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리지널

[글쓰기 연습 모임]추악한 자와의 사랑

2009년 12월 6일 작.


*


Key Word:러브 플러스, 좀비, 사랑



"선배, 이거 어떻습니까?"


후배놈이 갑자기 내 눈앞에 보고서를 냅다 들이미는 바람에 겨울의 냉기를 녹이는 컵라면의 온기에 심취해있던 나는  그만 사레에 들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목에서 코끝까지 아릿한 지옥의 불꽃이 들끓었고, 나는 억제된 비명을 내지르며 근처에 있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우와, 선배 괜찮으세요?"

"네가 원인이잖아 이자식아. 보고서 제출일은 일주일도 더 남았는데 무슨 짓이야?"

"으히히, 실은 어젯밤에 팍! 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말이죠~ 저기, 일단 한번 봐보세요."


쓰잘데기없는 아이디어였다간 네놈 콧구멍에 후추를 뿌려주마. 그렇게 엄포를 놓고 후배의 보고서를 집어든 나는 제목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러브 플러스]라니 이거랑 이름이 같은 게임이 이미 나와있지 않았던가?


"제목은 딱히 생각나지 않아서 대충 했으니까 넘어가주세요."


후배녀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직접 자기 손으로 페이지를 넘겨주기까지 했다. 미안한 배려였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쥐고있는 물건을 다른 누군가가 억지로 손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후배의 손을 매몰차게 후려친 다음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쉬리릭 썼다는 후배의 말마따나 보고서는 거의 낙서장같은 상태였다. 나는 읽는 것을 포기하고 종이를 내던졌다.


"야, 그냥 설명해. 무슨 좀비 글씨도 아니고…."

"그겁니다 선배!"

"…………뭐?"


선배, 러브 플러스라는 게임 아시죠? 네. 제가 제목으로 쓴 게임이요. 그게 이미 연인관계가 된 캐릭터와 끝없는 사랑이야기를 그려나간다는 컨셉으로 폭풍적인 인기를 얻었잖습니까. 저도 한번 플레이 영상을 봤는데 완전 가슴이 두근두근하더라구요. 그런데 어젯밤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좀비를 여주인공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네네, 미친 소리처럼 들린다는 건 압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때까지 인류는 수많은 존재를 공략대상으로 왜곡시켜왔습니다. 그게 좀비라고해서 안될게 뭐 있겠습니까? 그야 어떤 사람들은 토악질을 해댈지도 모르지만 원래 사물을 보는 시각은 다양한 법이지 않습니까. 그들도 좋아서 좀비가 된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좀비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남자가 주인공이고, 여주인공은 그 샘플 중의 하나인겁니다. 호감도가 올라가고 연구가 진척될수록 히로인은 점차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그리고 마침내 원래 모습을 되찾는다고?"

"네! 이거 제법 쓸만하지 않을까요?"


나는 말없이 종이로 후배의 안면을 내리쳤다.


"야 이 멍청아. 너같으면 살점이 썩어가는 여자를 되살리고 싶겠냐? 틈새시장도 좋지만 너무 노렸어."

"아씨, 그러니까 마음에 사랑을 품고 플레이를 해야죠! 내가 아니면 이 여자는 도울 수 없다! 그런 마음가짐 말입니다!"

"……나같으면 이 게임 안산다, 임마."


빨개진 이마를 붙잡고 입을 쭉 내밀고있는 녀석의 머리를 둘둘 만 종이로 몇번 내려친 다음, 나는 소화 겸 기분전환을 위해 복도의 끝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묵직하게 밀려들었다.


"…좀비라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창문 틀에 이마를 박았다. 싸늘한 냉기에 피부가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나의 애인에게 어떤 미친 새끼가 황산을 뿌리고 도망갔을 때도 나는 병원 수술실 바깥에서 이렇게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있었다. 황산에 의한 피해가 얼굴에만 집중되어있었던 탓에, 수술을 끝낸 나의 애인은 원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내가 수술을 끝낸 그녀와 처음으로 얼굴 마주했을 때의 대화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녀는 입술이 들러붙고 혀가 녹아서 말도 할 수 없었다. 검은 글자만이 하얀 스케치북 위에서 가지런하게 빛났다.


<솔직하게 말해봐. 나, 좀비같지?>

「아, 아냐, 넌 여전히 예뻐…」

<거짓말 하지마. 너도 사실은 역겹잖아?>

「아냐, 아냐… 난, 나는…」

<그럼 나한테 키스할 수 있겠어?>


나는 구토감을 느끼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사랑했던 사람앞에서 도망쳤다. 등 뒤에서 금속을 긁어내리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도망치는 나를 향한 비웃음소리였는지 아니면 울음소리였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한가지 명확한 사실은, 내가 그녀 앞에서 도망치고 난 그 다음 날에 그녀는 스스로 병원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고가 나기 전의 환한 웃음을 짓고있는 영정을 바라보며, 나는 몇번이고 자문했다.



나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했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그녀의 외모가 좋았던 걸까?



실로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아직도 답을 알 수 없다….


====================================


이 주제로는 제가 가장 처음 올렸으니까, 다음 키워드는 제가 정하는 거로군요...


Next Key Word: 책, 도살장, 디지털 카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