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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연습 모임]대통령과 KFC

2009년 12월 작.


=


그러니까 어제 저녁에 나는 집에서 께느른하게 늘어져있었다. 새로 산 PMP에 담은 영화나 미드가 재미있었지만 너무 오래 봐서 머리가 아파오는 바람에 약을 먹고 수면을 취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평소의 피로가 겹치는 바람에 낮잠으로 5시간을 홀라당 날려버리는 바람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시각은 점점 야심해져가고, 졸음은 찾아오지 않아서 심심해진 내가 컴퓨터를 키고 메신저에 접속한 순간,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쪽지 하나가 날아왔다.


[단팥죽 좀 사와라]


"……."


시계를 보았다. 시각은 밤 열한시 반. 왠만한 가게는 전부 문 닫고 폐업했을 시간이고, 평소라면 이미 침대 속에서 곯아떨어졌을 시간이다. 갑작스레 지금 이 시각까지 눈을 뜨고있는 나 자신과 바보같이 메신저를 킨 나 자신과 하필 오늘 낮에 폭풍낮잠을 자버린 나 자신에 대한 후회감이 파도처럼 몰려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 쪽지를 안 본 것으로 하고 그냥 메신저를 쏜살같이 끄려고 했지만….


[빨리 안사오면 대통령의 권력으로 수능성적을 9등급으로 깔아버리겠어]


…………….

나는 별 수 없이 답장버튼을 눌렀다.


[나 지금 졸린데요? 꼭 지금 먹고싶어요?]


[니가 지금 졸리다면 이 시간에 메신저에 들어오지도 않았겠지.

 보나마나 또 낮잠을 너무 많이 잤겠지?]


[우씨…. 어떻게 안거에요?]


[그냥 한번 찔러봤어.]


"낚였다!!"


어쩜 맨날 이런 식이냐고요.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한창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저주하고 있자니 또 다시 쪽지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또 누군가 싶어 화면을 확인해보니….


[워ㄹ척이냐? 파닥파ㄷㄱ]


아씨! 중간에 나있는 오타때문에 더 열받아!!

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공격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월척이고 자시고 간에 지금 시각을 봐요! 이 시간에 문을 연 가게가 있을 것 같아요?

 전부 보람찬 내일을 위해 철수하고 잠들었을 텐데!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그치만 나는 지금 배가 고파]


[저녁 안 먹었어요?]


[24시간 문을 여는 가게가 있거든? 운전수를 보내줄 테니까 거기 가서 좀 사와라

 자동차 번호판은…]


이젠 아예 내 말을 무시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언제나 이런 식인 대통령씨였으니까 이제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익숙하지만 말이지. 나는 갑작스레 방금 전까지의 분노가 어디론가로 야반도주해버리는 것을 느끼며 한숨 쉬었다. 어차피 잠기운도 약 3시간 전에 나에게서 이별했겠다, 평소에는 하지 않는 효도란 놈으로 생색 좀 내보지 뭐. 가면 심부름값도 두둑히 받아낼 수 있을테고.


…어디보자, 펜이랑 메모지가 어디있더라?


=


그리고 오밤중임에도 불구하고 정중한 운전솜씨를 보여준 차량에서 내린 뒤, 나는 시커멓게 잠들어있는 상가 건물 사이에서 과연 환하게 불이 켜진 가게 하나를 발견했다. 요즘은 죽가게도 24시간으로 운영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종종걸음치던 내가 무언가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가게의 간판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였다.


[KFC]


"……."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1초.

전화번호부에서 [ㄷㅌㄹ]를 쳐 해당번호를 찾아낸다. 2초.

신호음이 이어지다가 연결이 된다. 10초.


<도착했냐?>


"당신 치매야?!?!?!?"

 

총 13초간 내가 들이킨 숨을 한순간에 토해내면서 그렇게 외치는 걸로 시작했다.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짓거리에요? KFC는 코리안 퍼킹 컨트리의 약자라고!! 아니아니, 그래, 방금 그건 루머일지도 모르니까 그렇다고 쳐요! KFC가 뭐하는 덴지는 알아요? 패스트푸드점이라구요, 패스트 푸드점!! 롯데니아나 맥도날그같은거!! 햄버거랑 프렌치 프라이랑 콜라!! 드시고 가시겠습니까 포장하시겠습니까 손님!! 당신 취향은 스마일이라구요? 그딴거 알게뭐야!!!"


