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을 그만두는게 어떤가요."
장소는 다시 병원. 침대에 누운 채 눈을 뜬 정희의 옆에 선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조금 전 불쑥 병실을 찾아와 정희의 의식여부를 확인한 뒤, 뇌에 수술을 받았음을 알려주고 내상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난소를 제거했으니 더 이상 임신할 수 없을 거라고 정중히 사과하던 때와 동일한 톤이었다. 심지어, 삼십초도 채 지나지 않았다.
"아마도 몰랐을테니까 말해줄게요.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몸의 통증을 뇌에서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신의 상처를 눈치채지 못하고, 몸에서 발하는 위험신호도 알아차리지 못하죠."
'불가시'가 그녀의 팔을 꼬집는다. 정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이건 탐정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사항이에요. 다른 직업에 비해 몸의 위험도가 훨씬 높은 직업이니까요. 정중하고, 정중하게 말씀드리건데 탐정이 되는건 포기하세요. 아버님을 죽인 범인들도 이미 전부 처리되었으니까요."
아버지.
아버지라.
정희는 침대에 누운 채 자신이 살인사건의 진범을 밝혀내고 돌아왔을 때 매캐한 탄내와 함께 이미 죽어있던 아버지를 생각했다. 부검 결과 그는 산 채로 몸에 불이 붙어 타죽었다고 한다. 범인의 모습이 담겨있어야 할 CCTV는 파손되었고 정희는 그 자리에 남아있던 라이터 하나를 토대로 범인들을 쫓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꼬리를 잡는 데까진 성공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정희의 의식은 누군가가 무너뜨린 철골이 자신을 덮치는 장면에서 끊어졌다. 눈을 뜨자 이미 병원이었다.
"만약 당신이 끝까지 아버님과 같은 길을 고수한다면 높은 확률로 같은 일이 벌어나 개죽음을 당할거에요.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자신의 위험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법이니까. 이대로 재활훈련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선 뒤로는 탐정일랑 모두 잊고 살아가세요. 그게 당신에겐 제일 좋은 일이에요. 제 말 이해하셨나요?"
'불가시'가 그녀를 응시한다.
정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꺼져."
=
그리고 짐승에 대한 물음으로 돌아간다.
=
'불가시'는 그녀가 끝끝내 고집을 꺽지 않자 몹시 난감한 기색으로 몇 군데의 탐정 사무소를 가르쳐주었다. 정 탐정을 해야겠다면 다른 탐정의 조수에서부터 시작해보라는 의도였으리라. 하지만 재활훈련을 마치고 퇴원한 뒤로도 정희의 몸에 밴 폭력적인 행동은 가시지 않았고 불가시의 배려가 박살내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치 옛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는 폭죽 폭탄 마냥 여러 탐정 사무소를 전전하던 정희는 마침내 비가 쏟아지던 여름날 아무런 소개장도 없이 길거리에 방치되었으나 딱히 슬퍼하지는 없었다.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정희는 그때부터 혼자서 활동했다.
아니, 혼자는 아니었다. 후원자가 있었으니.
당시 정희에게는 아무런 실력도 기술도 없었다. 그런데도 후원자는 왜 그녀를 선택했던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 하여 거부할 처지는 되지 않는다. 정희는 약 2년 동안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탐정공부를 했다. 무술이나 사격 연습은 물론 각종 면허증을 따는 것도 포함된 긴 훈련이었다.
정희도 사람이다. 스폰서의 정체를 궁금히 여긴 적은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를 결코 알려주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가 알고싶다는 의문 따위는 제대로 된 탐정이 되고 난 이후에나 생각하라는 것이 그의 답변이었다. 말마따나 정희는 그런 사소한 일에 시간를 낭비할 정도로 여유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후원자를 만족시킬 정도의 성적을 내지 못하면 당장 식비가 깍이고 온냉방이 끊어졌다. 탐정이 될 생각을 보이지 않는다면 굳이 후원해줄 이유가 없다는 노골적 태도였다. 폭력적이긴 했지만 그동안 아버지에게 물리적으로 시달려왔던 정희는 오히려 이쪽이 편했다.
그런 식으로 스무 살이 되어, 첫 사건을 맡았다.
어느 유복한 집의 아이가 실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떨어진 공원 호수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몸에는 수없이 많은 구타 흔적이 남아있었으며 대부분 살아있을 때 난 것으로 판명되었다. 초기에는 이혼한 뒤로도 아이의 근처에 나타났던 알콜중독자 어머니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지만, 아이의 몸에 남은 체벌의 흔적은 알콜중독자가 남겼다기에는 너무 규칙적이었었다. 그 사이로 뭔가로 피부를 찍은 듯한 특징적인 상처가 보였다.
