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0일 작.
*
KeyWord:사과(I'm Sorry)_문학소녀_어깨결림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까마득한 옛날에 끊어진 릴레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라는 마음가짐으로... 끄적끄적.
하지만 발퀼인건 어쩔 수 없군요...
=
어서오세요
네, 제가 그 「문학소녀」입니다
어째서 그런걸 물어보시는거죠? 이미 약속까지 다 잡은 분이시면서.
장난이에요. 자, 들어오세요.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딱히 둘러대려고 하지 마세요
당신도 그거에 관심이 있어서 나를 찾아온거잖아요?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부터 딱 감이 왔다구요.
물이라도 마시면서 들으시겠어요?
어디보자- 벌써 7년이나 지난 일이네요
그때는 이 집에도 사람이 있었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말이에요.
네? 그건 보통 가족이라고 부르는게 아니냐구요?
지금은 가족도 아닌데요 뭘. 그냥 넘어가세요
당신도 이미 알고있겠죠. 당시 어머니는 정신이 불안정했어요
아버지는 성격이 우유부단해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죠
어머니가 아무리 흉폭해지더라도 그건 매일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로서는 별 실감도 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매일 오후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에게 있어 그건 그야말로 백년같았어요
상상할 수 있겠어요?
집에 돌아왔더니 집안의 모든 장신구가 박살나있는 풍경을.
집에 있을 때마다 머리맡으로 다가와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사람을.
견디지 못해서 밖으로 나가려고하면 괴성을 지르면서 나를 두들겨팼어요.
몸에 멍이 들어서 기대하던 수영시간에도 벤치에 비참하게 쭈그려앉아있어야 했죠.
집에 들어가지 않거나 아예 늦게 들어가면 되지 않았느냐고요?
나도 그 정도는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를 재워줄 만한 친구가 없었죠.
그래서 매일 근처 도서관에서 폐관시간까지 버티다가 집에 들어갔어요. 덕분에 문학소녀라는 웃기지도 않는 별명이 붙었죠.
그 사람은 내가 벌써부터 노는 물이 들었다고 욕을 해대기 일쑤였어요.
아니라고 항의해봤자 소용없다는걸 알고있어서 잠자코 있었더니 나중에는 나를 창녀로 몰더군요
도대체가, 어머니의 규정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어딘가가 심각하게 모자랐을거에요.
아버지요? 아뇨, 말 안했어요. 정확히는 말 못한 거죠.
당최 얼굴을 마주칠 수 있어야 뭔 말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겠어요?
그날도 그랬죠.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읽고 돌아왔고 그 사람은 부엌에 서있었죠.
그렇다고 뭔가를 만들고있진 않았어요. 그냥 식재료를 잘게잘게잘게잘게잘게잘게 다지고 있었을 뿐이었죠.
고기든 야채든 두부든 뭐든지간에 그렇게 갈아버리고 있었어요.
나는 은근히 손가락을 썰길 기대했는데 베이지도 않더군요.
…아무튼, 나는 그냥 그녀를 지나쳐서 방안으로 들어갔죠.
맘에 드는 책이 있어서 큰맘먹고 구입해온 참이었거든요.
양장본이어서 제법 두꺼웠죠. 들고오느라 팔이 뻣뻣했어요.
근데 도중에 그 사람이 나를 불렀어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의 큰 소리로 아주 크게.
또 무슨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가니, 그녀가 내 문 앞에서 칼을 들고 부들부들 떨고있었어요.
아마, 너때문에 내 인생을 낭비했으니 무릎꿇고 사과하라-그런 거였을거에요.
같잖지도 않은 요구였지만 그냥 그렇게 해줬어요.
보통의 경우 그렇게 해주면 그나마 좀 얌전해지는 편이었거든요.
그러데 그날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사과하는 내 머리를 마구 밟는거에요.
밟으면서 계속 사과하라고 그랬죠. 바닥에서는 희미하게 행주 냄새가 났어요
나는 머릿속으로 내가 빌려온 책의 스토리를 떠올리며 대충대충 사과했죠.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놔주지 않았어요.
근데 말이죠, 나에게는 징크스가 있거든요.
어깨가 결려오는 순간에 하는 일을 무조건 그만두지 않으면 큰 피해를 당하는거죠.
그래서 나는 그냥 사과하는 걸 그만뒀어요. 힘차게 머리를 들었죠.
그 사람, 내 머리를 밟고있었다고는 해도 깡마른 체격이었으니까 뒤로 벌러덩 넘어졌죠
식칼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 여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발버둥쳤어요.
그 모습이 웃겨서 비웃어준 다음에 방으로 들어갔어요.
문을 잠근 다음 책을 읽기 시작했죠
막 몰입되려는 순간, 또 문이 부서질 듯 흔들렸어요
누군지 말 안해도 알죠? 또 그 여자였어요
어머니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고 있었어요
나는 딸에게는 그런 짓을 해도 되냐고 묻고싶었죠.
그치만 생각해보니 우린 일반적인 가족이 쓸법한 윤리의식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이였어요
그래서 그만두고 책이나 읽기로 했죠.
그 여자는 계속 소리 쳤어요. 목이라도 중간에 쉬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약간 발음이 어중간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이 계속 이어졌죠.
책안의 이야기가 계속 방해받았어요.
나중에는 어깨가 결려오고 머리까지 아파왔죠.
열이 뻗쳤어요.
책도 화내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나의 책과 함께.
문을 열었더니 그 여자가 시커먼 입구멍을 벌리고 있었죠.
입냄새가 났어요.
…………이 다음엔 당신도 알고있는대로에요.
나는 들고있던 책 모서리로 그 사람을 때렸어요. 한 번이 아니라 몇번이고 몇번이고.
얼굴을 주로 때렸더니 팔다리가 반쯤 죽기전의 파리처럼 벌벌 떨어서 불쾌했죠.
나중에는 이빨도 다 나간 입으로 뭔갈 중얼거린 것 같긴한데- 뭐 사과였거나 저주였거나 둘 중 하나였겠죠.
혹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도 있고… 뭐 관심 없지만.
두렵지 않았냐구요? 전혀요.
그 사람을 죽이는 동안 어깨가 조금도 결리지 않았는걸요.
그러니까 내가 그 일을 해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이유가 없었던 거에요.
모든 일이 끝났을 때는 마음이 후련했어요
책은 페이지마다 붉은 얼룩이 져버렸지만 그것도 꽤 어울리더군요.
지금도 내 책장에 그대로 꽂혀있어요. 관심있으면 보여줄까요?
…그래요? 유감이네요.
아무튼 사건은 이게 다에요. 이후로 이런저런 난리가 있었지만 무사히 지나갔죠.
아버지는 나한테 사과했고, 나는 그걸 겸허히 받아들였죠.
사실 지금도 후회는 안해요. 내가 만약 그때로 되돌아 가더라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겠죠.
응, 뭐라구요?
아버지의 빚과 어머니의 보험금?
……….
…………….
………………….
어이가 없네요.
…미안하지만 이만 돌아가줘요.
피곤한데다가, 당신을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도 않아졌어.
몸도 찌뿌드드하니 결리고…. 그러니 안녕히 돌아가세요.
괜찮아요, 사과할 필요 없어요.
…다음에 볼땐, 「문학소녀」인 나를 만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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