진채 온화하게 온화하게 소녀에게로 내려오고있었다. 소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천사에게 깊이 머리를 조아리며 털썩 무릎꿇었다. 그리고는 천사가 부드럽게 자신의 등을 쓸어주기를 기다렸다. 그것을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


소녀는 소리지르지도 못하며 교회 바닥에 쓰러졌다. 성경을 놓아둔 자리에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붕이 썩어 아랫층으로 내려앉은 천사상이 묵직하게 꽂혀있어 성경의 자취를 찾아볼 수도 없었다. 천사상과 지붕이 무너져내리면서 그 충격으로 날카롭게 조각나 떨어진 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 조각들은 엎드려있던 소녀의 등을 잔인하게 찢어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가녀린 몸뚱이에 수없이 박혀들었다.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믿음'으로 인해 한없이 허약해져있던 소녀는 등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을 뒹굴다 어이없을 정도로 가볍게 숨을 거뒀다. 



움직임을 멈춘 소녀의 등에서부터 진득하게 흘러나온 피는 교회의 바닥을 바닥을 타고 길고 넓게 퍼져나갔다.

그것은 마치 차가운 돌바닥에 소녀가 붉디 붉은 날개를 펼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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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을 제대로 섞어넣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