정희는 구치소에 수감된 아이의 어머니를 한 번 만나본 뒤 사라진 며느리를 대신해 아이를 양육하다시피 하던 아이의 할머니를 만났다. 증언의 탈을 쓴 신세한탄이 꽤 길게 이어졌고, 말없이 그걸 들어주던 정희는 어느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다짜고짜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늙은 여인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자신의 코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악다구니에 찬 얼굴로 욕설을 퍼부어대던 그녀는 이내 의자 채로 바닥에 넘어뜨려져 다리가 부러지는 고통을 맛봐야했다. 내동댕이쳐진 노인이 새된 비명을 지르는 동안 정희는 비틀린 발목을 짓밟으며 말했다.
"시신의 등에 기묘한 자국이 남아있었지. 당신 손에 낀 반지도 세공이 꽤 날카로워 보이는군. 의족 차기 싫으면 똑바로 말해."
노인은 헐떡이며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
=
1년 정도가 지났다. 그 무렵 정희는 자신의 본명에서 마지막 글자를 떼어낸 '무정'을 가명으로 쓰고 있었다. 가명에 딱히 큰 의미는 없다. 그냥 '무정 탐정'으로 할 경우 단어의 끝 부분이 둘 다 '정'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뿐이다. 시력에 별 문제가 없는데도 도수 없는 렌즈를 끼운 붉은 안경을 쓰고 다니는 것도 어떤 큰 의미는 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탐정수첩이 지급되었다.
"폭력"이라는 칭호도 함께였다.
처음 그 칭호를 받았을 때, 정희는 그리 깊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방식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는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실을 어떻게 탐구하느냐가 아니라 진실 그 자체라고 생각하던 정희에게 그런 수군거림같은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폭력적이든 어떻든 간에 아버지처럼 진실을 왜곡하거나 범죄자들과 손을 잡는다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정희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정희는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가 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었다는 걸 막연하게나마 짐작하고 있는 상태였다.
정희 아버지의 혈액형은 A형이다. 이따금 아버지가 과다출혈로 급히 수혈을 받아야한다는 연략이 오면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 말고는 그 사람에게 피를 줄 사람이 없다며 급히 옷을 입고 바깥으로 나가곤 했다. 그런 날 밤에는 으레 어머니의 팔꿈치 안쪽에 하얀 거즈가 달라붙었다. 따라서 어머니 또한 A형이니 그들의 자식인 정희 또한 A형이거나 O형이야 한다.
하지만 정희는 B형이었다.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지만 곧잘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일도 아니다. 그녀는 그저 그대로, 아버지를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저 너머의 존재로 묻어버리고 진실을 추구하며 살아갈 생각이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칭호였다는걸 알기 전까지는.
"모르셨습니까?"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정희는 제 팔에 붕대를 감은 채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가 아직 18살이었을 때 병원에 실려온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담당했던 의사는 마치 날씨 이야기라도 한 것 마냥 태연했다.
"당연히 알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무자비 탐정이었어."
"그거야 그분 성함이고요."
"......"
정희는 그 자리에서 뭔갈 말하려다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사슬이 그녀의 목을 힘껏 졸라댔다.
그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여태껏 모르고도 잘 지냈는데 이제와서 신경 쓸 이유가 있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희도 그런 생각으로 버티려고 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멍청한 계집애.")
아버지의 목소리가. ("해보고 싶으면 한번 해봐.")
계속해서. ("하지만 스물 다섯쯤엔 죽어야 할거다.")
끊임없이. ("너는 내가 되어있을테니까.")
....................................
정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지간에 의뢰는 계속해서 들어온다. 진실을 추구하는 탐정인 이상 들어오는 의뢰를 거절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마음이 어지러우면 될 것도 되지 않는 법.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던 사건 하나를 완전히 파토내다시피 했던 밤, 스폰서가 그녀에게 연락을 걸어왔다.
[탐정수첩도 받았겠다, 꽤 들뜬 모양이지?]
"아닙니다."
[그럼 뭐야?]
"...칭호가."
칭호가 아버지의 것이어서.
내뱉어진 말은 얄팍하다. 스폰서가 코웃음 소리를 냈다.
[그게 지금 이 상황과 무슨 연관이 있지?]
대꾸할 말은 없었다.
[다음 의뢰에서도 이런 식이라면 탐정에서 손 떼야 할걸세.]
연락은 끊겼다. 정희는 혼자 오랫동안 서 있었다.
=
시체에게서도 유전자는 뽑아낼 수 있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이 무덤을 파헤쳐 관을 한 번 부숴볼까. 정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주머니에 든 담배곽을 만지작거렸다. 탐정회의 직원에게 뒷처리를 일임한 이래 한번도 와본 적 없는 무덤 앞 제단에는 흙먼지가 가득하게 앉아 있었다. 물론 이제와서 정성스레 제단을 닦아줄 마음은 없다. 정희는 담배 한개피를 입에 물고 끝에 불을 붙였다. 처음으로 피는 담배 연기가 독하게 폐를 찔러 몇 번 쿨럭거렸지만 오래지 않아 꽤 능숙하게 피울 수 있었다. 당신은 냄새가 무서워서라도 피우지 않는 인간이었지. 속으로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한 개피를 태우다 인기척을 느끼고 옆을 돌아봤을 때였다.
