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8일 작.
*
Keyword: 2차원, 3차원, 4차원
어느날 서랍을 뒤졌더니 일기장이 나왔다.
그것은 과거의 나였다.
자리에 앉아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더니, 그것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방가방가!!」
자기자신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리고 당혹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기장을 덮어버렸다가 5분 정도가 지난 다음 다시 열었다.
「무슨 짓이야?」
"당황했어."
아까는 경황이 없어 말을 걸었다고 했지만, 자세히 보니 일기장은 내가 쓴 손글씨의 일부를 여기저기에서 떼어와 공백부분에 나열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들었다고 착각한 것은 무의식적으로 그 문장을 내 목소리로 상상해버렸기 때문이리라. 내 시선 아래에서 글씨가 어지러이 휙휙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웅- 어떻게 지내고있어?」
"...그럭저럭."
「그럭저럭?」
글씨가 공백의 중심에 휙하고 모였다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약간 속이 안좋아지는 기분을 느끼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어디서 바람이 불어들어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늘한 기운이 발에 감겨들어서 성가셨다. 구역질이 야간 가라않고 과거의 내가 적당히 지쳤으리라 생각됐을 무렵, 나는 눈을 떴다.
「야」「어이」「이봐요」「여기봐라 여기」「에베베」「바보멍청이해ㅅㅏ」
"...찢는다."
「하지마하지마하지마!!」
말 한 마디에 글자들이 리얼하게 떨었다. 과거의 나는 2차원이면서도 묘하게 나보다 감정이 풍부하다.
...하긴 이때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교 때였으니까 당연한건지도 모르지.
왠지 복잡한 생각에 잠겨있자니 또다시 글자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럭저럭이라는게 뭐야?」
"...매사 변화없이,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게 살아간다는 의미지."
「?????」
일기장은 -젠장, 명칭을 뭐라고 통일해야하냐...- 온갖 페이지에서 그러모은 물음표를 띄우며 의문을 표시했다.
「그거 시시해」
"인생이 원래 그런거야."
「뭐야 그게」
"꿈이 없는 이들은 시시하게 사는거야."
「나 꿈있어. 너도 꿈있어」
"......"
페이지가 펄럭펄럭 넘어간다.
<제목:장래희망>
[나의 꿈은 나이팅게일처럼 훌륭한 간호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화를 쓰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언젠가 간호사가 되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서 환자들에게 읽어줄겁니다. 그럼모두들 기뻐해줄겁니다. 아빠도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의사가 좋지만 간호사도 나쁘지 않다고 얘기했습니다. 앞으로 많이 공부해서 훌륭한 간호사가 되야지.]
"집어치워."
일기장을 덮었다. 표지가 들썩거렸지만 손으로 꾹 눌렀다. 속이 메슥거렸다. 너무나 오래전에 꾸어서 자신의 분수조차 몰랐던 시절의 꿈은 자신의 한계에 부딪쳐 길을 잃은 순간에는 그저 흉물스러운 폐기물에 불과하다.
나는 침대에 풀썩 엎드렸다.
=
잠들었더니 무언가가 내 의식에 끼어들었다.
그것은 미래의 나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말을 거는것과 비슷한 행동으로, 미래의 나는 나의 의식에 끼어들었다.
-오랫만이네
그녀보다 한단계 하위차원에 있는 나는 목소리를 간신히 이해했다.
나는 의식의 공간을 움직여 그녀의 말을 듣고있다는 것을 알렸다.
제대로 전해졌는지는... 모르겠다.
-간만에생각나서추억을들여다봤는데이렇게만날줄이야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미래에서 어떻게 살아가고있는걸까.
그걸 알 수 있다면 이런 안개 낀 기분도 가라앉을텐데.
나의 생각이 제대로 전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래의 의식이 반응했다.
-과거를만났지?
나는 공간을 긍정의 의미로 움직였다.
-보니까어땠어?
그냥... 왠지 모르게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꿈은 자라나면서 현실을 깨달아갈수록 부서져나갈 폐기물.
그런 것을, 그따위 것을 소중히 감싸안고있는 모습이라니...
-내가너를보는심정도비슷하다면알겠어?
무슨 소린지 알겠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 상태다.
끌어안고있는 것도 없고, 목표삼는 것도 없는...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태.
아무리 나라고 해도 자기의 이런 모습은 기가 막히겠지.
-그래,하지만너에게는중요한것이아직남아있어
그런 것은 없다.
-'꿈'이아직남아있잖아
...그런, 것은.
나에게 남아 있을리가, 없었다.
-미래의내가단언합니다. 너는 꿈을가지고있어. 다만눈을돌리고있을뿐이지.
......
눈앞에 동그란 무언가가 굴러왔다.
빛나는 구슬같은 물체다. 나는 그것을 눈높이까지 들어올렸다.
끌어안으니까 몸이 따뜻해져서, 무심코 눈물이 나왔다.
-인생은길고아직늦지않았어. 꿈을가지고살아가면되는거야. 내가원하던꿈을.
그렇구나.
그렇게하면 되는 거였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어느 날 잠이 들었더니 이런 꿈을 꾸었다.
무척이나 황당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그치만 이걸 꾸고나서 마음이 후련해진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꿈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일일지도 모르지.
...뭐 아무렴 어때.
나는 지금 이순간을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있다.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이걸로 만족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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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미래(4차원)의 제가 날아와서 '자! 사실 네가 쫓아야하는 꿈은 이거야!!'라고 말해주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희망을 담아 써보았어요[..] 주인공이 참 부럽네요....
그보다 주제가 잘 들어간걸까요? 다른 분들이 이해할 수 있게 잘 쓴걸까요?
갑자기 엄청나게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OTL... 이러니 전 안될거야 아마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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