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탐정, 그럼 내가 질문하지. 당신의 초대장 내용은 뭐냐?"
"오면 실종된 <정보원>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
초대장은 공과금 통지서와 함께 우편함에 들어와있었다. 그녀는 일단 공과금통지서를 한번 훑어보고 관리비를 얼추 계산했다. 낡은 콘크리트 건물의 우편함에, 일반적이지 않은 봉투에 담긴 발신인 불명의 편지. 외견만 봐도 수상하다. 수상하기에 더더욱 해야할 일을 먼저 처리해둘 필요가 있었다. 이번 의뢰의 처리에 예상 외로 시간을 잡아먹은 탓도 있었다.
그리하여 모든 계산을 끝낸 그녀는 다 타들어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초대장을 손에 들었다. 일단 싸구려 소재는 아니다. 두께는 얇고, 가로세로 반절로 휘어보아도 초대장을 붙인 인장 부분을 제외하면 별다른 저항이 없다. 편지 모서리를 툭툭 흔들어 안에서 수상한 소리가 나지 않음을 확인한 다음에야 인장을 뜯고 안에 동봉된 초대장을 꺼낸다. 안에는 몹시 정갈한 글씨로 초대문구가 적혀져있었다.
[오시면 실종된...]
그 다음 구절을 읽는 순간 그녀의 신경이 뒤틀렸다. 그것은 자신이 지난 1년간 온갖 곳을 들쑤시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얻을 수 없었던 정보였다. 그 소문 무성한 트리거와 관련이 있는지 어떤지도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구름처럼 사라졌던 인물의 흔적. 그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그저 이곳에 오시기만 하세요. 라는 듯이 펼쳐진 초대장은 그저 새하얗다. 그녀는 새 담배를 입에 물려다 자신이 이미 입에 담배를 물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입안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뱉어냈다. 거뭇하게 타들어간 꽁초가 바닥을 굴렀다.
그리하여 수상함은 더해졌다. 이 정보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하는 수준을 넘어,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 없는 그와 그녀 사이의 존재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게다가 이걸 구태여 자신에게 알려준다니. 발신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그의 의도가 너무나 빤했다. 여기로 와라. 아니면 너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거야. ...불을 붙인 담배를 깊이 빨아들여 내쉬는 탁한 연기가 초대장에 부딪쳐 바스라졌다.
이대로 초대장을 구겨버릴 수도 있었다. 마침 그녀의 스폰서로부터 사건 의뢰 메일이 도착해 있는 참이었다. 게다가 그가 가진 '정보'란 것도 매일같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나 하찮고 쓸모없었는지. 이미 그녀의 길은 정해졌다. 돌아갈 수는 없다. 이제 와서 그 시작점을 돌아보는 일 따위 무의미하다. 그저 이대로 살아서, 살다가. 살다보면.
담배는 초대장을 동그랗게 태웠다. 고급스런 하얀색에 검은 탄내가 번졌다. 그녀는 구겨진 담배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뒤 스폰서의 메일에 답장을 했다. 이미 다른 일정이 잡혀있어 의뢰를 수락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을 타이핑하는 동안, 그녀는 막연히 생각했다. 그녀가 도착한 장소에는 얇게 저민 고기같은 것들이 진열되어있을지도 몰랐다. 산 채로 토막난 시체가 굴러다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예상을 깨고 그가 살아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실 그의 생사여부는 그녀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중요하지도 않은 정보의 행방이었다.
메일이 보내졌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받은 초대장을 응시했다.
[오시면 실종된 남동생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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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교활해졌구나, 하고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정은 개인실 안에서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며 눈을 감았다. 어차피 틀린 말은 아니다. '다정한'은 그 날, 그 장소에서 제 입으로 그녀를 부정한 순간부터 이미 그녀의 동생도 뭣도 아니었다. 이제와 그녀가 새삼스레 설명할 이유는 없다. 이미 끊어진 관계를 다시 추스르려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단지 그녀가 원하는 정보가 있었고, 그 정보를 가지고 있던 정보원이 이곳에서 죽었다. 타인들은 그 정도만 알고 있으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손 안에서 담배가 구겨진다. 생사에 상관없이 정보의 행방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그녀가 찾던 정보의 유일한 보유자였던 그가 죽은 이상 무정은 더 이상 진실을 알 수 없다. 이제 그녀에게 가능한 일이라곤 굶주린 개처럼 그가 떨어뜨렸을지도 모르는 진실의 부스러기를 찾아 온 사방을 뒤지는 일이었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해?
-이제 진실 따위 어둠에 묻어버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
-어차피 마지막 증인 따위 죽어버렸잖아! 누구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
-어째서?
그게 빌어처먹을 아버지가 살았던 방식이니까.
-...내가 네 아버지였던가?
-뭐, 아무렴 어때.
-그럼 너는 여기서 진실을 찾지 못하면.
-내가 되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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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나 나나 초대장의 의미는 사라졌지만... 나간다면, 좀 더 낭만적인게 있지 않을까 싶고. ...열린 결말이 나쁘다곤 생각 안해."
"낙관적인 것도 이 정도면 부러울 정도군."
(아무런 진실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결말 따위 이미 닫힌 인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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