".....아."
일렬로 늘어선 무덤 앞을 걸어오던 청년이 순간 숨을 들이쉬었다가, 이내 천천히 내쉰다. 갈색 머리는 짧고, 녹색 눈동자는 오랫동안 거울 속에서 봐온 것 마냥 친숙했다. 거의 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건만 그가 누군지 깨닫는 데에는 십초도 걸리지 않았다. 상대방도 아마 마찬가지였으리라. 정희가 연기 섞인 숨을 조용히 내뱉는 동안 청년이 입을 열었다.
"깜짝 놀랐네... 아버지가, 무덤 앞에 서있는 줄 알았어."
"그 인간은 담배 같은 거 안 피웠다. 그보다, 무정후 네가 그를 기억하기는 하나?"
정희의 말에 청년이 입을 꾹 다물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쪽 성으로 개명했어. 나는 이제 무정후가 아니라 다정한이야. "
"웃긴 이름이로군. 이 남자를 웃기려고 온건가?"
"아니, 결별하러 왔어. 나는 경찰이 될 생각이니까."
".......경찰?"
바람이 한 줄기,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휘저었다.
"그래. 폭력 따위를 휘두르면서 진실을 들먹이는 탐정 따위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을 지키고 법을 수호하는 경찰이 될 거야. ...결코 당신들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어."
"얼간이가 뚫린 입이라고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는군."
"뭐가 됐든... 폭력탐정인 당신보다는 낫겠지."
............
.....................
...............................
(하하.)
방심한 사람의 몸을 땅에 메다꽂는 것 따위 숨을 쉬는 것 만큼이나 손쉬웠다. 멱살을 잡고 숨퉁을 조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늘상 해오던 일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짓눌린 '다정한'이 간신히 숨을 토해내며 그녀를 노려본다. 그 머릿 속에 무슨 생각이 흘러가는지는 굳이 추리하지 않아도 뻔했다. 무정은 웃었다.
"그럼 어디 한 번 도망쳐봐라. 겁쟁아."
손끝에서 '다정한'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뿌리채 뜯겼다.
=
몇 건의 의뢰가 이어졌다. 무정은 폭력으로 사건을 해결했다. 범죄자 따위 인정해주지도 않았고 오로지 진실을 밝히는 데에만 집중했다. 당신이라면 이 따위 일은 할 수도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온 몸에 서늘한 기운이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어린 범죄자 하나가 그녀의 발길질에 부러진 손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무정은 희정의 안경을 쓴 채 눈을 비비다 메일이 오는 알림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남편이 너무 악독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애원하던 여인은 끝내 악에 받쳐선 그녀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무정은 냉장고의 남은 자리에 빼곡하게 담배를 채워넣었다. 스폰서는 이대로만 하면 된다며 그녀를 독려했다. 어슴푸레한 새벽마다 침대에서 불면증에 걸린 담배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보내주신 DNA 샘플과 각 모발 간의 친자 확인 유전자 검사 결과입니다]
[모발 A(갈색)-일치율 99.98% : 일치]
[모발 B(노란색)-일치율 43.23% : 불일치]
[이상의 결과를 통해 DNA 샘플과 모발 A가 부자 관계임을 알려드립니다.]
무엇이 누구의 것인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정은 파일을 모아두는 자리에 편지를 대충 집어던진 뒤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도수 없는 유리에 약간의 얼룩이 묻었는지 시야가 줗지 못했다. 대충 손을 더듬자 근처에 떨어져있던 담배곽이 손에 잡힌다. 무정은 담배 한 개피를 꺼내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는 이제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목구멍을 훑고 지나갔다.
(결코 당신들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어...!!)
아직 채 불이 꺼지지 않은 담배가 구겨진다. 무정은 아무것도 없는 어둠을 쏘아보다 사무실 가장 안쪽의 고립된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하나 열고 들어가면 검은 그랜드 피아노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방이었다. 묵직한 뚜껑을 들어올려 일렬로 늘어선 흑백의 건반을 응시하던 무정은 이내 깊은 한숨을 토하며 피아노 테두리에 이마를 기댔다. 느릿하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손가락 아래에서 눌린 건반이 높은 소리를 낸다. 한때 동경했던 무언가의 조각이 물 밖으로 내던져진 금붕어처럼 파들파들 떨며 죽어가고 있었다. 걸치고 있는 안경의 붉은 사슬이 조용히 흘러내리는 동안 무정은 모든 것 잊어버린 사람처럼 같은 건반을 반복해서 누르다가.
(너는 내가 될 거다.)
뽑아든 나이프가 건반 사이를 파고들었다.
피 대신 불협화음이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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