그리고 호흡을 고르는데 2초.


"단팥죽이 뭔지는 듣기만 해도 알잖아요? 단팥으로 끓인 죽!! 아무리 생각해도 패스트푸드점에서 그걸 주문하는 건 진짜 아니잖아! 패스트 푸드는 커녕 슬로우 푸드라구요!! 그걸 여기서 어떻게 주문해! 당신 자식을 정신이상자로 만들 셈이에요? 뭐? 상식을 뛰어넘은 자유로운 발상의 발현? 알게뭐야!! 말만 그럴 듯하게 하면 단줄 알아요? 하여간 대통령 주제에 말솜씨만 번지르르하고!! 애초에 내가 왜 당신이랑 따로 사는지 알아요?"


건너편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안쪽을 흘끗 쳐다본다. 빛이 환하게 켜져있는 가게에 드문드문 앉아있는 사람들이 내쪽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딱 한명, 창가에 앉아있는 여자손님만이 이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내가 눈을 부라리자 시선을 전방의 노트북으로 내렸다. 건너편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어렸을 때!! 우리 마당에 연못 만들자고 약속했었죠!! 그런데 그때 자기는 정치공부니 선거준비니 피곤하다고 맨날 쉬고있었고!! 그러면서 뭐? 우리가 피땀흘려 만들 연못이니 소중히 하자꾸나? 웃기시네! 연못 모양만 디자인해놓고 이름만 구름의 강(雲河)같이 그럴듯한 걸로 붙이면 땡인줄 알아요? 결국 그건 완성되지도 않았잖아?"


이 나라의 대통령씨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사람이 헛된 기대를 하게만드는데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더 나쁜 사실은 너무나도 잘난 언변 때문에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작게는 나와 당신의 배우자에서부터 시작해, 그리고 크게는 이 나라의 국민들까지. 나는 뒤늦게나마 그 사실을 깨닫고 그에게서 도망치는데에 성공했지만 나를 제외한 이 나라의 국민들은 아직 그런 사실을 모른다. 언제 깨달을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관심도 없다. 


나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종료해버렸다. 일단 한방 먹이긴 했지만 (아마도) 여기서 대화를 지속했다간 KFC 주방으로 쳐들어가 단팥죽을 만드는 것을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역사적인 사명으로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이이상 또 그 치의 언변에 헤롱헤롱 놀아나는 건 사절이었다. 그저 침묵하고있는 휴대폰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고, 나는 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KFC의 간판을 등지려고 했다.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결국 안들어오는거냐."


들어갈 이유가 없잖아.


"옛날에는 좋아했잖아, 네 이름 이니셜이랑 같다고."


옛날 이야기다. 한때 나는 왜 내 이름의 이니셜이랑 같은 가게에서 내가 좋아하는 단팥죽을 팔지 않는지 궁금해했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가게에 단팥죽 메뉴를 추가해 달라고 했었지."


당시 점장 대리로 일하고 있었던 아버지는 그저 쓰게 웃으셨다.

어머니는 그저 조용히 웃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더랬다.



「엄마가 대통령이 되면 그렇게 해줄께.」

그리고 나는 그 말을 기대했다.


"…언제까지 이럴거에요?"

"네가 여기로 들어올 때까지."

"난 안들어가요."

"넌 지금 여기까지 왔어. 언젠가는 들어올거다."

"……."


나는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녀는 굳이 쫓아오지도 않았다.

다만 그녀의 말소리가 내 등뒤를 따라왔다.


"너무 쑥쓰러워 하지말고 들어라. 청와대 앞 KFC는 단팥죽 서비스 지역이야."

"…퍽이나 빨리 알려주시는군요."

"내일은 들어와서 주문할 수 있겠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래서 이 사람과 그 이상 대화하기 싫었던 거다….


"너무 걱정 마. 내 남편의 실력은 최고거든."

"말하지 않아도 아니까 입 다물어요."


나는 일부러 거칠게 말하고는 기다리고있던 차에 곧바로 올라탔다.

차창 유리 너머로 가게를 향해 돌아가는 여자 대통령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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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입니다.

주제어를 듣자마자 머리 속에 떠오른 걸 적었는데 이건 왠지 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